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세 美공정위원장, 빅테크에 또 졌다…한국에 던진 시사점 [팩플]
규제의 날이 무뎠나, 빅테크 방패가 두터웠나. ‘34세의 빅테크 저승사자’ 리나 칸이 이끄는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가 마이크로소프트(MS)·메타 등과의 독과점 소송에서 연이어 패배하고 있다. 거대 플랫폼에 대한 신속·정교·합리적 규제 방안은 무엇인가, 온라인플랫폼법안과 자율규제 사이를 오가는 한국 규제 당국도 직면한 질문이다.
미국 FTC에 무슨 일이야
미국 공화당 의원 22명이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게 ‘MS-블리자드 인수 금지 소송을 중단하라’라고 공개 서한을 보내 촉구했다고, 로이터통신이 19일 보도했다. 문제 없는 인수인데 칸 위원장이 어깃장을 놓고 있다는 주장이다.
앞서 지난 11일 미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연방 법원은 MS가 블리자드를 687억 달러(약 89조원)에 인수하려는 계약을 중단하게 해달라는 FTC의 가처분 소송을 기각했고, 13일에는 항소심 완료까지 양사 합병을 미뤄달라는 FTC 요청도 기각했다. FTC는 지난 2월 메타(페이스북 운영사)의 가상현실(VR) 피트니스 업체 위딘 인수 금지 가처분 소송에서도 패했다.
칸 위원장은 지난 13일 미 하원 법사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공화당 의원들로부터 “기업을 괴롭힌다”, “근거 없는 소송 남발로 예산을 낭비한다”라는 비판을 받았다.
리나 칸 이론, 왜 안 먹혔나
올해 34세인 칸 위원장은 예일대 로스쿨 재학 중(28세)에 쓴 ‘아마존의 역설’ 논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이후 컬럼비아대 부교수로 재직하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의 연소 FTC 위원장에 올랐다. 바이든 정부의 빅테크 규제 신호로 해석됐다.
그가 지난 2년간 FTC에서 적용한 바는 크게 세 가지. 아마존 같은 플랫폼 빅테크는 ▶독과점 폐해를 ‘가격 인상 같은 소비자 후생’으로만 평가해선 안 되고 ▶플랫폼 업체가 소매업체를 인수하는 식의 수직 합병도 제재해야 하며 ▶규제 당국은 독점이 형성되기 전인 초기 단계부터 주시해야 한다는 것.
그러나 FTC는 ▶페이스북과 MS 등의 시장 독점을 입증하지 못했고 ▶수직 결합인 MS-블리자드 인수가 경쟁을 제한하는 근거를 제시하지 못해 법정에서 패했다. 또한 메타-위딘 인수 소송에서는 ▶VR 시장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쟁 감소를 주장해 공감을 얻지 못했다.
디지털시장법과 미국 혁신선택법 등 지난 2021년 미국에서 발의된 빅테크 규제법안 6개 중 5개가 폐기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의회 과반수가 없는 상황에서, 칸 위원장은 매번 기존 법률의 창의적 재해석과 법정 소송에 의존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라고 지적했다.
한국과 무슨 상관
플랫폼 규제 의지는 있지만 입법 진척은 없다는 점에서, 한국도 미국과 유사한 상황이다. 전 정부 때부터 추진한 온라인플랫폼규제법안은 논의만 5년째다. 법리의 정교함이 떨어지고, 실효성을 의심 받으며, 여야 합의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 윤석열 정부 들어 공정거래위원회는 ‘플랫폼 자율 규제’ 기조를 유지한다면서도, 온플법 제정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등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네이버나 카카오 같은 플랫폼이 무분별한 인수합병(M&A)을 하지 못하도록 타 분야의 중소 업체 인수 시도를 엄격히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카카오톡 먹통 사태의 원인을 ‘플랫폼 독과점’으로 규정한 직후였다.
경쟁법 전문가인 임용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미 FTC는 이론보다는 팩트(fact)에서 진 것”이라며 “어떤 이론을 가져오더라도 사실과 증거가 뒷받침 돼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라고 말했다. 공정위가 온플법 같은 입법보다 실제 시장에서의 구체적·실제적 집행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
━
급부상한 AI는 어쩔 건가
빅테크 규제가 어려운 이유는 기술과 시장의 변화 속도가 빠르기 때문이다. 이 와중에 챗GPT 같은 생성 AI가 새로운 플랫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미 FTC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챗GPT가 개인에 대한 허위 정보를 게시해 명예를 훼손했는지, 챗GPT를 어떤 데이터로 교육했는지 등을 조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자들은 각국의 AI 규제가 실효성을 가지려면 전문 인력 확보가 우선이라고 말한다. 지난 5월 서울대 경쟁법센터 정책세미나에서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규제 당국이 AI 알고리즘 데이터에 대한 고도의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고서는 규제 논의가 무의미하다”라고 말했다.
게다가 최근 미 FTC는 고급 인재 유출로 몸살을 겪고 있다. 지난 3월 블룸버그는 “최근 2년간 99명의 고위급 변호사가 FTC를 떠났는데, 전례 없는 규모”라고 보도했다. 칸 위원장의 정책에 동의하지 않아 이탈한 직원들이 있고, 한편으로 민간 시장에서 FTC 출신이 우대받는다는 것. 규제를 강화할수록 규제 당국에는 고급 인력이 희소해지는, 규제의 역설인 셈이다.
심서현 기자 shshim@joongang.co.k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도 분유 먹는 황유민…55㎏ 몸으로 장타 치는 비결 | 중앙일보
- 이번엔 밥먹다 '콘돔 오리고기' 발칵…中대학식당 황당 해명 | 중앙일보
- 2년간 매일 10L 물 마시던 英남성, 당뇨 아닌 '이 암' 이었다 | 중앙일보
- "프라이팬 속 이 화학물질, 면역력 떨어뜨린다" 연구 보니 | 중앙일보
- 작품 200점 ‘신촌 수장고’ 주인은 90년대생 부부 컬렉터 | 중앙일보
-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교내서 극단선택…학생들 등교 전 발견 | 중앙일보
- 한국인 1.99명당 車 1대…전기 승용차는 '아이오닉5' 최다 | 중앙일보
- '쓰팔' 품앗이방 떴다…"구조대 출발" 요즘 1030 잠 못드는 이유 | 중앙일보
- [단독] "이승만 재평가" 뜻모은 尹 남자들…한동훈은 '홍보' 조언 | 중앙일보
- 20대 여성 느닷없이 "만져달라"…60대 택시기사 트라우마 호소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