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옥의 컬처 아이] 나는 추급권에 찬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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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미술진흥법이 마침내 제정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마침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문학, 공연, 출판, 음악, 영화 등 다른 문화 장르에서는 다 있는 개별 진흥법이 미술 분야에서도 마련돼서다.
그러니 반대만 하기보다 추급권을 보장하는 미술품의 종류, 로열티 비율, 단일세율이냐 차등세율이냐 등의 산정 방식, 로열티 추심기관 등에 관한 보완 장치가 시행령을 통해 마련될 수 있도록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는 게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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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말 미술진흥법이 마침내 제정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마침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문학, 공연, 출판, 음악, 영화 등 다른 문화 장르에서는 다 있는 개별 진흥법이 미술 분야에서도 마련돼서다. 제정안 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추급권’의 보장이다.
나는 추급권에 찬성한다. 추급권은 미술품 재판매에 대한 작가의 보상금 청구권을 말한다. 음악, 영상, 출판에서는 노래가 연주되고 영상이 재생되고 책이 증쇄되는 등 즉, ‘재판매’가 이뤄질 때마다 원작자에게 보상이 돌아간다. 미술에만 그게 없었다.
화가가 처음 작품을 팔 때는 물론 돈을 받는다. 하지만 대체로 유명하지 않은 시기라 낮은 가격에 팔기 마련이다. 작품 가격이 컬렉터에게서 컬렉터에게로 손바뀜이 일어나며 천정부지로 치솟아도 그 작품을 생산한 화가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유통 단계에서 커지는 이윤을 나눠 가질 수 없었다. 작가는 가난하고 컬렉터만 돈을 버는 식이 됐다.
널리 회자되는 사례가 박수근(1914∼1965)이다. 박수근은 간경화로 51세에 타계했다. 죽은 뒤에야 미술세계가 인정받으며 점점 유명해졌다. 생전에 그를 알아주는 컬렉터는 5명도 안됐다. 신장과 간이 망가지고 합병증으로 생긴 백내장으로 한쪽 눈이 실명해 의안을 하면서도 가장의 책무를 다하려 그리고 또 그렸다. 수술비가 없어 로비스트로 널리 알려진 미술애호가 박동선씨에게 도와 달라 부탁을 했을 정도다. 수술비를 통 크게 지원해준 박동선의 호의에 감사해 리어카에 실어서 선물한 유화 40여점 중에는 재판매를 거치며 지금 수억,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작품도 있을 것이다. 30년 사이에 작품 가격은 놀라운 수준으로 올라갔지만 정작 가난한 화가 아버지를 둔 유족에게는 어떤 이윤 배분도 없었다. 음악의 경우 생맥줏집에서 노래만 틀어도 가수와 작사가·작곡가 혹은 유족에게 보상이 주어지는데도 말이다.
화랑과 경매사들은 추급권이 미술시장을 위축시킬 것이라는 원론적인 반대론을 되풀이한다. 약속이나 한 듯 “추급권을 도입한 나라는 몇 되지 않는다. 소수의 유명 원로 작가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뿐”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추급권 전문가인 이혜민 성균관대 객원교수는 “추급권은 2017년 기준 82개국이 도입한 것으로 조사됐고, 현재는 그 수가 90개국 정도로 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또 “유럽은 유명하고 다작하고 작품 가격이 비싼 작가들에게 부가 쏠릴까 봐 한 작품당 재판매 로열티로 받을 수 있는 총금액을 1만2500유로로 제한하고 있다”고 했다.
시행령을 통해 얼마든지 안전장치를 마련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정부도 시장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 미술진흥법의 시행 시기를 3단계로 구분하며 추급권의 경우 4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러니 반대만 하기보다 추급권을 보장하는 미술품의 종류, 로열티 비율, 단일세율이냐 차등세율이냐 등의 산정 방식, 로열티 추심기관 등에 관한 보완 장치가 시행령을 통해 마련될 수 있도록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는 게 낫다.
한국의 미술시장은 최근 몇 년 사이 MZ세대 등 새로운 컬렉터층이 유입되며 엄청나게 규모가 커졌다. 페이스, 리만머핀, 타데우스로팍, 페로탕, 화이트큐브 등 해외 유수의 갤러리들이 한국에 지점을 내고, 세계 3대 아트페어인 프리즈가 지난해 한국에 상륙한 것이 그 방증이다. 수치도 이를 증명한다. 글로벌투자은행 UBS가 집계한 2021년 세계미술시장에 따르면 ‘전후 및 동시대 미술’ 세계 거래액 부문에서 한국은 전체의 2%를 차지하며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에 이어 5위를 차지했다. 시장 규모가 커진 만큼 한국의 미술시장 체계도 투명화, 선진화돼야 한다.
손영옥 문화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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