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에서도 더 열악한 위치에 여성들이 있었다 [소셜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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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 조선소의 여성 노동자들은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당공으로 일하거나 고용계약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
ⓒ 셔터스톡 |
2016년 조선업 위기 때 조선소들의 대응을 보며, 하청구조가 얼마나 쉽게 노동자를 나락으로 떨어뜨릴 수 있는지 알게 되었다. 위기가 닥치자 조선소는 하청 노동자들을 해고했다. 아니, 해고라는 이름도 아니었다. 하청 노동자들은 업체가 폐업하거나 물량이 없어서 자연스럽게 거리로 내몰렸다.
하도급 말단에 있는 사내하청 물량팀이 가장 먼저 해고되었고 그 이후 사내하청이 직접 고용한 본공도 쫓겨났다. 조선업에서 무려 7만 6000명의 하청 노동자가 해고되었다. 남아있던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임금이 삭감되고 노동조건이 후퇴했다.
대우조선해양이 기성금(원청이 하청에 지급하는 대금)을 삭감하면서 하청 노동자는 임금이 무려 35%나 깎였다. 그런데 조선소 경기가 회복된 이후에도 사내하청 노동자는 빼앗긴 임금도, 노동조건도 돌려받지 못했다.
2022년 6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은 파업을 하며 "이렇게는 살 수 없지 않겠습니까"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나는 사용자가 아니고 책임이 없다"며 발뺌했고 정부는 "불법파업이니 공권력을 투입하겠다"면서 협박했다. 대우조선해양이 하청업체에 주는 기성금을 올려야 하청 노동자의 임금인상이 가능하지만, 권한 없는 하청업체 사장들만 교섭장에 나와 우는소리를 할 뿐이었다.
결국 51일간의 파업은 4.5% 임금인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렇지만 그 파업으로 조선소 사내하청 노동자의 목소리가 사회에 들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목소리를 내는 하청 노동자 중에는 조선소에서도 더 열악한 위치에 있는 여성 노동자들이 있었다.
▲ 2022년 7월 19일 대우조선해양 거제옥포조선소 1도크 내 하청 노동자들이 농성을 하고 있다. |
ⓒ 정영현 |
조선소는 원청과 하청의 격차만 문제인 것이 아니다. 하청 노동자는 무기계약직과 단기계약직으로 나뉜다. 특정 공정의 업무를 일정 기간 동안만 담당하는 '물량팀'도 있다. 그 외에 아웃소싱이라 불리는 2차 하청 인력도 있다. 고용계약을 하지만 사업자등록을 하고 개인사업자처럼 위장된 노동자, 프리랜서로 일하는 노동자도 있다.
그러다 보니 같은 공정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도 고용 형태와 계약 형태가 다르고, 임금 격차도 심하다. 이런 복잡한 고용구조 속에서 여성 노동자는 더 낮은 임금을 받고 일당공으로 일하거나 고용계약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하청 노동자 중에는 여성이 30% 가까이 되지만 화기 감시나 청소, 밀폐구역 감시 등 간접부서에서 일하며 대부분 최저임금을 받는다.
여성이 맡은 업무는 저평가되기도 한다. 도장업무는 전처리(파워공), 스프레이, 터치업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터치업은 스프레이가 닿지 않는 구석까지 꼼꼼하게 붓으로 바르는 작업이다. 사람이 진입하기 힘든 좁은 공간에서 일일이 수작업하는 힘든 일인데, 여성이 많이 한다는 이유로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평가된다.
그래서 이 업무는 다른 도장업무에 비해 임금이 적다. 예를 들어 원청에서 도장 단가로 26만 원을 책정하면, 스프레이 작업하는 하청 노동자는 14만 원 정도 받는 데 비해 터치업은 남성 12만 7000원, 여성 12만 2000원을 받는 식이다. 게다가 여성 노동자는 일찍 나와 작업준비를 해야 했고, 청소업무를 담당해야 했다. 물론 무급이었다.
여성 노동자는 숙련의 기회도 많지 않다. 물론 대우조선해양 하청업체에는 경력 20년이 넘는 여성 용접사도 있다. 그런데 이들도 차별을 받는다. 남성과 똑같은 일을 하고 남성보다 경력도 오래되었고 일을 더 잘하더라도 여성 용접사가 받는 임금은 남성 용접사 임금의 70%에 불과하다.
차별은 오래된 관행처럼 붙어있다. 남성 중심의 사업장이기 때문에 여성이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도 적어서 하루 종일 생리현상을 참으면서 일하기도 한다. 안전모나 안전화, 작업 도구도 여성 노동자의 신체와 맞지 않기 때문에 더 위험하다. 하청업체들은 동일한 단가를 받더라도 여성 노동자를 차별해서 조금이라도 더 이윤을 챙기려고 한다.
조선업 구조조정의 바람은 여성 노동자에게도 불어닥쳤다. 거제에 생활 기반을 갖고 있는 여성 노동자는 거제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을 찾기 어려웠다. 그래서 임금이 대폭 삭감되어도 그것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고용을 지키기는 쉽지 않았다.
2020년 한 하청업체가 희망퇴직으로 노동자들을 내보낸 후 다시 정리해고를 시도할 때, 그 명단에는 경력도 많고 숙련도도 높은 여성 용접사가 포함되었다. 그 여성 용접사는 노조에 가입하여 끝까지 싸웠고 결국 복직했다. 거제통영고성(거통고) 조선하청지회가 임금 회복을 요구하며 파업했을 때, 하청 여성 노동자도 살기 위해 노동조합으로 뭉쳤다. 거통고 조선하청지회는 2024년 '여성 전용 화장실 증설'을 주요 요구 중 하나로 내걸고 있다.
올해 현대자동차에서 생산직 공채로 여성을 소수 채용한 것이 뉴스가 된 바 있다. 현대자동차는 창사 이래 여성을 기술직 신입 공채로 채용한 적이 없었던 것이다. 여성은 하청업체에서 일했는데 그것도 1차 하청보다 노동조건이 열악한 2차 하청업체에서 주로 일했다.
2차 하청업체가 일이 더 쉬워서가 아니라, 열악한 노동조건을 감내할 만한 노동자들이 주로 여성이었기 때문이다. 1차 하청에서 일하더라도, 남성 노동자는 2년 넘으면 정규직 전환을 신청하기도 하지만 여성 노동자는 불가능했다고 한다.
하청 여성 노동자들은 사내하청 노조에 가입하고 노조와 함께 불법파견 소송에 참여하여 승소했다. 그런데 회사가 임의로 '정규직 발탁 채용' 할 때 여성 노동자는 대부분 제외되었다. 노동조합이 나서서 정규직 전환 합의를 끌어냈을 때에야 여성 노동자도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건설 현장의 여성 노동자는 노조 활동을 통해 자신의 권리를 지키고 불평등한 구조를 없애나갈 수 있었다. 건설 현장은 조선소와 마찬가지로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뤄져 있다. 인맥을 통한 채용 구조라서 여성은 취업도 어렵고, 기술을 익히기는 더욱 어려웠다.
그런데 건설노조가 기능학교를 운영해 여성 노동자를 훈련시키고, 고용교섭을 통해 여성 노동자도 임금과 노동조건의 차별 없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경기도에서 형틀목수로 일하는 한 여성 노동자는 "건설노조의 조끼가 나의 방패였다"고 말한다. 그런데 정부가 건설노조를 탄압하면서 현장에서 그 방패가 사라지자, 여성 노동자들은 현장에서 밀려나고 있다. 그래서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운다.
▲ 2022년 7월 5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과학관에서 청소노동자가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다. |
ⓒ 유성호 |
정부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강조하고 있다. 정부는 원청과 하청 노동자의 격차만을 이중구조로 간주하면서 원청 정규직의 권리 해체에 힘을 쏟고 있다. 그런데 조선소 하청구조에서 확인했듯이 비정규직도 중층적으로 위계화되어 있다. 하청구조가 만들어진 것은 대기업이 노동자들에게 영향력과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하청구조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노동자의 성별, 국적, 연령에 따른 차별구조를 만들어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차별적으로 배제한다. '기업의 이윤을 위한 중층적인 권리 배제', 이것이 '노동시장 이중구조'의 모습이다.
정규직 권리의 해체를 중심으로 하는 정부의 이중구조 개선 대책은 오히려 위계의 말단에 위치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한다. 정부의 이중구조 개선 대책에는 '직무급제로 임금체계를 개편'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정부는 정규직의 연공급 임금체계를 해체하여 '동일노동-동일임금'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 정책이 사업장에서 구현되면 '다른노동-다른임금'이 되어버린다. 정부는 산업별 직무급제가 아니라, 개별 기업에서 고용 형태에 따라 임금체계를 달리하고 직무평가를 통해 직무 간 차별적 임금체계를 만드는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소에서 여성 노동자가 많이 일하는 터치업 업무가 낮은 직무로 평가받아 임금도 적게 받는 것처럼, 기업의 직무평가에는 사회적 편견이 작동한다. 그러다 보니 여성이 많이 일하는 콜센터 등은 별도 직군이 되어 저임금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한국도로공사 톨게이트 수납 노동자들은 열심히 싸워 직접고용으로 전환했지만, 도로공사는 이 여성 노동자들을 도로 청소 등의 업무로 보내고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만 지급했다.
이토록 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직무평가는 참으로 자의적이다. 그러면서 정작 임금체계가 필요한 노동자를 위한 제도를 만드는 데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고 있다. 예를 들어 요양보호사는 10년을 일해도 최저임금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직종의 임금체계를 만들어서 승급제도도 운영하고 경력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정부가 이중구조 개선 대책으로 내놓고 있는 '연장근로 단위기간 확대'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노동시간의 선택권을 노동자에게 준다고 말한다. 어떤 주에는 69시간 일하고 그 연장근로를 모아서 한 달을 쉴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노동시간이 유연화되면 선택권은 노동자에게 있지 않다. 직장갑질119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여성일수록, 비정규직일수록, 고용 규모가 작을수록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었다. 법에 보장된 연차도 자유롭게 쓰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시간의 선택권이 있을 수 있겠는가. 장시간 노동이 일반화되면 여성은 노동시장에서 밀려나고 더 짧고 불안정한 노동을 할 수밖에 없게 된다.
▲ 지난 5월 23일 건설노조투쟁을 지지하는 인권단체 회원들이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 앞에서 '건설노동자 국가폭력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건설노동자들에 대한 국가권력의 탄압을 즉각 중단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
ⓒ 이희훈 |
정부는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의 파업에는 공권력을 투입하겠다고 협박해 놓고, 조선업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소하겠다면서 2022년 11월 '조선업 상생협의체'를 구성했다. 그리고 2023년 원·하청 사장들만 불러서 '조선업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위한 상생협약' 체결식을 진행했다.
그 내용은 "원청은 하청에 적정 기성금을 지급하고 하청업체는 임금인상률을 높인다"는 등의 선언적인 것뿐이었다. "조선사와 협력업체가 상호 논의하여 자율적으로 해법을 마련"하라는 것이 정부 방침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조선업 인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이주노동자를 대폭 도입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했다. 여성 노동자가 원·하청 구조의 말단에 있었던 것처럼 이주노동자를 그 자리에 위치 짓겠다는 것이었다.
기업의 자율 해법을 이야기하며 노동시장의 중층적 위계를 강화하는 방식으로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중층적인 위계구조를 개선하려면 기업에 대한 강한 규제가 필요하다. 제도적인 규제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노동조합을 통한 규제가 중요하다.
건설 현장은 다단계 하도급 구조로 이뤄져 있는데, 2007년 건설노조가 제도개선 투쟁을 하면서 '시공 참여자 제도'를 폐지하여 직접고용이 이루어지도록 만들었다. 이렇게 제도를 바꾼 후 노조는 2017년 전국의 168개 전문건설업체와 교섭을 해서 산별협약을 만들어 냈다. 이 협약에 기초해서 각 현장에서 '고용교섭'을 했고, 그 힘으로 여성 노동자도 숙련된 기능공으로서 현장에서 차별 없이 일할 수 있었다.
지금은 오히려 건설노조의 단체협약이 '채용비리'라면서 탄압당하고 있지만 건설노조의 이러한 활동은 중층적 하청구조 개선의 방안을 알려준다. 중간착취를 금지하도록 직업안정법을 강화하고, 파견법을 폐지하는 등의 제도개선, 원청 대기업이 사용자로서 책임을 지고 교섭에 나서게 하는 노조법 개정, 기업 규모와 성별에 관계 없이 노동조건을 통일시켜 나가는 산별교섭, 그리고 현장에서 차별에 맞선 꾸준한 실천으로 이중구조를 개선할 수 있다.
▲ 김혜진 /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
ⓒ 김혜진 |
필자 소개 : 이 글을 쓴 김혜진은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상임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불안정 노동의 현실과 개선방안에 대해 글을 쓰고, 권리 찾기를 위한 정책을 만들거나 교육하는 일을 합니다. 또한 불안정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거나 권리 찾기를 할 때 지원을 하기도 합니다. 모든 노동자들의 권리가 보장되어 즐겁게 일하는 세상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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