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아버지를 닮는다, 좋든 싫든 상관없이
[조영준 기자]
▲ 영화 <더 썬>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01.
플로리안 젤러 감독의 전작 <더 파더>는 치매에 걸린 80대 노인의 기억과 내면에 관한 이야기였다. 자신이 완벽하다고 믿고 있던 노인 안소니(안소니 홉킨스 분)는 점차 혼란을 느끼며 조금씩 허물어지는 삶에 맞서 몸부림쳤고, 영화는 그 모습을 따르며 담아냈다. 극작가로 동명의 작품을 무대 위에 먼저 선보인 바 있는 감독의 두 번째 시도는 스크린을 통해서도 유효했다. 단순히 치매 환자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작품을 통해 그 인물의 심리를 관객들이 직접 경험하게 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이번 작품 <더 썬>은 전작에 이은 가족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이다. 이번에도 역시 그의 선택은 동명의 극을 영화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었다. 원작이 되는 연극은 감독 본인이 2019년 영국 런던에서 초연했던 작품. 무너지는 가족 관계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는 아들과 그를 바라보며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는 아버지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버지라는 존재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점을 착안하면 이 영화의 타이틀이 가진 다면적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두 사람의 관계와 더불어 이를 둘러싼 가족의 변화를 들여다보는 일도 함께다.
02.
영화는 아들 니콜라스(젠 맥그라스 분)가 별거 중인 아버지 피터(휴 잭맨 분)의 집으로 향하게 되면서 시작된다. 전처 케이트(로라 던 분)로부터 아들이 한 달 넘게 학교를 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직후다. 아침마다 등교를 하긴 했으나 학교에 가지 않았다는 아들과 어떤 것을 물어봐도 전혀 대답을 하지 않는다는 전처의 이야기에 피터가 자신의 품으로 니콜라스를 데려오기로 한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너무 버겁다면서도 엄마와 함께 있으면 나쁜 생각만 들기에 새로운 환경에 자신을 데려다 달라는 아들의 요청도 있었다.
"가끔 내가 미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 영화 <더 썬>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아빠와 살게 되었지만 니콜라스는 여전히 힘들어한다. 누군가의 품을 떠나고 또 다른 누군가와 함께 생활하는 일이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는 뜻이다. 피터는 완전히 반대다. 아들의 상황을 되려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그 역시 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반증이다. 두 사람이 닿지 못하는 문제로부터의 거리, 각자의 틈 사이에서 감독은 니콜라스의 입을 통해 피터의 과거를 꺼내든다. 아들의 입장에서는 부모의 이혼이자 아빠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외도 사실이다. 영화의 초반부를 통해 던져진 세 요소는 이 지점에서 삼각의 모양으로 서로 뒤얽힌다. 부모의 이혼에 영향을 받은 니콜라스의 심리와 그 이혼의 매개가 되는 존재인 베스, 그런 베스를 직접 마주하게 되는 니콜라스의 불안정한 심리와 같은 식이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영화가 불안정한 삼각의 구도를 계속해서 유지하면서도 독립적인 상태에 놓일 수 있도록 일종의 경계를 설치한다는 점이다. 이는 감독의 전작이었던 <더 파더>가 무대극의 형식을 스크린에서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특정 지점마다 텅 빈 공간을 보여주며 환기시켜 연극에서의 '막(Act)'을 구현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번에는 니콜라스가 어린 시절에 아직 헤어지지 않은 부모와 함께 행복해했던 영상들이 활용된다. 때마다 등장하는 장면들은 이 구도가 서로 각자도생 할 수 없음을 반어적으로 강조하는 역할이기도 하며, 주체가 되는 니콜라스의 심리를 더욱 어렵게 만드는 장면의 근거로 관객에게 던져지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전작에서만큼 적극적으로 화면의 물리적인 구분을 짓기 위한 용도는 아니다.
04.
영화의 스토리 라인 위에 존재하는 것이 네 사람의 삼각 구조라면, 이를 지탱하고 있는 수직적인 뼈대는 역시 큰 의미의 '아들'이다. 이 아들이라는 단어에는 앞서 잠깐 언급했던 아버지라는 존재 역시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개념이 함께 포함된다. 피터의 아들인 니콜라스와 앤서니(앤서니 홉킨스 분)의 아들인 피터, 각각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자리다. 외형적인 모습으로 볼 때 두 자리의 인물은 그리 닮아있지 않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피터와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 방황하는 니콜라스. 하지만 영화는 두 사람을 같은 모양의 틀 위에 올려두고 찍어 누른다. 이는 일종의 대물림, 혹은 미워했던 부모의 모습을 점차 닮아가게 되는 알 수 없는 행동양식을 표현하기 위함이다.
피터가 자신의 아버지인 앤서니와 강하게 대립하는 장면 다음에 놓이는 니콜라스의 모습은 그래서 중요하다. 다시 엄마인 케이트를 찾아간 그는 이번엔 아빠가 자신을 너무 강하게 압박한다며 그 집에도 자신이 있을 자리는 없다고 불만을 토로한다. 니콜라스와 피터, 두 부자가 떼어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결합하는 순간이다. 각각의 장면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앤서니는 자신을 밖으로만 돌고 엄마와 자신을 항상 방치하고 버려뒀다고 생각하는 아들 피터에게 40년도 넘은 그 빌어먹을 어린 시절의 일을 좀 극복하라며 일갈한다. 다시 니콜라스와 피터의 관계로 돌아와서, 반복해서 자해를 이어가는 아들에게 그는 그 행위가 자신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라며 멈춰달라고 요청한다. 이에 대한 아들의 대답은 다음과 같다. '엄마한테 상처를 줬던 건 내게 준 것이나 다름없어.'
그러니까 아들의 자리에 놓인 피터는 자신의 아버지인 앤서니의 화법을 그대로 닮는다. 언제나 자신이 주체가 되는 화법. 아들이 지금 보내오는 망가진 감정에 대한 요청이 무엇 때문인지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그 행위로 인해 자신이 어떤지를 다시 요청하는 방식이다. 이는 피터가 자신의 아버지를 닮지 않겠다는 다짐 위에서 도덕적인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가 된다. 이번에는 다시, 아들의 자리에 선 니콜라스와 그의 아버지가 되는 피터다. 두 사람은 현재 자신이 갖고 있는 문제의 원인을 자신의 행동으로 수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아닌 과거의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실패로 갈음하고자 하는 동일한 모습을 보인다. 이렇게 세 사람은 닮는다.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이름으로.
▲ 영화 <더 썬> 스틸컷 |
ⓒ ㈜스튜디오 디에이치엘 |
05.
플로리앙 젤러 감독은 전작인 <더 파더>에서 극의 중심에 놓여있는 아버지의 이야기로만 국한하지 않고 그를 바라보는 딸의 이야기를 그렸던 바 있다. 주변을 아우를 줄 아는 그의 시야는 이번 작품에서도 넓게 펼쳐진다. 중심이 되는 두 사람 피터와 니콜라스를 둘러싸고 있는 두 가정, 다시 말하면 각각의 가정에 놓여 있는 케이트와 베스에 대한 부분이다.
두 사람은 피터의 시간축과 니콜라스의 공간축에 따라 그 무게가 조금씩 달라진다. 피터의 현재에 니콜라스가 옮겨오게 되는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베스의 이야기에, 피터의 과거와 니콜라스가 다시 결합하게 되는 후반부에서는 케이트의 이야기에 중심이 놓이는 식이다. 중심이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으나 주변 사건으로서의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 이야기의 뼈대는 언제까지나 '아들'들에게 있다는 뜻이다. 이는 영화의 마지막 순간에 펼쳐지는 비극적 선택 앞에서도 다시 한번 그 궤를 이어내며 강조된다. 할아버지로부터 아버지에게, 다시 아버지로부터 그 아들에게 이르는 과정을 따르면서.
3부작으로 알려져 있는 감독의 가족 이야기는 이제 <더 마더> 한 작품만을 남겨두고 있다. (남은 한 작품은 세 작품 가운데 가장 먼저 무대 위에서 공연된 바 있고, <더 마더>가 다음 작품으로 선택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보인다.) 지금 스크린으로 구현된 두 작품만으로도 이 시리즈를 통해 감독이 하고자 하는 공통된 메시지를 어느 정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자식이 부모의 보호자가 되고 부모는 그 자식에게 의지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오고 (영화 <더 파더>), 부모의 모습을 닮아있는 제 자신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는 것 (영화 <더 썬>). 우리 모두의 삶에는 피할 수 없는 순간이 존재하고, 그 시간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사실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가족이라는 이름에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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