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정보기관 MI6 수장 "프리고진 철수, 푸틴과 거래 있었다"

임선영 2023. 7. 20.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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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예브게니 프리고진이 무장 반란을 하루 만에 끝낸 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그와 '거래'를 했기 때문이라고 영국 정보기관 MI6 수장이 19일(현지시간) 밝혔다. 그간 추측이 무성했던 프리고진의 반란 철수 배경과 관련해 서방 정보기관이 이처럼 확인을 해준 건 처음이라고 외신은 전했다.

이날 프리고진의 텔레그램엔 그가 반란 이후 처음으로 벨라루스의 한 군사 캠프에서 발언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 정부가 "20일(현지시간)부터 흑해에서 우크라이나 항구로 향하는 모든 선박을 군사 화물선으로 간주하겠다"고 경고함에 따라 국제 곡물 가격이 치솟았다.

MI6의 수장 리처드 무어. AP=연합뉴스

MI6 수장, 이례적인 공개 연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날 MI6의 수장 리처드 무어는 체코 프라하의 영국 대사관에서 가진 공개 연설에서 "푸틴은 곤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모스크바로 진격하는 프리고진과 거래를 했다"고 말했다. 무어는 "푸틴은 어느 정도 압박감을 느끼고 있었다"며 "프리고진은 완전히 푸틴이 만들어낸 창조물이었지만 푸틴을 배신했고, 푸틴은 프리고진에 맞서 싸우지 않았다. 벨라루스의 도움을 받아 곤경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무어는 프리고진이 용병기업 바그너그룹을 이끌고 무장 반란을 일으킨 하루 동안과 이후 벌어진 일들에 대한 당혹감도 드러냈다. 그는 "지난 6월 24일 프리고진은 아침에 반역자로 시작해서 저녁에 사면을 받았고, 며칠 후 크렘린궁의 모임에 초대됐다"고 했다. 이어 "그래서 MI6의 수장이라 할지라도 (이번 반란으로) 누가 (권력 핵심부로) 들어가고 누가 아웃 됐는가란 면에서 해석하기 조금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는 반란이 발생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지난달 29일 프리고진을 포함한 바그너그룹 지휘관 35명을 크렘린궁으로 초청해 3시간 동안 만났다고 발표한 바 있다.

CNN에 따르면 그간 서방 정보당국은 이 '실패한' 반란에 대한 언급을 꺼려왔다. 러시아 내부 갈등을 종종 서방 정보기관들이 사주한 것이라고 했던 크렘린궁의 주장에 악용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MI6 수장의 이 같은 이례적인 공개 연설은 이번 반란으로 드러난 푸틴의 허약함이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 보여준다"고 매체는 평했다. 다만 무어는 푸틴 대통령과 프리고진이 어떤 거래를 했는지 언급하진 않았다.


프리고진, 반란 이후 첫 공개 행보


프리고진은 이날 반란 이후 처음으로 자신이 벨라루스에서 발언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을 텔레그램에 공개했다. 그는 이 영상에서 벨라루스에 온 용병들에게 "벨라루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며 "현재 전선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가 관여할 필요가 없는 수치이고, 우리를 완전히 증명할 수 있는 순간을 기다려야 한다"고 말했다.
바그너그룹 수장 예브게니 프리고진. AP=연합뉴스

이어 "우리는 한동안 벨라루스에 주둔하기로 결정했다. 이 기간 동안 벨라루스 군대를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강한 군대로 만들 것"이라고 했다. 앞서 벨라루스 정부도 바그너그룹이 자국군을 훈련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러면서도 프리고진은 "우리 자신과 우리의 경험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을 것이란 확신이 들 때 우크라이나 전선으로 복귀할 것"이라며 우크라이나전 참전 여지를 남겼다.

NYT 등은 이 영상이 벨라루스 수도 민스크로부터 남동쪽 약 80㎞ 떨어진 바그너 용병 임시 캠프에서 18일 밤 촬영된 것임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러시아 "흑해 우크라행 모든 선박 군사 화물선 간주"


한편 이날 러시아 국방부는 "러시아 시간으로 7월 20일 0시부터 흑해를 통해 우크라이나 항구로 가는 모든 선박은 잠재적으로 군사 화물을 실은 적대적인 위협으로 간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한 선박이 등록된 나라는 우크라이나 정권 편에서 우크라이나 분쟁에 연루된 것으로 간주한다"고도 했다.

러시아의 이런 경고 직후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CME) 밀 선물 가격은 한때 9% 급등했다고 NYT는 전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가장 큰 폭의 상승세다.

미 백악관은 이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항구 접근로에 추가 기뢰를 매설했다는 정보가 있다"며 "러시아가 흑해의 민간 선박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지난 17일 흑해에 정박한 곡물 화물선. AP=연합뉴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와 지난해 7월부터 맺어 온 흑해곡물협정을 더 이상 연장하지 않고 지난 17일 종료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협정 파기 이후에도 흑해를 통한 곡물 수출을 지속한다는 입장이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는 협정 파기 이후 18~9일 흑해 항구도시 오데사를 공격했다. 러시아군은 군사시설을 타격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우크라이나는 이 공습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 등에 수출할 곡물 6만t이 파괴됐다고 반박했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우크라이나 곡물이 국제시장에 제대로 공급되지 않더라도 러시아가 상업적으로나 구호 차원에서도 우크라이나 곡물을 대체할 수 있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국의 모든 요구가 충족된다면 협정에 복귀하겠다"고 여지를 남겼다. 러시아는 자국 곡물·비료의 수출 제한 해제와 농업 분야와 관련된 러시아 자산 동결 해제를 요구하고 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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