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기프티콘 서신

2023. 7. 20. 00:50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송길영 Mind Miner

카톡이 바쁘게 울렸습니다. 1년에 한 번 맞는 생일에 축하의 메시지가 연달아 들어옵니다. 몇 가지 기회와 우연이 맞아 떨어져서 이렇게 분에 넘치는 축하를 받는 해도 있는 듯합니다. 케익 위 초의 갯수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 기쁘기만 했던 어린 시절은 까마득합니다. 이제는 누군가 나이를 묻는 질문에 부끄러운 마음이 먼저 들 만큼 세월이 흘렀습니다. 바쁘게 살다 보니 1년 내 소식 한 번 전하기도 어려운데, 기술의 도움으로 저의 존재를 기억해 주실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에 카톡이 새삼 고맙습니다. 축하 문자만으로도 감사한데 기프티콘으로 선물을 보내주신 분들도 적지 않아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감사의 답장을 써 내려 가며 가만히 살펴보니 무언가 패턴이 보입니다.

「 생일 축하와 함께 온 기프티콘
마음이 들어있는 화폐와 같아
그간 못 챙겼던 사람들 찾아봐
주고 받음의 미덕은 변함없어

김지윤 기자

첫째로 기프티콘 사용 연령의 폭이 넓어졌습니다. 빠르게 확장되는 비대면 세상에서 자동화 시스템은 생존기술이 된 지도 한참입니다. 예전 멋들어진 펜글씨로 마음을 담아 보내던 연하장이 메신저의 살가운 문자로 바뀐 것처럼, 정성스레 포장해 손끝으로 전해주시던 선물 역시 온라인으로 배달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보내주신 물건을 통해 제가 나이가 들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받은 선물 중 건강보조식품이 압도적으로 늘어난 것이죠. 첫 번째 이유로 연령대가 높아진 선물의 발신자가 늘어났고, 이분들이 이런 품목을 선호하시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젊은 분들 역시 주로 선택하신 것을 보면, 제가 이제 건강을 적극적으로 챙겨야 할 나이로 접어들었음을 이해합니다.

세 번째로 과일을 보내주신 분들이 많습니다. 1인으로 빠르게 분화하는 세상에서 제철 과일을 소담스럽게 사 두고 식구들이 듬뿍듬뿍 집어 먹는 장면은 어느덧 추억이 되고 있습니다. 가까운 상점에 들러서 필요한 물건을 이것저것 고르는 것도,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하며 빈도가 확실히 줄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집 근처 편의점과 인터넷 쇼핑몰로 양분되는 쇼핑 세상에서, 과일은 그 양쪽 모두에서 구하기가 쉽지 않아 이제는 좀처럼 찾아 먹기 어려운 먹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틈에 망고나 멜론처럼 누군가 챙겨주시면 감사하기 이를 데 없는 과일들이 기프티콘으로 전해지게 된 것입니다.

매일 만나고 늘 교류하는 분들과의 일상이 켜켜이 쌓인 흔적 속 변화를 보면 세상이 성큼성큼 바뀌고 있음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됩니다. 하루하루가 변화라면 그 어떤 것도 심상히 바라볼 수 없습니다.

받은 선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분의 생신은 제대로 챙겼었나 문득 불안한 마음이 들어 지난 메시지들을 찾아보았습니다. 예전의 메시지와 선물함에 남아있는 주고받음의 기록들은 안도감을 주기도, 미처 돌보지 못한 관계에 대한 미안함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어릴 적 어른들이 대소사에 찾은 분들이 힘내라 전해주신 봉투를 챙기며, 이게 모두 빚이라 하신 말씀이 기억납니다. 손님이 주신 마음을 그분의 애경사에 돌려드려야 함은 도리를 지키는 삶의 기본이었습니다. 세끼를 챙기기도 어려운데 애경사의 부담은 누구나 마찬가지였기에, 그때마다 십시일반 돕는 것은 민초들 생존의 마지막 안전판이었습니다. 적금처럼 주고받은 부조의 풍습은 현실적 보험의 대안이었을 것이라 조심스레 추측해 봅니다.

거창한 금전이 오가지 않아도, 마음의 대차를 맞춰 나가는 예의 바른 삶을 위해 인사를 전하는 일은 핸드폰 위에서도 예외가 없습니다. 화면 속 작은 창에 관계 맺음의 살뜰한 과정이 고스란히 남습니다.

기프티콘의 효용은 하루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미처 쓰지 못한 선물함 속 쿠폰들은 기한을 연장하라 알려줍니다. 그때마다 보내주신 분이 생각나, 받은 날의 기쁨과 감사를 다시 한번 더 떠올립니다. 바쁜 일상에도 이따금 그분을 떠올리며 쓸모를 넘어 추억의 마음으로 확장되는 광경은 기프티콘의 아름다운 가성비를 보여줍니다.

기프티콘은 마치 화폐처럼 사회 네트워크의 혈관에서 흐르고 있는 듯합니다. 가치를 환금하고 주고받는 것처럼, 신용이 아닌 마음을 주고받는 매질로 쓰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단일한 모습으로 특별한 차이가 없는 지폐가 아니라, 그가 좋아할 만한 것을 세심하게 고른, 주는 이의 마음까지 결합한 특별한 화폐입니다. 불현듯 행복은 강도보다 빈도라 하신 학자의 말씀이 기억납니다. 큰 선물 하나보다 민들레 홀씨 같은 작은 선물을 더 많은 분과 나누면 우리 사회의 행복감을 더 높일 수 있지 않을까요. 이동 시간과 약속의 번거로움을 감수하기보다 간단히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메신저 속 작은 물건 하나가 우리의 기쁨을 늘여준다 생각하니, 오늘도 그리운 사람들에게 부지런히 행복의 화폐를 발행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송길영 Mind Miner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