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구둣방에서 내다보는 수소의 시대
“저건 이름이 뭐요?” 메이지 시대였다. 미국인이 늘어놓은 신문물을 보고 일본인이 물었다. 나중에 백화점에서 ‘잡화’라 불릴 것들이었고, 판매자는 ‘굿즈(goods)’라고 대답했나보다. 반면 질문자는 자신이 지칭했던 제품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 발에 끼우는 그 가죽 물건은 그래서 ‘구쓰(くつ)’가 되었다. 그게 현해탄을 건너서 ‘구두’가 되었다는 전설이다. 저 멋진 물건은 계속 닦아줘야 했다. 그래서 당연히 거기 맞는 직업이 탄생했다. 그게 광복 직후 유행가에서는 ‘슈샤인보이’라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그냥 구두닦이였다. 이들이 영화 속에서 ‘구딱!’이라 외치면 주인공 신사는 그냥 ‘야!’라며 불러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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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업혁명이 부른 생산과잉 시대
영업·유통이 제조 지배하게 돼
생산과 변환 복잡한 수소에너지
제한된 환경에서만 사용될 대안
」
세상 변화 맞춰 이 직업도 분화가 되었다. 아침마다 인근 사무실 돌며 구두를 걷어오는 이는 ‘찍새’, 걷어온 구두를 닦는 이는 ‘닦새’라고 불렀다. 이 분화는 산업발전을 이해하는 명료한 혜안을 제공한다. 역사의 시작점에 있던 것은 ‘닦새’라는 제조업 종사자였다. 그런데 도시와 산업이 커지면서 결국 교환이 중요해졌고 이를 책임지는 일이 별도의 직업으로 분화했다. ‘찍새’의 등장이다. 좀더 전문스럽게 표현하면 영업과 유통이 되겠다.
실크로드는 ‘찍새’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졌다. 그런데 어떤 영웅적 ‘찍새’들은 큰 바다로 나가서 인류사를 송두리째 바꿨으니 ‘대항해시대’다. 지구상의 해안 도시는 모두 ‘찍새’ 서식처가 되었다. 그럼에도 ‘닦새’들의 지배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생존재는 부족했고 이를 생산하는 자들의 입김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기어이 역할의 대역전이 이루어졌다. 생산량이 소비 수요를 넘어선 것이다. 맬서스의 걱정과 달리 세상은 기아가 아니라 비만을 걱정하는 곳으로 바뀌었다. 원재료를 싸게 사오고 상품을 비싸게 팔아오는 일이 더 중요해졌다. ‘닦새’들의 역설은 구두를 열심히 닦을수록 ‘찍새’들이 더 필요하고 중요해진다는 점이었다. 태평양을 건너 일본인들에게 구두를 늘어놓았던 그도 ‘찍새’였다.
한번 시작된 혁명은 지칠 줄도, 쉴 줄도, 돌아올 줄도 몰랐다. 결국 제조업 ‘닦새’들의 산업혁명을 넘어서 유통업 ‘찍새’들의 정보혁명까지 이루어졌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것도 결국은 ‘찍새’들의 분화와 발전을 표현한 것이다. 전 세계 기업순위를 보면 세상이 ‘찍새’ 천국이라는 점이 확연하다. ‘찍새’와 ‘닦새’가 결합한 기업 애플이 좀 독특하다. 유통 혁명으로 지구가 통합 시장이 되면서 ‘닦새’들은 점점 노동력 싼 국가로 밀려났다. 그건 중국과 그 주변 동남아시아다. 애플에서도 ‘찍새’들은 미국에 있지만 ‘닦새’들은 주로 중국에 있다. 물론 ‘찍새’만 있는 국가는 생존이 위험하다. 안보와 직결되는 ‘닦새’들은 자국 영토 안에서 키워야 국가경쟁력과 안보를 확보할 수 있다.
‘찍새’건 ‘닦새’건 에너지는 필요하다. 지금 지구의 화두는 생산확대가 아니고 탄소 감축이다. 그래서 에너지가 더 문제다. 그런데 유독 한국에서는 에너지 매체도 논란이다. 전기 외에 미래 청정에너지로 수소가 제시되어 정부투자 압력 커지고 지자체도 들썩거린다. 그런데 세상은 박사와 정치인보다 구두닦이의 설명이 간단명료할 때도 있다. 그 입장으로 비교해보자.
먼저 수소. 전기에너지를 이용해 수소를 변환하거나 추출하여 이를 초고압으로 압축하거나 극저온으로 액화해서 충전소로 운송하고, 충전소에서 충전한 수소를 산소와 결합시켜 전기로 변환해 모터를 돌린다. 복잡하고 어렵다. 간단히 말하면 전기를 수소로 저장했다가 다시 전기로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복잡하다. 변환과정과 구동 기관이 추가되면 에너지 손실이 생기고 고장 가능성이 높아진다. 뒤에 물만 남는다는 청정 이미지는 마지막 산소결합 과정만의 이야기다.
그에 비해 전기는 추출·압축·운송·환원 과정이 필요 없다. 전선으로 전송되니 소비자는 집에서 스위치만 켜면 된다. 그러면 바로 모터 돌아가고 물 끓고 조명 켜진다. 해결해야 할 전기의 문제는 배터리다. 불규칙 발전용량에 적응하는 저장방식과 충전시간 지체가 문제다. 그래서 등장한 대안이 수소다. 그러나 수소의 미래는 배터리의 문제 해결에 종속되어 있다. ‘닦새’는 생존하려면 배터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에너지원이 물리적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에서 수소의 공급방식은 현재의 LPG와 다를 바가 없다. 역사 속 인간은 귀찮은 일상을 선택하지 않았다. 구두가 ‘닦새’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고 ‘찍새’가 구두를 들고 찾아오는 게 구두닦이가 증언하는 역사다. 가장 낙관적으로 보아도 수소는 제한된 조건의 특정한 환경에서 사용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구둣방 작은 창으로 내다보니 수소가 주에너지원인 시대, 수소의 시대, 그런 건 오지 않을 것이다. 구두 미화 1회 무료이용권 걸고 내기해도 좋다.
서현 건축가·서울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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