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연봉 안 주면 차라리 니트족 될래요…“공기업보다 대·중견기업 선호” 60%

설문조사로 본 잘파세대

Z세대의 시작인 1995년생의 경우 올해 28살이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기 충분한 나이며, 이미 신입사원이 된 이도 적잖다. 잘파세대는 코로나19 영향을 받아 온라인 세상에 익숙하고,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자연스레 취업 시장에서 이전 세대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학점 좋지만 기업서 외면

코로나 학번에 ‘소통 부족’ 우려

잘파세대는 대학 시절 코로나19를 온몸으로 겪었다. 특히 이 시기 대학 신입생이 된 20~22학번은 사실상 코로나의 최대 피해자이자 최악의 학번으로 불린다.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대외 활동은 물론 동아리 등 교우들과 교류할 시간이 전면 차단됐기 때문이다. 20학번 중에는 대학 입학 후 3년 내내 학교에 안 나가다 4학년이 돼서야 처음 학교에 나갔다는 이도 적지 않다.

물론 코로나 혜택도 없진 않았다. 코로나가 발생한 2020년부터 2년간 전국 대학이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 시스템으로 전환하면서 학점 받기가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따르면 2020년 기준 B학점 이상 취득 학생의 비율이 87.5%로 2019년(71.7%)보다 15.8% 높았다. 2022년, 학점 평가의 공정성 문제가 지적되자 절대평가 기준이 다시 상대평가로 환원됐다.

기업 인사 담당자들도 코로나 시기의 ‘학점 인플레이션’과 ‘대면 소통 부족’ 현상을 잘 알고 있다. 국내 기업 인사 담당자들이 코로나 학번 신입사원의 업무 경쟁력을 우려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HR테크 기업 인크루트가 지난 2월 국내 기업 인사 담당자 442명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53.8%는 “코로나 학번의 경쟁력 하락이 우려된다”고 답했다. 부족한 분야로는 사회성이나 적응력을 꼽았다. ‘전공 지식 부족’을 우려한다는 응답도 33.2%로 집계됐는데, 이에 응답한 인사 담당자 중 90.3%는 “학점 인플레로 대학 성적의 변별력이 사라졌다”고 답변했다.

잘파세대 취업 선호도는?

대기업 선호, 자격증·토익스피킹 중시

잘파세대들은 어떤 곳에 취업하길 원할까. 이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추구하는 앞선 세대와는 달리 임금이 높은 ‘대기업·중견기업’을 꼽았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역시 ‘연봉’으로 나타났다.

매경이코노미는 잘파세대 취업 선호도를 파악하기 위해 인크루트에 의뢰해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총 345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 ‘대기업·중견기업을 선호한다’는 응답이 60.7%로 공공기관·공기업(19.7%)과 큰 차이를 보였다. 입사할 기업을 선택할 때 가장 우선하는 기준도 ‘초봉(연봉)’이었다. 대학생들이 과거에는 ‘고용 안정성’을 중시하고 공공기관 취업을 선호했던 것과 대비된다.

공무원 취업을 희망하는 경우에도 언제든지 다른 형태의 취업으로 돌아설 의지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경이코노미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족’ 475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공무원 준비 외 다른 형태의 취업 준비도 병행하고 있거나 향후 병행할 의향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병행 의향 있다’는 응답이 69%로 나타났다.

또 잘파세대들은 스펙을 쌓을 때 ‘실리’를 중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장 중시하는 스펙은 자격증, 토익스피킹, 채용형 인턴십 준비, 학점 관리 순이다. 반면, 과거에 비해 등한시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스펙은 봉사 활동, 성형·시술, 이색 자격증 등이다. 뜨는 스펙, 지는 스펙을 선택한 이유 모두 기업에서의 요구 여부나 실무 활용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들 세대가 임금을 중요시하는 만큼 첫 직장 임금 수준이 불만족스러우면 일찍 퇴사하는 경향도 포착된다. 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층 부가조사 결과’에 따르면 첫 일자리를 그만둔 청년층의 첫 직장 평균 근속연수는 1년 2개월가량으로 조사됐다. 일자리를 그만둔 청년층의 45.1%는 ‘보수, 근로 시간 등 근로 여건 불만족’을 퇴사 이유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잘파세대가 소신과 주관이 뚜렷해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잘파세대는 소신이 강하고 자기 주관이 뚜렷한 세대”라며 “대기업이나 높은 연봉을 선호하는 합리적인 선택뿐 아니라 개인적인 가치 실현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려하기 때문에 과감하게 직장을 떠난다”고 말했다.

딱히 갈 곳 없으면 창업

중소기업·스타트업 취업 기피

기업은 잘파세대에게 소통 능력을 바라고, 잘파세대는 높은 연봉을 받길 원한다. 이 같은 미스매치에 더해 일자리 자체가 줄어든 탓에 ‘니트족(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을 택하는 잘파세대가 많아졌다. 니트족은 취업 의지 없이 그냥 쉬는 청년을 일컫는 신조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4월 비경제활동인구 중 20대 ‘쉬었음’ 인구는 38만6000명으로, 코로나19 여파로 취업 한파가 닥쳤던 2020년 4월(42만6000명) 이후 최고치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상을 즐기고 쉬는 잘파세대가 많다”며 “일을 구하려 해도 일자리가 없기도 하고, 개인 생활을 중요시하는 특징이 맞물린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에 비해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에 대한 취업 정보를 얻기 힘들다는 것도 문제로 꼽는다. 황경진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잘파세대는 취업 시장에서 어떤 스타트업, 중소기업이 자신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곳인지 관련 정보를 찾기 어렵다”며 “고등학교나 대학 교육 과정에서 어떤 중소기업이 좋은 일자리인지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창업에 눈을 돌리는 잘파세대도 많아졌다. 통계청에 따르면 15~29세 자영업자는 2018년 1~8월 2.94%에서 지난해 1~8월 3.4%로 증가했다. 실리를 추구하는 잘파세대 특징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는 “정부, 대학에서 창업 지원을 늘리다 보니 중소기업에 취업할 바에는 창업하겠다는 잘파세대가 많아졌다”며 “이들은 이념, 가치보다는 실리적인 선택을 하는 것이 특징”이라고 귀띔했다.

인터뷰 |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 ‘실리주의’ 강한 잘파세대…구분하되 포용을”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

이수진 서울대 소비트렌드분석센터 연구위원은 2016년부터 매년 베스트셀러인 ‘트렌드 코리아’ 시리즈 집필에 참여하며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키워드를 소개해온 ‘트렌드 전문가’다. 다양한 분야 기업을 대상으로 트렌드 기반 미래 전략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Q. 잘파세대는 취업할 때 ‘고용 안정성’보다 ‘연봉’을 우선시하는데.

A. 잘파세대가 가장 선호하는 직장은 대기업이다. 최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시생’이 넘쳐났지만 확실히 다른 가치관을 지닌 세대가 등장했다는 의미다. 많은 연구 결과에 따르면, 후기 Z세대로 갈수록 ‘실리주의적 성향’이 강한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주의 키즈’로 부르는 이유다.

Q. 잘파세대들이 구직에 단념하거나 주저하는 이유는.

A. 요즘 ‘실패 없는 ○○’이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일상 속 작은 실패를 경계하는 현상이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SNS를 통해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금방 발견할 수 있다. 자신과 압도적인 실력 차이를 매분, 매초 스마트폰 너머로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것이든 새로 시도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이런 현상이 잘파세대가 ‘도전’에 주저하는 큰 요인임에는 분명하다.

Q. 잘파세대를 보다 깊게 이해하려면.

A. 세대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 세대를 이해하는 방향으로 담론이 발전해야 한다. 요즘 세대적 차이를 넘어 갈등에 대한 신호가 많이 보인다. 잘파세대도 밀레니얼세대, X세대, 베이비부머세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들이 살아온 궤적에 관한 관심이 필요하다. 다른 세대도 잘파세대를 이해해야 함은 물론이다. 세대적 담론이 다른 세대를 구별하며 거리두기를 하는 것이 아닌, 세대를 포용하기 위한 발판이 돼야 한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18호 (2023.07.19~2023.07.25일자)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