역대 최고 '한국축구 유럽파', 주어진 숙제들
[이준목 기자]
▲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 생제르맹(PSG)에 입단한 이강인 |
ⓒ 파리 생제르맹 홈페이지 |
유럽은 전 세계 현대 축구계에서 가장 거대한 시장 규모와 수준높은 리그들을 보유한 '주류' 지역으로 꼽힌다. 유럽 리그는 전 세계 축구선수들에게는 꿈의 무대와도 같다. 특히 유럽 5대리그로 꼽히는 빅리그나 유럽클럽대항전에 나설 수 있는 클럽에서 뛴다는 것은, 그 해당 선수는 물론 자국축구의 위상을 높이는 하나의 지표가 되었다.
한국축구도 과거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선수들이 유럽의 문을 노크했다. 한국축구 최초의 유럽파인 '차붐' 차범근은 1970~1980년대 세계 최고의 리그로 꼽히던 서독 분데스리가를 평정하며 지금까지 유럽에서 인정받는 '전설'의 반열에 올랐다. 그 뒤를 이어 1980년대 허정무-김진국 1990년대에는 김주성, 서정원, 노정윤, 안정환 등이 비록 소수였지만 유럽파의 명맥을 이어갔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한국 축구의 위상과 인지도가 낮던 시절이고, 해외진출 시스템과 규정의 미비로 한국 선수들이 체계적으로 유럽을 꿈꾸는 자체가 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유럽에 한국선수들이 활발하게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부터다. 한국축구는 아시아 최초로 월드컵 4강이라는 신화를 달성하며 당시 대표팀 멤버들이 유럽 여러 명문구단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시기에 박지성-이영표-송종국-이천수-이을용-차두리-김남일 등이 잇달아 유럽으로 진출하며 해외파의 숫자가 크게 증가했다. 월드컵과 별개로 이미 유럽에 진출해있던 설기현, K리그에서 활약을 통하여 빅리그까지 직행한 이동국, 김두현, 조원희같은 케이스도 나왔다. 이들은 흔히 '2002 한일월드컵 세대(1970년대 중반-1980년대 초반생)'로 분류된다.
특히 당대의 빅클럽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활약한 '해버지' 박지성의 성공 신화는 이후 한국축구에서 해외축구 진출붐과 대중적 인기를 크게 높이는 기폭제가 됐다. 한일월드컵 이전까지만 해도 무명 선수에 가까웠던 박지성은 국가대표팀(한일월드컵)에서의 활약, 유럽의 중소리그(네덜란드 PSV 아인트호벤)를 거쳐 빅리그-빅클럽(잉글랜드) 이적이라는 당시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 성공루트의 모범을 가장 먼저 제시한 인물이기도 하다.
2010년대 이후로 '런던올림픽과 유럽 조기유학 세대(198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생)'가 한일월드컵 세대의 바통을 이었다. 이 시기의 유럽 진출은 다시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기성용, 이청용, 박주영, 구자철, 지동원, 윤석영, 김보경, 홍정호, 김진수 등 K리그와 대표팀에서 활약을 인정받아 유럽 5대리그나 명문클럽으로 바로 직행하는 사례가 크게 늘어났다. 김보경처럼 2부리그에서 팀을 승격시켜 빅리거가 되거나, 구자철-지동원처럼 임대를 통하여 출장기회를 확보하여 살아남는 루트도 새롭게 등장했다.
또한 1990년대생 이후로는 손흥민을 필두로 이강인, 황희찬, 정우영, 홍현석, 이승우, 백승호처럼 아예 10대 시절부터 유럽팀에 조기 입단하여 현지의 유스와 하부리그 시스템을 거쳐 프로 1군 데뷔까지 성공한 사례들이 대거 늘어났다. 손흥민과 이강인은 이러한 '조기유학'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들로 꼽힌다.
전환점 맞은 한국축구 유럽파의 역사
▲ 손흥민, 새 시즌 준비하러 호주로 잉글랜드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에서 활약하는 손흥민이 새 시즌 준비를 앞두고 14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제1터미널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
ⓒ 연합뉴스 |
2023년 현재 한국축구 유럽파의 역사는 또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만 조규성(덴마크 미트윌란), 오현규-양현준(스코틀랜드 셀틱), 김지수(잉글랜드 브렌트포드) 등 영건들이 잇달아 유럽으로 진출했다. 해외진출 루트가 다양해지며 선수들이 유럽을 노릴 수 있는 기회도 크게 늘어났다.
또한 이미 유럽에서 활약하던 김민재는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독일 바이에른 뮌헨, 이강인은 스페인 마요르카에서 프랑스 파리 생제르맹으로 각각 이적하며, 박지성에 이어 한국인 선수가 유럽 5대 리그에서도 손꼽히는 빅클럽에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 한국축구 유럽파는 양적인 숫자의 증가는 물론이고, 질적으로도 역대 최고 수준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이는 한국축구의 위상과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과거에는 한국축구가 세계무대에 나갈 때마다 기량과 체격에서 앞선 외국 선수들을 상대로 기가 죽기 일쑤였다. 하지만 유럽이라는 넓은 물에서 큰 무대를 경험해본 선수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한국축구도 세계와 맞설 수 있는 요령과 자신감을 터득하게 됐다.
역대 한국축구 월드컵 대표팀 명단에 유럽파가 포함되기 시작한 것은 1986년 멕시코월드컵 부터다. 당시 선수단을 통틀어 해외파는 독일에서 뛰던 차범근이 유일했지만 당시 이미 34세의 노장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해외경험이 없는 K리거였다. 그로부터 16년이 지난 2002 한일월드컵에서도 유럽파는 소속팀에서 벤치멤버였던 안정환(이탈리아 페루자)과, 유럽 중소리그에서 갓 떠오르는 유망주였던 설기현(벨기에 안더레흐트), 단 2명에 불과했다.
한일월드컵 이후로 유럽파의 숫자는 꾸준히 증가했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는 5명, 2010 남아공월드컵에는 6명의 유럽파가 있었다.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는 최종명단 23인 중 무려 10명이 유럽파로 역대 가장 많은 숫자를 배출했지만, 당시 대부분이 소속팀에서 부진하거나 주전경쟁에서 밀리면서 이름값 만큼의 전력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에서는 다시 절반인 5명으로 줄었다. 12년 만의 16강 진출에 성공한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도 6명으로 비슷했다.
한국보다 더 유럽진출이 활발했던 일본은 지난 카타르월드컵에서 유럽파의 숫자가 무려 20명에 달하기도 했다. 이러한 유럽파의 경험은 독일과 스페인 등 세계적인 강호들을 연파하는 데 기여했다. 다만 한국축구도 2000년대 이후 유럽무대를 경험하고 돌아온 선수들도 점점 늘어나면서, 표면적인 유럽파의 숫자보다도 실제 경험치는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 바이에른 뮌헨 입단 후 구단훈련 참여한 김민재 독일 프로축구 분데스리가 바이에른 뮌헨에 입단한 김민재가 18일(현지시간) 로타흐 에게른에서 구단 훈련에 참여하고 있다. 뮌헨 구단은 19일 홈페이지를 통해 "나폴리(이탈리아)와 김민재의 이적 협상을 끝냈다. 2028년까지 5년 계약을 했다"고 발표했다. |
ⓒ AFP=연합뉴스 |
현재 대한민국 대표팀의 스쿼드를 살펴보면 이제 우리도 유럽파만으로 베스트 11을 채울 있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 카타르월드컵 이후 대표팀의 최전방을 책임지고 있는 황의조-조규성-오현규까지 공격수 3인방이 모두 유럽파로 채워졌는데 이는 대표팀 역사상 최초다. 여기에 한국축구의 전통적인 강점인 2선은, 스트라이커도 가능한 손흥민을 필두로 이강인-이재성-황희찬-정우영 등 어느덧 '더블스쿼드'도 가능한 뎁스를 갖췄다.
중원에는 황인범과 홍현석, 중앙수비에는 김민재와 김지수 등이 있다. A대표팀에 발탁할 수 있는 유럽파의 숫자만 두 자릿수를 훌쩍 넘겼다. 사실상 골키퍼와 좌우 풀백을 제외하면 전 포지션에서 유럽파를 기용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또한 이전 세대의 한국축구를 대표하는 스타였던 박지성은 정작 소속팀에서는 부동의 주전은 아니었다. 안정환, 박주영, 이영표, 이청용, 기성용 등도 유럽 빅클럽이나 상위리그 레벨에서는 고전한 경우가 많았다.
그에 비하여 손흥민과 김민재는 현재 명실상부 유럽축구계에도 인정받는 '월드클래스' 선수다. 유럽파 중 다수가 5대 빅리그에서 주전급 선수로 활약한 경험이 있다. 여기에 한국선수들의 잠재력에 대한 유럽의 주목도가 높아졌고, 어린 선수들이 유럽에 나가는 시기와 속도가 빨라지면서 앞으로 유럽파의 뎁스는 더욱 두터워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럽파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한편으로 그에 따른 새로운 고민들도 생겨나고 있다. A매치를 위한 장거리이동으로 인한 국가대표 핵심 선수들의 피로 누적과 체력 관리 문제는 자연히 '혹사 논란'으로 이어진다. 박지성-기성용-구자철 등 역대 유럽파 출신 국가대표 주장들이 연이어 30대 초반의 이른 나이에 대표팀 은퇴를 선언해야 했던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현 대표팀 주장인 손흥민도 매년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실제로 지난 시즌에는 각종 부상이 겹쳐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올해 초에는 김민재가 인터뷰에서 우회적으로 '번아웃'을 호소했다가 대표팀 은퇴설 해프닝으로 번지기도 했다.
또한 유럽파 선수들이 늘어나면서 주축 선수들이 예전처럼 충분한 훈련시간을 갖지 못하고 국제대회에 나서서 끈끈한 조직력과 팀워크를 다지는 데 어려움이 예상된다. 올림픽-아시안게임같은 의무차출이 아닌 대회에서는 유럽파들이 소속팀의 협조를 받기가 더 까다로워질 수 있다. 더구나 유럽파와 국내파의 구분에 따른 차별대우나 파벌화의 위험 등도 경계해야 할 대목이다. 늘어나는 유럽파들을 활용하여 진정한 '황금세대'를 이뤄내기 위해서는 한국 축구의 시스템도 달라진 조건과 환경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과제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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