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없는 국민, 말된다 할것"…文정부, 이러며 4대강 해체했다
‘비과학, 불합리, 불공정’
20일 감사원이 공개한 ‘금강·영산강 보 해체와 상시 개방 관련 공익감사청구’ 감사 보고서에 등장하는 단어들이다. 감사원은 이날 역대 다섯번째 4대강(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문재인 정부의 금강·영산강 내 5개 보 해체 및 개방 결정이 국정과제란 이유로 시간에 쫓겨 비과학적이고 불합리하게 추진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환경부에 “과학적이고 객관적 분석 결과를 4대강 보 처리 방안에 적절히 반영하라”며 정책 재검토를 권고했다.
감사원은 당시 보 해체 결정을 내린 환경부 산하 ‘4대강 조사·평가 전문·기획위원회’(4대강 위원회)의 구성도 4대강 사업에 반대한 181개 연합시민단체인 ‘4대강 재자연화 시민위원회’(재자연위)의 부당한 개입으로 “불공정하게 꾸려졌다”고 지적했다. 감사원은 공무상 비밀인 ‘4대강 위원회’ 추천 위원 명단을 사전에 재자연위에 유출하고 위원 선정을 협의한 혐의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전·현직 환경부 관계자 2명에 대해 직권남용과 공무상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지난 1월 검찰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는 문재인 정부의 ‘금강 영산강 보 해체 및 상시개방 결정’에 대한 공익감사 청구(2021년 3월)로 시작됐다. 정권이 바뀌어 2년 4개월 만에 나온 결과다.
2018년 11월 출범한 4대강 위원회는 그해 12월 첫 정식회의를 가진 뒤 이듬해 2월 ‘금강·영산강 내 5개 보(세종보·공주보·백제보·승촌보·죽산보) 해체 및 개방’ 결정을 제안했다. 감사원은 국책 사업이 불과 두 달 만에 결정된 이 과정 전체를 ‘졸속’이라 판단했다. 감사원은 특히 4대강 위원회가 ‘보 해체 및 개방’ 결정의 근거로 삼은 비용편익 경제석 분석(B/C분석)을 문제 삼았다.
4대강 위원회는 당시 보 해체의 편익이 비용보다 높다는 분석결과를 제시하며 세종보·공주보·죽산보는 해체, 보 유지의 편익이 높다고 나온 백제보·승촌보는 수질 생태계 조사와 국민 선호 결과를 반영해 상시 개방 결정을 제안했다. 2년 뒤인 2021년 1월 대통령 직속 ‘국가 물관리위원회’는 이같은 결과를 그대로 수용하는 보 해체, 개방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감사원은 4대강 위원회가 B/C분석의 산정 방법과 기준을 사전에 정해두지 않은 채 회의마다 다른 분석 기법을 적용해 B/C 결과를 산출했다고 지적했다. 위원회 내부 자료에 따르면 조사 기준에 따라 그 값이 10배까지 차이났지만, 당시엔 공개되지 않았다. 감사원은 “애초 신뢰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수치”라며 “4대강 위원회는 과학적인 평가 기준이 아니라 여러 시나리오의 수치 중 하나를 고른 것”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보 해체 및 개방과 부합하는 B/C분석 결과를 취사선택했다는 취지였다. 감사원은 4대강 위원회가 보 해체 제안의 근거로 삼은 B/C분석에서 ‘수질과 수생태계 개선 편익’의 기준점을 ‘보 설치 전’으로 설정한 것 역시 문제라고 지적했다.
감사원이 공개한 당시 4대강 위원회 내부 회의록엔 “우리 반대편의 전문가가 볼 때는 웬 무식한 얘기를 이렇게 하냐고 생각할 것”이라며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지만 당시 환경부는 청와대에 2019년 2월까지 보 처리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보고한 상태라 그대로 강행됐다. 당시 위원회 회의록엔 또 다른 위원이 “우리가 보 설치 이전의 수치를 쓰는 것이 아무 생각 없는 국민이 딱 들었을 때는 ‘그게 말이 되네’라고 생각할 것 같아요”라고 말한 대목도 등장한다. 감사원 관계자는 “애초 4대강 보 해체에 대한 국정과제 시한은 2018년 12월이었다”며 “청와대에서 신속한 처리를 요구했던 상황이라 환경부가 2019년 2월을 넘기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은 감사 기간 환경부 및 전문가와 협의해 수질분석에 대한 보완책을 마련한 뒤 B/C분석을 재실시했다. 그 결과 4대강 위원회 결정과 달리 공주보와 죽산보는 보 해체의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왔다. 감사원은 이외에도 환경부가 보 해체와 관련없는 설문조사를 인용하고, 수질 분석의 평가지표를 10개 이내로 한정한 것도 비과학적이라 판단했다.
감사원은 4대강 위원회 구성 자체도 문제라고 봤다.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4대강 위원회’ 구성을 위한 정부 훈령 제정 시부터 4대강 반대 시민단체인 재자연위와 협의하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또한 감사 결과 재자연위가 김 전 장관의 지시를 받은 환경부로부터 4대강 위원회 추천 위원 명단을 엑셀 파일로 건네받은 뒤 위원 선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정황도 드러났다.
재자연위 관계자는 건네받은 명단 중 41명에 대해 ‘4대강 찬성자와 방조자’라는 이유로 위원회에서 배제하라는 ‘N(NO)’표시를 적어 환경부에 돌려보냈다. ‘N’ 표시가 된 전문가 전원은 모두 위원회에서 배제됐다. 반면 재자연위가 추천한 인사들은 대거 발탁됐다.
4대강 위원회 중 환경부 당연직 공무원 7명과 민간위원 8명 등 15명으로 구성된 ‘기획위원회’의 민간위원 8명은 모두 재자연위 출신이 차지했다. 민간위원 43명으로 구성된 전문위원회 위원 중 과반수가 넘는 25명도 재자연위 추천 인사들이었다.
감사원은 ‘환경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징역 2년을 살다 지난해 8월 가석방된 김 전 장관에게 수차례 조사를 요청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이에 응하지 않고, “4대강 위원회 위원 선정은 공정했다”는 취지의 입장문을 감사원에 보냈다고 한다. 전 ‘4대강 위원회’ 위원은 통화에서 “당시 4대강 보 해체 및 개방 결정은 과학적 분석에 의해 이뤄졌다”며 “감사원이 무슨 근거로 이런 주장을 펼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고 반박했다.
이번 감사는 4대강과 관련한 다섯 번째 감사다. 이명박 정부에서 두 차례, 박근혜 정부에서 한 차례, 문재인 정부에서 한 차례 4대강 감사 결과가 발표됐다.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정치 감사 아니냐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감사원 관계자는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된 감사”라며 “4대강 보 해체 결정이 문제가 아닌, 그 과정이 비과학적이었단 것으로 정치적 고려를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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