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원묵의 과학 산책] 빗방울에 숨은 과학
비 오는 날엔 나다니기 힘들어지고 여러모로 활동에 제약이 생긴다. 그럼에도 맑은 날 볼 수 없는 빗방울의 향연이 펼쳐진다. 이 무대는 찾기 쉽다. 창문을 보라. 들이치는 빗방울은 변화무쌍이다. 가벼운 비는 유리창에 드문드문 세로로 선을 긋는다. 각각의 선은 연속이 아니라 점점이 찍힌 작은 물방울들로 이루어졌다. 억수 비가 내릴 경우 간혹 유리창에 물줄기가 찍 그어지긴 하지만 몇 초 안에 끊어지며 일렬로 늘어선 물방울로 바뀐다. 버스같이 지붕에서 빗물이 흘러내릴 경우 물줄기가 오래 유지될 수도 있다. 이때 세로로 늘어선 물줄기들의 간격은 보통 수㎜ 이상이다. 물줄기 없이도 방울방울 그어진 선들은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약속이라도 한 양 일정 간격을 유지한다. 전선에 가지런히 앉아있는 새들 같다.
떨어지는 비는 창 아무 데나 들이치는데, 이러다 이미 붙어있는 방울을 만나면 합쳐져 더 커진다. 아주 크게 자란 방울은 자체의 무게로 흘러내린다. 그 경로에 있는 다른 빗방울의 흔적도 지우며 내려온다. 물에 미치는 중력과 표면장력을 고려할 때 약 2.7㎜보다 크게 자란 물방울은 흘러내리고 이것이 빗자국 사이의 간격을 결정하는 잣대가 된다.
계속 긋고 지우는 낙서 같으면서도 적당히 세로로 정렬된 빗자국은 누구나 비 오는 날이면 접할 수 있는, 유리창을 캔버스로 한 자연의 행위 미술이다. 이처럼 비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움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물난리를 일으켜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가기도 한다. 인류 활동이 초래한 열역학적 귀결이다. 기후 변화의 피해를 완화하는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물에 대한 여러 각도의 이해가 필요하다. 이는 대체로 제어된 실험실에서 일어나지만, 몰입하여 연구하는 이성은 유리창에 무심히 들이치는 빗방울을 바라보는 감성과 연결되어 있다. 자연에 대한 근본적인 외경심이랄까.
황원묵 미국 텍사스 A&M대 생명공학부 교수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오늘도 분유 먹는 황유민…55㎏ 몸으로 장타 치는 비결 | 중앙일보
- 이번엔 밥먹다 '콘돔 오리고기' 발칵…中대학식당 황당 해명 | 중앙일보
- 2년간 매일 10L 물 마시던 英남성, 당뇨 아닌 '이 암' 이었다 | 중앙일보
- "프라이팬 속 이 화학물질, 면역력 떨어뜨린다" 연구 보니 | 중앙일보
- 작품 200점 ‘신촌 수장고’ 주인은 90년대생 부부 컬렉터 | 중앙일보
- 서초구 초등학교 교사, 교내서 극단선택…학생들 등교 전 발견 | 중앙일보
- 한국인 1.99명당 車 1대…전기 승용차는 '아이오닉5' 최다 | 중앙일보
- '쓰팔' 품앗이방 떴다…"구조대 출발" 요즘 1030 잠 못드는 이유 | 중앙일보
- [단독] "이승만 재평가" 뜻모은 尹 남자들…한동훈은 '홍보' 조언 | 중앙일보
- 20대 여성 느닷없이 "만져달라"…60대 택시기사 트라우마 호소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