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헌법의 ‘창의 존중’과 타다 금지법
‘21세기 다윈’으로 불리며 사회생물학 분야를 개척한 에드워드 윌슨(1929~2021)은 인간을 정의하는 독특한 형질로 창의성을 꼽았다. 그것은 인류가 멸종을 피해 지금까지 견뎌 오면서 유전적으로 새겨진 ‘자연선택의 산물’이라고 설명한다.
대한민국 헌법에서 가장 독특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특징은 ‘경제상의 창의 존중’이다. 현행 헌법 제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특히 ‘창의를 존중함’이라는 대목이 들어간 것은 매우 독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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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가 정신 조이는 규제 여전
혁신을 장려해야 경제도 발전
국회는 잘못된 법 바로 고쳐야
」
2018년 국회도서관이 발간한 『세계의 헌법』은 세계 40개국의 헌법 전문을 번역한 책이다. 이 책에서 세계 각국의 헌법 조항을 일일이 찾아봤는데, 국가 경제의 운용 원리로 ‘창의 존중’을 규정한 조항은 우리나라에서만 발견할 수 있었다.
현행 헌법 제119조 1항의 내용을 다시 살펴보자.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창의란 ‘새로운 의견을 생각해 냄’을 의미한다. 이에 따르면 헌법에서 규정한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 활동에 대한 자유를 담보하는 것뿐 아니라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제 활동을 국가가 적극적으로 보호하고 장려하는 것을 의미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경제학자 조지프 슘페터는 기업가의 혁신적 역할을 ‘창조적 파괴’로 표현하면서 경제 활동에서 혁신을 추구하는 유형으로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새로운 제품 개발, 새로운 생산 방법 도입, 새로운 시장 개척, 새로운 공급처, 새로운 조직 구조의 실현이다.
슘페터는 이런 창의를 추구하는 경제 주체의 노력과 열정을 기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라 불렀다. 그는 기업가정신을 자본주의 경제 성장의 핵심 원동력으로 간주했다. 요컨대 헌법 제119조에서 강조하는 ‘경제상의 창의’를 슘페터의 경제 이론과 관련지어 보면 그의 이론에서 강조한 기업가정신을 촉진하고 장려하는 취지라 볼 수 있다.
‘경제상의 창의’를 존중하는 헌법 조항의 기원은 1948년 7월 17일 공포된 대한민국 헌법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헌법의 제5조에는 ‘대한민국은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자유·평등과 창의를 존중하고 보장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초대 법제처장이자 제헌헌법 초안 작성에 참여한 유진오(1906~1987) 박사는 제5조를 국가의 기본 성격을 정한 중요한 규정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가의 발전은 개인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제공하고 창의성을 존중해야 이뤄질 수 있으며, 이는 역사가 입증한 불변의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6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확정된 ‘타다’ 서비스는 운전자가 딸린 승합차를 이용자에게 빌려주는 디지털 플랫폼 기반의 새로운 렌터카 사업 모델이다. 그러나 기존의 타다 서비스는 더는 이용할 수 없게 됐다. 렌터카 사업자의 운전자 알선 허용 범위를 제한한 이른바 ‘타다 금지법’이 2020년 3월 국회에서 통과되면서 기존의 타다 서비스가 종료됐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이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인간과 기계, 현실과 가상, 제품과 서비스가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급속히 통합되고 있다. 산업 구조가 전례 없는 속도로 바뀌는 변화 속에서 타다 서비스와 같은 새로운 사업 모델이 규제나 이해관계 조정 부재 때문에 막혀버리면 이는 국가 경제 발전을 이끌 핵심 동력을 잃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제헌 헌법에서도 제시한 기업가정신을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걸맞게 재조명하고 그 취지를 살려 타다 금지법을 폐기할 필요가 있다.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이재웅 전 쏘카 대표는 “법을 바꿔 혁신을 막고 기득권의 이익을 지켜내는 일이 더는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타다 금지법이 여전히 존재하는 한 ‘제2의 타다’ 서비스, 또는 ‘제2의 타다 금지법’이 반복될 수 있다. 사회적으로 큰 낭비가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잘못된 입법이라면 시간이 흘렀더라도 국회가 나서서 신속히 수정하는 것이 제헌 헌법에서 제시한 기업가정신을 제대로 살리는 것 아닐까.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부경호 한국에너지공과대학 에너지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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