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시즌 만에 통합우승 차지한 '준비된 막내'

양형석 2023. 7. 20.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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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오브 V리그 ⑤] 대형신인 쏟아지는 해를 창단 시점으로 잡은 기업은행

[양형석 기자]

프로스포츠에서 구단을 창단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구단 운영에 필요한 선수와 지도자, 프런트가 갖춰져야 하고 매 시즌 꾸준히 안정적으로 리그에 참가할 수 있는 재정적인 여유도 확보돼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연고지 팬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지역 팬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프로 스포츠 구단은 그 존재가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지난 2011년에 창단한 KBO리그의 9번째 구단 NC 다이노스는 신생구단 창단의 모범사례를 보여준 대표적인 팀이다.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나성범(KIA 타이거즈)과 박민우 같은 미래의 스타들을 지명했고 찰리 쉬렉, 에릭 해커처럼 팀 색깔과 어울리는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NC는 2014년 1군 진입 두 시즌 만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다. NC는 작년까지 10년 동안 6번의 가을야구를 경험하며 KBO리그의 신흥명문으로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V리그에는 KBO리그의 NC보다 1년 앞선 2010년부터 치밀하게 창단을 계획하고 리그 참가 두 번째 시즌이었던 2012-2013 시즌 초고속으로 통합우승을 달성한 팀이 있다. 프로스포츠에 뛰어들 계획이 있는 기업이라면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이유가 충분한 팀이다. 바로 V리그 여자부에서 누구도 달성하지 못한 6시즌 연속 챔프전 진출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던 여자부의 6번째 구단 IBK기업은행 알토스다.

기업은행의 전철을 따르지 못한 페퍼저축은행
 
 김희진은 2010년 창단 멤버로 기업은행에 입단해 현재까지 기업은행의 간판스타로 활약하고 있다.
ⓒ 한국배구연맹
 
지난 2021년 호주 페퍼그룹 계열의 상호 저축은행기업인 페퍼저축은행이 광주를 연고로 한 여자부의 7번째 구단 페퍼저축은행 AI페퍼스를 창단했다. 사실 여자부 7번째 구단의 필요성은 2018년 경부터 배구계 안팎에서 꾸준히 제기되고 있었다. 단순히 남자부와 구단 숫자를 맞추기 위한 단순한 이유도 있었지만 2018년 프로 진출이 예정된 고3 학생들이 예년에 비해 뛰어난 유망주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2018년 신인 드래프트 참가선수 중 원곡고의 이주아(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와 선명여고의 박은진(KGC인삼공사)은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을 정도로 일찌감치 기량과 잠재력을 인정 받았다. 그 밖에도 경남여고의 정지윤과 대전 용산고의 나현수(이상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선명여고의 박혜민과 이예솔(이상 인삼공사), 원곡고의 문지윤(GS칼텍스 KIXX)등 각 학교의 에이스 선수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2018년에 여자부 신생구단 창단을 희망하는 기업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이 인재들은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각자 다른 팀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여자부는 이듬해에도 정호영(인삼공사)과 이다현(현대건설), 권민지(GS칼텍스), 최가은(한국 도로공사 하이패스), 김다은, 박현주(이상 흥국생명), 육서영(기업은행) 등 좋은 유망주들이 많이 배출됐다. 하지만 2019년에도 이들을 모두 데려갈 기회를 얻으려는 기업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다시 2년이 지난 2021년 페퍼저축은행이 창단했다. 페퍼저축은행은 2021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상위 6개의 지명권을 가져가 박사랑, 박은서, 서채원,  문슬기 등을 지명했지만 이들은 2018년과 2019년의 신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결국 페퍼저축은행은 2021-2022 시즌 엘리자벳 이네 바르가라는 1순위 외국인 선수를 보유하고도 코로나19로 시즌이 조기 종료될 때까지 31경기에서 3승 밖에 따내지 못했다.

결국 페퍼저축은행은 2022-2023 시즌부터 FA 이고은 세터와 트레이드를 통한 오지영 리베로 영입 등 적극적인 '외부수혈'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적지 않은 배구팬들이 페퍼저축은행이 창단 시점만 잘 잡았어도 두 시즌 동안 8승59패를 기록할 정도로 크게 고전하진 않았을 거라고 입을 모은다. 페퍼저축은행이 탄생하기 11년 전, 배구팬들은 기업은행이 얼마나 빨리 여자부의 강자로 올라서는지 목격했기 때문이다.

김희진-박정아 앞세워 6연속 챔프전 진출
 
 2009-2010 시즌 GS칼텍스에서 준우승에 머물렀던 데스티니 후커는 2014-2015 시즌 기업은행에서 챔프전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 한국배구연맹
 
당초 기업은행은 2010년 창단을 일찌감치 계획했다.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 중앙여고의 김희진과 부산 남성여고의 박정아(페퍼저축은행)라는 여자배구 전체가 주목하는 대형 유망주가 둘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기업은행은 계획대로 201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중앙여고와 남성여고, 진주 선명여고에서 10명의 신인 선수를 지명해 팀의 기틀을 마련했다. 하지만 정작 연고지 문제 때문에 2010-2011 시즌에는 리그에 참가하지 못했다.

초대 감독으로 실업배구 시절 흥국생명을 이끌었던 이정철 감독(SBS스포츠 해설위원)을 선임한 기업은행은 비 시즌 동안 무적상태였던 이효희 세터(도로공사 코치)를 영입하며 최대약점이던 세터를 보강했다. 기업은행은 2011-2012 시즌 처음으로 리그에 참가해 흥국생명과 GS칼텍스를 제치고 6개구단 중 4위를 기록하며 '막내의 패기'를 보여줬다. 26경기에서 305득점을 올린 박정아는 팀 동료 김희진(265점)을 제치고 신인왕에 선정됐다.

그리고 기업은행은 2012년 6월 GS칼텍스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국가대표 리베로 남지연을 영입했고 2011-2012 시즌 득점 2위에 올랐던 알레시아 리귤릭과 재계약하며 탄탄한 전력을 꾸리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기업은행은 2012-2013 시즌 30경기에서 25승을 올리며 정규리그 1위로 챔프전에 직행했고 챔프전에서도 베띠 데라크루즈가 분전한 GS칼텍스를 3승1패로 꺾고 리그에 참가한 지 두 시즌 만에 통합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2012-2013 시즌의 첫 통합우승은 기업은행 전성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기업은행은 2012-2013 시즌부터 2017-2018 시즌까지 6시즌 연속 챔프전에 진출해 세 번의 우승을 차지하며 단숨에 김연경 시대의 흥국생명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기업은행은 외국인 선수가 카리나 오키시오, 데스티니 후커, 리즈 맥마흔, 메디슨 리쉘로 계속 바뀌었지만 이정철 감독의 지도 속에 토종 원투펀치 박정아, 김희진과 잘 조화를 이루며 매 시즌 강한 전력을 유지했다.

영원한 우승후보로 군림할 거 같았던 기업은행은 최근 5시즌 동안 한 번(2020-2021 시즌) 밖에 봄 배구 진출을 하지 못했을 정도로 고전하고 있다. 하지만 2023-2024 시즌에는 1순위 외국인 선수 브리트니 아베크롬비와 1순위 아시아쿼터 폰푼 게드파르드 세터를 영입하며 도약을 노리고 있다. 이제는 창단 10년을 훌쩍 넘긴 기성구단이 됐지만 기업은행의 창단과 성공과정은 스포츠 구단을 창단하려는 기업이라면 반드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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