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도 이젠 돈 돈 돈···노후 불안감에 재테크책 ‘열풍’

2023. 7. 20.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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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하시모토 류스케 전 니케이Veritas 편집장
돈 많아도 돈 쓰지 않는 일본인...왜 그토록 모으려할까
돈에 대한 맹신이 역설적으로 경기침체 장기화 불렀나

일본은행은 6월 27일 일본 가계가 보유한 금융자산이 2023년 3월 말 기준 2043조엔(약 1경1860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00년 말과 비교해 45% 늘었다. 반면 연간 소비금액(2인 이상 가구당)은 2023년 349만엔(약 3175만원)으로 2000년보다 10% 가까이 줄었다. 전체로 보면 ‘돈이 많아도 돈을 쓰지 않는 일본인’의 모습이 떠오른다. 도쿄의 큰 서점에 가면 ‘돈 늘리는 법’ ‘모르면 위험한 돈 지식’과 같은 투자 입문서나, 재테크 해설서를 많이 볼 수 있다. 일본인은 왜 이렇게 돈을 좋아하게 됐을까?

이 글에서는 일본의 ‘투자 관련서’ 열풍에 초점을 맞춰 그 배경에 대해 생각해보려 한다. 결론을 먼저 말하면, 그것은 경제 정체를 보여주는 하나의 상징이다. ‘돈에 대한 맹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상황이 소비 침체, 경제 정체를 장기화시키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오랜 기간 일본 신문사의 경제 기자로, 또 투자 정보지 편집장으로 투자에 대한 정보를 수없이 세상에 쏟아낸 필자의 반성도 담았다.

美 출신 연예인 쓴 ‘돈 늘리는 법’
2022년 베스트셀러로 등극 화제
출판 불황이 계속되는 일본에서 잘 팔리는 책 장르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연령책’ 장르이다. 예를 들어 50세, 60세, 70세 등 특정 연령대로 나눠 해야 할 것, 주의해야 할 것을 설명한 책이다. 80세가 되면 몸이 약해져 간병·돌봄을 받아야 할 사람이 늘어나는데, 그 시기를 어떻게 넘길가를 설명한 정신과 의사 와다히데키(和田秀樹) 씨의 저서 ‘80세의 벽(겐토샤신서)’은 2022년의 베스트셀러 1위(닛판 조사)였다. 최근에는 한국에서도 그 책의 번역본이 출간됐다.

또 하나 판매 호조를 보이는 책이 투자 입문서나 재테크 해설서이다. 인생에 없어서는 안 되는 돈을 어떻게 늘릴 수 있는지 이를 위한 투자술, 절약술을 설파한 것이다. 지난해 베스트셀러 순위에서는 3위에 미국 출신 사업가 겸 개그맨 제이슨이 쓴 ‘제이슨식 돈 불리는 법(피어출판)’, 인기 유튜버가 쓴 ‘진짜 자유를 얻는 돈의 대학(아사히신문출판)’이 9위에 올랐다.

미국 출신 사업가 겸 개그맨 제이슨이 쓴 ‘제이슨식 돈 불리는 법(피어출판)’은 초대형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특히 제이슨의 저서는 2021년 11월 출간 이후 발행 부수가 60만부를 돌파한 것으로 알려졌다. 1만부 넘으면 많이 팔렸다고 평가받는 현재 출판계에서 60만부라는 것은 경이로운 숫자다. 책 가격 1300엔(1만1800원), 페이지 수 190쪽, 한 시간이면 읽을 수 있는 이 책에는 ‘장기·분산·적립투자’와 같은 자산운용법을 소개한다. 이외에도 ‘필요 없으면 편의점에는 가지 않는다’ ‘대중교통 수단은 이용하지 않고 가능하면 걷는다’ 등 저자 자신의 독자적인 절약 방법도 소개돼 있다.

물론 이런 투자 입문서나 재테크 해설서는 오래전부터 있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재테크’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개인에게도 주식 투자를 소개하는 책이 출간됐다. 유명 경제 평론가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에 들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처럼 분산투자 방법, 절약술, 절세 제도 사용법 등 폭넓은 주제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해설서가 나오고 있는 것은 1980년대 거품 경제기에도 없었던 현상이다. 또 금융인과 전문가뿐 아니라 연예인과 인터넷상의 인플루언서들이 잇따라 출간해 수많은 독자를 모으고 있는 것도 최근의 특징일 것이다.

日 경제 침체와 함께 늘어난 투자서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가 붐의 시작
일본에서 이런 종류의 책은 1년에 어느 정도로 출판되고 있는 것일까. ‘돈(일본어로 오카네)’이라는 말이 책 제목이나 부제목에 붙은 신간 서적의 수를 일본 국립국회도서관 온라인 검색기를 통해 알아보니 2022년에 296권이었다. 국립국회도서관법은 일본 내에서 발행된 모든 출판물을 납입하도록 출판자에게 의무화한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돈’이 제목인 책은 2000년 이전만 해도 100권 이하였으나 이후 늘어나기 시작해 2010년 전후부터 증가세가 빨라졌다. 최근 10년 정도는 250~300건 전후의 추이가 이어진다. 물론 ‘돈’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는 투자 입문서나 재테크 해설서도 많이 있어 전부를 파악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경향은 파악해볼 수 있을 것이다. 1990년대 일본 거품 경제가 붕괴됐고 2000년 전후 디플레이션 경제에 돌입했다. 일본 경제의 정체가 계속되는 가운데 그와 보조를 맞추듯 투자에 관한 책의 발행이 늘어났다.

투자 입문서 붐의 시작은 2000년에 일본에서 번역 출간된 미국 투자가 로버트 키요사키 씨의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치쿠마쇼보)’였다. 일에 전념하는 것보다 수입을 밑천으로 자산을 늘리는 것이 결과적으로 인생에 부를 가져다준다. 이런 생각으로 쓰여진 책의 내용이 디플레이션에 돌입하여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기 시작한 당시의 일본 독자들의 마음을 울리며 판매 부수를 늘렸다. 이 책은 2001년 베스트셀러 순위에서 4위였다(토한 조사).

2008년 리먼쇼크(세계 경제 위기), 2013년 이후 일본은행의 대규모 ‘질적·양적 금융 완화’를 거치며 투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관련 책이 나왔다. 일반인들에게 저축에서 투자로의 전환을 권유하는 정부 방침도 이런 분위기를 부추겼다.

주식 투자 등으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 존재감을 드러내고 인터넷과 언론 등에서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주식 투자 등으로 1억엔(약 9억1000만원) 이상을 번 사람을 ‘억만장자’라고 부르며, ‘목표! 1억!’과 같은 제목의 책도 여러 권 출판됐다.

많은 투자자들이 하나님처럼 존경하는 미국의 저명 투자가 워런 버핏도 주목을 받게 된다. ‘버핏’을 표제로 한 책은 지금까지 120권가량 나왔고 2023년에 들어 ‘워런 버핏 현자의 명언’ 같은 책이 출간됐다.

‘물건 필요 없으니 돈 늘려야’
돈 보유 자체에 행복해진 성숙 사회
거시경제학이 전문인 오노 요시야스 오사카대 특임교수는 현대의 일본을 성숙 사회로 규정하고 ‘물건은 이제 필요 없으니 돈을 갖고 싶다’는 욕망이 일본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금까지 봐왔던 투자 입문서나 재테크 해설서 등 돈에 관한 책의 열풍도 그 일환으로 파악할 수 있다.

자기가 좋아하는 데에 쓰기 위해 돈을 불리는 게 아니라 돈을 갖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늘어난다. 그 결과 소비가 늘지 않고 경제도 성장하지 않는다. 당연히 월급은 늘지 않기 때문에 노후 자금에 불안이 느끼는 많은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돈을 불리기 위해 투자책에 의존하게 된다. 이런 딜레마에 빠져 있는 곳이 현재의 일본인 것이다. 돈이 있어도 소비로 향하지 않는 성숙 사회는 1990년대 초부터 시작됐다는 게 오노 교수 진단이다. 투자 관련 책이 늘어난 것은 바로 그 시기 이후이다.

다만, 자세히 보면 최근의 돈 관련 서적 붐에도 변화가 보인다. ‘돈이 중요하다’ ‘어떻게 하면 돈을 늘릴 수 있을까’라는 관점과는 다른 각도의 책을 마지막으로 두 권 소개하고 싶다.

하나는 2021년에 나온 타우치 마나부의 저서 ‘돈의 저쪽에는 사람이 있다(다이아몬드사)’다. 골드만삭스의 금리 트레이더였던 다우치 씨는 ‘돈은 그렇게 대단한 것인가’라는 시점에서 고찰했다. 그는 “돈이 힘을 갖는 것은 일을 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고,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돈은 힘을 잃는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발매 직후부터 화제를 모아 필자인 다우치 씨는 지금도 많은 미디어에 등장한다. 하긴 모든 사람이 올바른 돈 관련 지식을 얻고 노후 자금 준비가 됐다고 해도 사회 전체로 볼 때 고령화 사회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간호 인력 확보 등 과제는 많이 남는다.

6월 18일자 니혼게이자이신문 ‘간병·돌봄 난민 400만명’ 보도에 의하면, 간병·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2050년도 941만명으로 늘어난다. 간병·돌봄 일을 담당할 사람은 40%나 부족하게 될 것이라 분석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일하는 사람이다. 타우치 씨도 “돈을 모으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른 한 권은 ‘돈을 늘리자’가 아니고 ‘줄이자’고 주장하는 책이다. 2023년 3월 발행된 오에 히데키 저서 ‘90세까지 다 쓰는 영리하게 돈을 줄이는 법(코분샤신서)’이다. 이 책에서 오에 씨는 일본은행의 설문조사를 분석해 “일본인은 죽을 때 가장 많은 돈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연령별 금융자산 보유액(중앙치)을 보면 30대에서는 400만엔(약 3640만원)이지만 나이가 들수록 늘어 70대에서는 1500만엔 (약 1억3650만원)에 이른다.

노후를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후 불안이라는 말에 과도하게 휘둘리지 말고 지혜롭게 돈을 쓰자고 필자는 제언한다. 이 같은 오에 씨 주장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아, 이 책은 발매 이래 꾸준히 판매 부수를 늘리고 있다.

성숙 사회 딜레마 빠진 日
돌파구는 어디에 있을까?
일본이 성숙 사회의 딜레마에 빠져 있다면 돌파구는 어디에 있을까. 정책 면에서는 두 가지 대응을 생각할 수 있다.

하나는 폭넓은 의미의 소비를 자극하기 위한 정책이다. 전술한 오노 교수는 환경이나 관광, 의료, 간병·돌봄, 교육 등의 분야에서 인프라를 정비할 것을 제안한다. 자동차나 가전제품 등을 사는 것만이 소비가 아니다. 좋은 환경에서 살거나 뛰어난 의료를 받는 것도 하나의 소비 활동이다. 인프라나 제도 면의 정비가 진행되면, 민간에서도 새로운 수요가 생길 것이다.

민간 기업도 새로운 소비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개인적으로는 스포츠와 레저를 포함해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아직 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최근 한류 문화 도약은 일본 산업계에 큰 자극이 된다. 필자는 얼마 전 한국의 톱배우 이병헌 씨가 도쿄에서 가진 팬미팅에 참석했다. 입장료가 1만4500엔(약 13만2000원)으로 비싼데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어 놀랐다.

한편으로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돈에 대한 집착을 낳고 있다면 불안 해소를 위해 복지로 대응해야 한다. 가령 돈이 없더라도 최소한의 교육, 의료, 간병 등을 받을 수 있는 ‘베이직 서비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됐다. 돈이 아닌 ‘일하는 사람’에 중점을 둔 것이다.

하시모토 류스케 전 니케이Veritas 편집장

1990년 니혼게이자이신문사에 입사. 주로 금융·증시, 기업 경영 취재를 담당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서울지국에 주재하며 외환위기를 겪은 한국 사회를 취재했다. 증권부 차장, 투자 정보지 니케이Veritas 편집장, 편집위원 등을 거쳐 2022년 7월 독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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