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 속 이 화학물질, 면역력 떨어뜨린다" 연구 보니
내열성·내구성 등이 뛰어나 산업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물질인 과불화화합물(PFAS)이 사람의 면역력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면역세포인 T세포의 활성을 감소시켜 병원균 등에 대한 감염에 취약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탈리아 밀라노대학과 독일 라이프치히대학 연구팀은 최근 화학 분야 국제학술지인 '케모스피어(Chemosphere)'에 발표한 논문에서 "과불화화합물이 T세포와 호염구(basophil, 호염기성 백혈구)의 활성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을 시험관 실험에서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탄소 사슬 골격에 불소 원자가 다수 결합해 있는 과불화화합물 6종을 선택해 실험했다.
일반적으로 탄소 사슬에서 탄소 숫자가 8개 이상이면 긴 사슬(장쇄), 4~7개는 짧은 사슬(단쇄), 3개 이하는 초(超)단쇄로 분류한다.
6가지 과불화화합물 섞어 실험
혼합물은 짧은 사슬 3가지를 섞은 것, 긴 사슬 3가지를 섞은 것, 6가지 모두 섞은 것이다.
연구팀은 5명의 건강한 남성 기증자로부터 받은 말초 혈액 단핵세포(PBMC)를 실험에 사용했다.
이 PBMC를 mL당 0.02~2 나노그램(ng, 10억분의 1g) 농도의 과불화화합물 혼합물에 넣어 20시간 동안 노출했다.
연구팀은 다시 이 PBMC에 CD3와 CD28에 대한 항체 또는 대장균 K12 균주를 투여해 6시간 동안 자극하면서 면역 활성화를 유도했다.
CD(cluster of differentiation, 분화 클러스터)는 면역세포의 표면에 있는 단백질 종류로서 면역 세포를 구분하는 지표로도 활용된다.
림프구 등 활성화 감소시켜
특히, 짧은 사슬과 긴 사슬이 모두 포함된 과불화화합물 6종의 혼합물은 림프구의 활성을 뚜렷이 감소시키는 것이 확인됐다.
또, 과불화화합물 혼합물은 대장균의 자극에서 MAIT 세포(mucosal-associated invariant T cells)의 활성화 정도를 떨어뜨렸다.
연구팀은 과불화화합물에 노출하고 대장균으로 자극한 PBMC에서 유전자 발현에 대해서도 분석했다.
분석된 39개 유전자 중 18개 유전자의 발현은 과불화화합물 혼합물 처리 때문에 영향을 받는다는 게 확인됐다.
18개 유전자의 발현 수준이 과불화화합물에 노출되지 않은 경우보다 떨어진 것이다.
나머지 21개 유전자는 과불화화합물의 영향이 나타나지 않았다.
이와 함께 과불화화합물이 호염구의 활성화를 감소시킨다는 것도 연구팀은 확인했다.
백신 주사가 잘 안 듣는 이유
연구팀은 "(과불화화합물로 인한) 면역 반응의 활성화 감소는 잠재적으로 병원체에 대항하는 능력의 감소로 이어져 건강에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존 연구에서 과불화화합물 노출 수준이 높은 소아의 경우 백신 접종 때 항체 형성이 억제되는 것으로 보고됐는데, 이번 연구는 이에 대한 인과관계를 설명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번 연구에서는 여성의 월경 주기 변동으로 인한 영향을 피하기 위해 남성 기증자 샘플만 연구했다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앞으로 어린이를 포함한 많은 기증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 다양한 과불화화합물을 포함하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각국 과불화화합물 규제에 나서
짧은 사슬을 사용하면 잔류성은 줄지만, 독성은 여전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지난 2월 유럽화학물질청(European Chemicals Agency, ECHA)은 과불화화합물에 대한 추가 규제안을 발표했고, 유럽위원회에서는 오는 2025년까지 시행을 결정할 예정이다.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지난 3월 수돗물 속의 과불화화합물 기준치를 대폭 강화해서 제안했고, 올 연말까지 의견을 수렴해 확정할 방침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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