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식 "이승만, 자유민주국가 초석…국부들 중 최선두에 있어야"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보훈의 기준은 자유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18일 서울 용산에 있는 서울지방보훈청에서 진행한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가 유공자는 진영과 정치가 아니라 ‘지금의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기여했는가’라는 명확한 기준에 따라 규정돼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특히 임시정부와 대한민국의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드는 데 초석을 마련한 업적을 무시하고 역대 대통령 중 유일하게 기념관조차 세우지 못하는 '역사의 패륜아'로 방치해선 결코 안 된다"고 강조했다.
Q : 오래 전부터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를 강조해왔다.
A : “처음엔 광야에서 혼자서 외치는 느낌이었는데, 이제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재평가 목소리가 커져 감회가 새롭다. 이제 중도와 젊은층뿐 아니라 4ㆍ19를 이끌었던 주체들도 많은 공감을 할 정도로 우리 사회가 성숙해졌다. 분명한 건 이 전 대통령은 복수의 ‘국부(國父)들’ 중 당연히 최선두에 있어야 할 인물이란 사실이다. 물론 과오는 있다. 그러나 수 많은 공을 생각할 때 70여년 기념관조차 세울 수 없을 정도로 음지에서 신음하도록 방치하는 게 과연 옳은지 고민할 시점이 됐다고 생각한다.”
Q : 재평가가 필요한 이유는 뭔가.
A : “보훈은 오로지 우리나라가 어떤 길을 걸어왔고, 어느 길을 지향하는가를 기준으로 결정돼야 한다. 이승만과 관련해선 크게 대한민국을 망친 ‘패륜아’로 보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비록 과오는 있지만 미래를 지향하는 초석을 놨다고 보는 시선이 있다는 것을 안다. 무조건 그를 추앙하자는 게 아니다. 다만 이승만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이 지향할 미래의 길이 결정된다는 점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 재평가가 시급한 분야는 뭔가.
A : “현실적으로 1945년 이후 대한민국엔 두 개의 갈림길이 있었다. 북한의 길과 남한의 길이다. 지금의 대한민국의 길을 연 것 자체가 가장 큰 업적이다. 이 과정에서 토지개혁을 통해 처음으로 대중이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됐고, 이후 박정희 정부의 '한강의 기적'을 거쳐 지금의 물질적 풍요를 이룬 초석이 됐다. 또 의무교육을 시행해 90%가 넘던 문맹률을 임기 내에 20% 이하로 낮췄다. 현재 대한민국의 물질과 정신적 기초를 이승만 대통령이 마련했다는 의미다.”
박 장관은 ‘친일파 낙인’ 논란을 빚었던 고(故) 백선엽 장군에 대해서도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이라는 대원칙 하에서 평가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백 장군 관련 논란에 대해선 “의도적 흠집내기 프레임”이라고 주장했다.
Q : 백 장군이 친일이 아니라는데 직을 걸겠다고 했다.
A : “대한민국의 초석을 만든 대표적 인물이 이승만, 박정희 대통령 그리고 백선엽 장군이다. 그런데 세 사람 모두 친일 프레임에 묶여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4년 백 장군을 친일파로 규정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의 회의록 등을 보면 친일파란 근거가 없어 ‘자료 보완’ 의견이 달려 있다. 그런데 아무런 보완 없이 결정이 이뤄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친일의 근거는 백 장군이 스스로 쓴 책에 나온 대목이 전부고, 이마저도 백 장군이 부인하면서 근거가 없어졌다. 그런데 당시 위원회 구성 자체가 공정성을 상실했기 때문에 ‘답’이 정해진 상태에서 방망이만 두드렸다. 같은 기준으로 보면 이승만ㆍ박정희도 친일로 규정해야 하지만, 그들은 감히 그러지 못했다. 상대적 부담이 적은 백 장군 등만 친일로 몰아세운 정치적 결정이란 의미다.”
Q : 반대로 지난 정부에선 김원봉을 유공자로 지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A :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김원봉에게 독립훈장을 주고 싶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국군을 창설한 뿌리라고도 했다. 그 뒤에 보훈처에 편향된 인사들로 구성된 ‘혁신위원회’가 들어와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하게 수행했다. 그런데 김원봉은 국군이 아니라 북한군 창설의 뿌리다. 김일성 체제에서 훈장을 받고 장관을 두 번이나 했다. 6ㆍ25로 수백만의 무고한 국민에게 상처를 남긴 사람이다. 이런 인물을 국가유공자로 지정되도록 방치하는 것은 보훈부 장관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Q : 김원봉이 독립운동을 한 점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A : “김원봉이 항일 운동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정치적 행위는 지향하는 목적과 연관 지어 판단해야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다. 김원봉의 항일 운동은 일본 제국주의에게 빼앗겼던 인간의 존엄성을 찾아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민족의 자유를 김일성에게 넘기기 위한 목적이었다. 그런데도 김원봉을 예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대한민국을 역사에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종의 ‘사생아’란 잘못된 역사관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민족문제연구소’ 같은 곳이다.”
박 장관은 야권에서 추진하는 ‘민주화유공자법’에 대해서도 “피해자와 유공자는 결코 같은 개념이 될 수 없다”며 비판적 목소리를 냈다. 만약 야당의 강행처리를 막아서지 못할 경우 “옷을 벗겠다”고도 했다.
Q : 민주화유공자법에 대한 논란이 이어진다.
A : “과거 ‘5ㆍ18 보상 및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 피해자에 대한 보상을 우선 시행하고, 시간이 조금 지난 뒤 모든 피해자를 유공자로 바꾸는 방식이다. 국가폭력의 ‘피해자’에 대한 보상은 당연하다. 그러나 피해자와 ‘유공자’는 다르다. 당연히 면밀한 업적평가가 이뤄져야 하는데도 야당은 공개적 업적 평가에 반대한다. 정치적 목적이 담겨 있다는 의미다. 대표적인 예가 경찰 7명이 목숨을 잃은 ‘동의대 사건’인데, 경찰을 죽인 관련자들을 유공자로 받드는 나라가 과연 바람직한 나라인지 판단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Q : 야당이 이 법안을 강행한다면.
A : “분명히 말하지만, 나는 100% 윤석열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것이다. 그리고 윤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을 경우 옷을 벗을 준비도 돼 있다. 국민의 상식으로 보면 답은 명확하다. 자유민주주의의 적을 유공자로 할 수는 없다. 윤 대통령 역시 이 법안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 거고, 99.9% 거부권을 행사할 거라고 생각한다.”
박 장관은 한국에서 국가 유공자에 대한 존경심이 높지 않은 원인 역시 정치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높여야 한다는 윤 대통령의 신념은 오히려 보훈부 장관이 말려야 할 정도로 확고하다”고 강조했다.
Q : 6ㆍ25 참전 용사에게 제복을 지급한 사업이 호평을 받았다.
A : “지금까지 지급했던 조끼는 조롱의 상징이 됐다. 이를 대통령에게 보고했더니 ‘다른 예산을 줄이더라도 전원에게 제복을 지급하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참전 용사 전원에게 제복을 지급한 건 대통령의 결단이다. 이번 정부 내에 월남전 참전용사 등 국가를 위해 피를 흘린 유공자들에 대해서도 영웅의 제복 지급을 확대해보려고 한다.”
Q : 생계에 어려움을 겪는 유공자 문제가 늘 지적된다.
A : “‘애국을 하면 3대가 가난하다’는 말이 가슴 아프다. 최근 부산에서 생계가 막막해진 참전용사가 반찬을 훔쳤다는 얘기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은 이제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대통령도 매번 ‘입으로만 예우한다, 기억한다, 존경한다고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다. 한 번에 다 이룰 순 없겠지만, 최소한 반찬을 훔쳐야 하거나 아픈데도 치료를 못 받게 내버려두는 일은 없도록 국가가 책임을 지겠다.”
그의 선친 고(故)박순유 중령은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전사했다. 박 장관이 7살 때다. 이 때문인지 박 장관은 유공자들의 생계 문제를 언급하며 여러번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가정환경조사를 할 때 ‘원호대상자’라고 손을 들 때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단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6ㆍ25 참전 용사들에 대한 제복 지원 예산 마련 과정에서 윤 대통령에게 “'어르신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대로 된 옷한벌이라도 해 드려야 한다'고 하니까 대통령이 지원 대상을 대폭 확대하라고 하더라”며 웃어보였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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