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기의 시시각각] 무지한 야당, 무심한 용산
■
「 호우와 우크라 방문 연계는 억지
대통령실 소통도 민심과 큰 괴리
"내가 더 저급" 경쟁하는 것 같아
」
#1 WBC 야구 준결승 9회 말이 진행되던 지난 3월 21일 오전 11시 45분.
일본 무라카미 선수의 역전 끝내기 2루타가 나오기 직전 TV 화면에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속보 자막이 큼지막이 떴다.
'기시다 총리, 우크라이나 전격 방문'.
손에 땀을 쥐고 경기를 보던 일본 국민은 뜨악했다.
방송사에는 "방해하지 말라"는 항의 전화가 쏟아졌다. SNS에선 "한창 달아오르고 있는데 웬 우크라이나?" "기시다는 WBC 안 보냐?"는 글들이 쇄도했다.
그렇게 어렵게 성사된 기시다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WBC에 묻히고 말았다.
윤석열 대통령도 마찬가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전장을 찾은 건 이번이 최초였다. 자주 오는 기회가 아니었다.
그런데 타이밍이 꼬였다. 폭우로 국내에서 큰 피해가 속출했다.
그 바람에 우크라이나 방문의 본질과 성과보다는 '왕복 27시간, 체류 11시간'을 굳이 해야 했느냐는 논란에 휩싸였다.
대표적 피폭지 부차시의 참상을 둘러보는 사진보다 열차 안에서 호우 대책회의를 하는 사진이 각인됐다.
한·일의 두 지도자 공히 '우크라이나 운'은 참으로 없었던 셈이다.
#2 야당은 러시아와의 관계를 고려할 때 섣부른 방문이었다고 비난한다.
또 "수해 대처가 우선이니 방문을 취소했어야 한다"고 한다.
둘 다 외교의 냉엄함과 치열함을 모르는 어설픈 주장이다.
이미 우크라이나를 찾은 G7 정상들은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줄곧 주시해 왔다. 함께 갈 친구인지 지켜본 것이다.
2000조원에 달한다는 전후 복구 사업도 마찬가지.
어려울 때 단 한 번 찾아오지 않은 나라가 "우리에게 사업권 달라"고 요구하면 "그래, 그렇게 하자"고 답할 것 같나.
민주당은 또 "러시아에 사는 교민 16만 명, 160여 개 우리 기업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5년 임기 내내 죽창가를 불러대며 재일 한국인 400만 명, 1000여 개 우리 기업을 궁지로 몰아놓았던 정당이 그런 말 할 자격 있나. 그 뻔뻔함, 참 대단하다.
"일 총리는 태풍 대응을 위해 유엔 총회 출국을 연기했고, 캐나다 총리는 허리케인 대처를 위해 아베 국장 불참을 결정했고, 이탈리아 총리는 홍수 피해에 대응하기 위해 G7 회담 중 조기 귀국했다"는 주장도 억지에 가깝다.
일 총리는 여유 있게 잡았던 일정을 하루 연기했을 뿐 모든 만남을 예정대로 소화했다.
아베 국장은 G7 정상 단 한 명도 참석하지 않은 행사였다.
수시로 열리는 G7 만남을 '조퇴'한 것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전쟁터 우크라이나 방문을 동렬에서 비교하는 것도 참으로 아마추어스럽다.
#3 사실 이에 대처하는 대통령실도 한심하기는 매한가지다.
"지금 당장 한국 대통령이 서울로 뛰어간다고 해도 그 상황(수해)을 크게 바꿀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고 했는데, 그런 말은 대통령실 내부 대책회의 때나 주고받을 말이다.
국민을 향해선 "오랜 고뇌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국민들께 양해와 이해를 바란다"고 고개 숙였어야 했다.
그 정도의 상식, 소통 능력도 없는 자가 대통령실 핵심 참모라니 기가 막히다.
한두 번은 실수라 쳐도 이제는 상수가 돼 버렸다. 대통령이 책임을 묻지 않을 거란 확신 때문이라면 진짜 큰일이다.
김건희 여사의 명품 숍 방문 대응도 마찬가지.
경과야 대한민국 국민이 다 아는 이야기가 됐으니 여기서 '호객행위' 등의 설명은 반복할 필요도 없겠다.
다만 한 가지만 소개한다.
노태우 정부 때 김옥숙 여사가 어린이날 행사에 귀걸이에 짙은 화장을 하고 나타났다.
참모들은 노 대통령에게 "앞으로 여사께서 자제하시는 게 좋겠다"고 진언했다.
노 대통령은 이를 김 여사에게 그대로 전했다.
김 여사는 쓴소리한 참모를 불러 이렇게 말했다. "잘 알겠어요. 앞으론 제게 직접 말해주세요." 그런 식이었다.
세월도 대통령 부인의 역할도 많이 변했다.
하지만 권력기관의 소통과 대응은 이래야 한다는 국민들 생각과 믿음은 변하지 않았고, 변하지 않을 것이다.
김현기 순회특파원 겸 도쿄총국장 kim.hyunk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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