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빠져 살았던 청년, 지금은 연구하는 세계적 의사"

이금숙 기자 2023. 7. 19.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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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닥터] 신철 하나이비인후과병원 H리버스에이징센터장
베토벤 머리에 뿔테 안경, 누가 봐도 ‘예술가 포스’가 충만했다. 실제 그의 인생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 고등학교를 안다니고 미군 부대를 돌며 기타리스트로 공연을 했던 그가 돌연, 미국에 가서 뒤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해 한국으로 돌아와 고려대 의대에 입학, 의사의 길을 걷고 있다. ‘보통’ 의사가 아니다. 전세계 과학자 랭킹에서 톱 2% 안에 드는 의사다.(AD scientific index)
코골이와 수면무호흡증이 병이라는 인식이 거의 없을 때 수면장애 치료 시스템을 국내 도입했다. 국내 최초로 안산 코호트 스터디를 주도했고 지금까지 SCI논문만 수백편을 썼다. 그런 그가 고려대 의대에서 정년을 마치고(고려대 의대 호흡기내과 명예교수) 하나이비인후과병원 H리버스에이징센터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수면 치료와 함께 노화 방지 치료를 한다. 신철 센터장을 만나 그의 자유로운 인생 여정과 수면, 리버스 에이징의 개념에 대해 들었다.    
신철 하나이비인후과병원 H리버스에이징센터장/신지호 기자
-화려한(?) 과거에 대해 알려달라?
중학교를 세번이나 옮겨 다닐 정도로 어릴 때 공부엔 관심이 없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비지스 1집 Holiday를 듣고 음악이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음악에 미쳤다. 학교를 안 가고 기타 연습을 했다. 우연한 기회에 오디션을 통과해 미8군 부대에서 밴드 활동을 했다. 부산, 문산, 대구 등 전국 각지의 미군 부대에서 한 달씩 공연을 했다. 당시만 해도 밴드의 선배들은 상당수가 음대를 나온 ‘전문가’였다. 학업을 안 마친 나는 미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22세에 간호사인 누나(신경림 전 대한간호협회장)가 있는 미국으로 무작정 갔다. 학원을 다니면서 시험을 쳐서 센트럴 텍사스 칼리지에 들어갔다. 그 때 알았다. 내가 포토메모리(사진 찍듯이 기억을 하는 것)라는 걸. 학비를 충당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국에서 교포를 대상으로 특별 전형으로 의대 신입생을 뽑는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에 가서 시험을 봤다. 80년대 초반 정치 상황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교포들이 지원할 리 없었다. 미달이었지만, 시험을 봐서 고대 의대에 합격했다. 그런데 입학을 하니 문제는 수학이었다. 수학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고는 의대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20대 중반에 대학에 들어갔지만, 또 휴학을 하고 노량진으로 갔다. 노량진에서 ‘목숨 걸고’ 공부를 했다. 그 당시에 수학, 물리를 제대로 공부를 안 했더라면 코호트, 빅데이터 연구를 하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으로 또 갔다? 
고대 의대에 들어가서 공부를 따라잡기 위해 2년이나 유급을 하다보니 나이가 너무 많았다. 선후배 위계가 뚜렷한 한국에서 수련을 받을 자신이 없었다. 미국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지역인 브롱스에 있는 브롱스 네바다 병원에서 나를 받아줬다. 그 병원은 환자의 90%가 에이즈 환자였다. 90년대 초반이었던 당시만 해도 에이즈 환자는 거의다 사망했다. 하루 저녁에 에이즈 환자 5~6명이 숨졌다. 검사를 해보면 폐가 하얘질 정도로 폐렴이 심한 상태였다. 검출된 박테리아도 없었는데 말이다. ‘왜 그럴까’ ‘왜 에이즈 환자 중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을까’ 이런 의문들이 막 생겨났다. 리서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가 됐다. 어렵사리 통계 프로그램을 배웠다. 그 다음부터 연구에 관심을 쏟았다. ‘호흡기내과’ 펠로우를 하고 마흔살이 다 돼서 하와이로 갔다. 호흡기내과 전문의라 중환자실 근무도 많이 했는데, 중환자실의 70% 이상이 노인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노인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 항생제의 경우도 노인의 경우는 성인 용량의 절반만 써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앞으로 노인의학이 비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와이 의대에서 ‘노인의학’ 펠로우를 또 했다. 1998년에 고려대 안산병원이 개원을 했고, 합류하게 됐다. 고려대 의대에서 배운 게 많으니 후배 양성에 힘을 쏟아야겠다고 생각을 했다.

-안산 코호트 연구를 주도했다?
2001년부터 지금까지 23년 동안 '안산 코호트 스터디'를 진행했다. 코호트 스터디란 특정 질병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는 특정 요인을 가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선정한 후 일정기간 동안 이들을 추적 관찰하면서 특정 질병의 발생 양상을 비교하는 방법이다. 정부의 지원을 받아 안산시민 5000여명의 유전자·생활습관·질병상태를 정기적으로 추적 조사하고 있으며, 이 자료를 이용해 주로 코골이, 수면무호흡증과 고혈압·당뇨병·심장병 등과의 상관관계를 밝혀냈다. 한발 더 나가 치매, 만성피로, 감염질환, 면역질환, 알레르기 질환, 발기부전, 우울증, 정신질환 등 모든 병이 코골이·수면무호흡증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코호트 스터디를 통해 밝혀냈다. 코호트 스터디는 돈과 시간이 많이 들지만 질병 발생에 영향을 끼치는 모든 변수를 과학적으로 밝혀낼 수 있어 의학적으로 매우 유용하다. 처음 모집했던 대상자들은 40대였지만 지금은 60대다. 대규모 코호트 스터디로 유명한 기관인 영국 바이오뱅크의 경우 2005년부터 80만~100만 명을 추적하고 있다. 우리가 2001년에 시작했으니 영국보다 빨랐다. 이런 성과들로 하버드 의대와 코호트 연구를 같이 하고 있으며, 독일 그라프트 대학 등 세계 유수 대학들에서 나에게 강의를 요청하고 있다.

-왜 수면에 유독 관심이 있었나?
내가 수면에 문제가 있었다. 뒤늦게 학업을 시작하면서 졸음과 피로와의 싸움이 심했다. 당시에 운동량도 없어 살도 쪘다. 미국 뉴저지에 수면센터가 있어 수면다원검사를 받았다. 그 때 수면무호흡증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수면 질환에 관심을 갖게 됐고, ‘인종 간 수면호흡장애를 유발하는 구조적인 문제가 다르다는 것’에 대해 박사 논문을 썼다. 고려대 안산병원에 와서는 국내 처음으로 수면센터를 열었다.

-수면무호흡증 치료는 받았나?
내가 수면무호흡증인 것을 알면서도 치료받을 시간이 없었다. 2000년 43세의 젊은 나이에 심근경색이 와서 심장 스텐트 시술을 했다. 수면무호흡증이 심장에 타격을 준 것이었다. 그 다음부터 양압기 치료를 받았고 15년 동안 밤마다 착용했다. 

신철 하나이비인후과병원 H리버스에이징센터장이 항노화와 회춘에 대해 설명하는 모습. /신지호 기자
-지난해 하나이비인후과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이유는?
하나이비인후과병원 이상덕 병원장과는 의대 시절부터 막역한 사이였다. 나이가 많고 의대 공부를 어려워 하는 나를 살뜰히 잘 챙겨줬다. 이상덕 병원장의 제안으로 고려대 의대 정년에 맞춰 하나이비인후과병원으로 옮기게 됐다. 여기서 수면 치료를 계속하고, 수면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노화 관련 치료를 하고 있다.

-리버스 에이징 센터를 열었다? 
노화는 비가역적이라고 알고 있다. ‘노화를 막는 것을 넘어 나이를 되돌릴 수 있을까’에 대해 수많은 연구자들이 회의적으로 보는 가운데, 최근 주목할만한 연구가 나왔다. 세계적인 항노화연구자인 미국 하버드대 싱클레어 교수가 늙고 눈이 먼 생쥐를 대상으로 13년 연구 끝에 뇌, 근육, 신장 세포를 젊게 만들고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게 하는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회춘’이 실제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다. 노화를 막기 위해 우리 병원은 ‘고압산소 치료(HBOT)’에 주목한다. 이스라엘 텔아비브대학을 필두로 여러 연구 기관들이 고압산소 치료가 노화 줄기세포를 줄여 젊은 줄기세포에 힘을 준다는 연구결과를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고압산소 치료란 고압산소가 나오는 체임버에 들어가서 100% 농도의 순수 산소를 호흡, 체내 산소 농도를 높이는 치료다. 고압산소 치료를 하면 노화 시계라고 할 수 있는 텔로미어 길이 증가, 인지기능 향상, 피부노화 억제 등의 효과가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 면역기능도 좋아진다. 면역세포의 대표 격인 T세포를 만들어내는 데 도움을 준다.

고압산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건강한 생활습관도 따라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이 건강한 수면이다. 하루 1만 보 정도 걷는 적절한 운동, 식이요법(식사는 조금씩 자주하고, 신선한 채소와 비타민D섭취, 단백질 충분히 섭취) 등을 병행해야 한다.

-질좋은 수면을 하기 위한 팁이 있다면?
불면증으로 고통을 받는 50세 이하라면 수면제, 양압기, 운동을 적절히 적용해야 효과를 본다. 그런데, 50세 이후의 불면증은 다르다. 수면제를 쓰면 무호흡이 더 심해진다. 60대 중반이 되면 양압기를 안써도 된다. 나이가 들면서 기도 근육이 늘어져 기도가 잘 열리면서 수면무호흡 증상이 줄어든다.  나의 경우도 40대 초반부터 15년 간 써왔던 양압기를 지난 해부터 안쓰고 있다. 과체중만 아니라면, 잘 때 옆으로 30도 정도 기울기로만 누워서 자면 수면무호흡·코골이 없이 개운한 잠을 잘 수 있다. 죽부인이나 쿠션을 끌어안고 자면 된다. 나의 경우는 양압기 없이 6시간 동안 한번도 안 깨고 잔다. 다만 입면제를 잠들기 전 반 알 정도 먹는다.

-청년기를 불태웠던 ‘음악’은 어떻게 됐나?
50대 초반 기타를 사서 연주를 시작했다. 재즈바에서 가끔 공연한다. 어느 날 기타리스트 이두원 씨가 내 기타 소리를 듣더니 ‘된장 냄새’가 난다고 했다. 70년대 미군 부대에서 공연했던 실력이 녹슬지 않은 것 같았다. 얼마 전엔 작은 공연장에서 개인 콘서트도 열었다. 기타와 함께 보컬로 활동한다. 

신철 하나이비인후과병원 H리버스에이징센터장이 고압산소 체임버 앞에 서있는 모습./신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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