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면 비행기 타는 제주… 육지 원정진료 끝날 날 오나

문정임 2023. 7. 19.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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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상급종합병원 지정 신청 준비 박차
제주국제공항에 14일 진료를 받기 위해 도외로 나가는 환자를 위한 휠체어가 놓여있다. 현재 제주도 입원대상 환자의 16%가량이 도외로 원정 진료를 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시 연동에 사는 고모(68)씨는 4년 전 혈액암의 일종인 골수이형성증후군 진단을 받은 후 한 달에 두세 번 서울에 있는 병원을 다녔다. 제주에 있는 종합병원에도 혈액종양내과가 있지만 전문적으로 중증질환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진료받고 싶어 상급종합병원을 택했다. 검사를 받고, 며칠 후 다시 결과를 들으러 가서 항암치료 날짜를 잡은 후 집에 왔다가 다시 서울로 가 입원하는 번거로움을 감수했다. 치료 기간이 길어지면서 기력이 빠져 휠체어를 타야 했다. 비행기 안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비닐에 입을 대고 토기를 참았다. 살아야겠다는 일념에 힘든 줄을 모르고 오갔다.

하지만 고씨는 얼마 전부터 제주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교통비도 만만치 않고, 무엇보다 번갈아가며 연차휴가를 내 동행해 주는 자녀들에게 미안함이 컸다. 17일 제주의 한 병원에서 만난 고씨는 “이제는 오갈 힘이 없고 가족들에게 미안해 제주로 병원을 완전히 옮겼다”며 “진료에선 아쉬운 부분이 크지만 신세를 지지 않게 돼 마음은 차라리 편하다. 입원하고 보니 많은 환자가 나 같은 수순을 밟는 것 같더라”라고 씁쓸해했다.

고씨처럼 원정진료에 나선 제주도민은 지난 10년간(2012~2021) 연평균 1만4000명에 달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역별 의료 이용통계를 보면 제주 밖으로 원정진료를 나간 도민은 2012년 1만659명에서 2014년 1만1321명, 2016년 1만5508명, 2018년 1만7006명으로 매년 증가했다. 2020년 1만4928명으로 소폭 줄었지만 이듬해 1만6109명으로 다시 늘었다. 전체 도민 환자(입원 기준)의 13.8~16.5% 수준이다.


2021년 기준 평균 병원 방문 날짜는 19.7일이었고, 한 해 동안 지출한 도외 병원 진료비는 1080억원이 넘었다. 도민 환자 총 진료비 4261억원의 25.4%에 달했다. 여기에 환자와 보호자가 서울을 오가며 쓴 항공료와 숙박비 등을 합하면 실제 지출액은 더 커진다. 고씨의 경우 매년 600만원씩 4년간 2400만원을 항공료로만 지출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고씨만의 일이 아니다. 제주에 중증환자를 치료할 상급종합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상급종합병원 제도가 시행된 2011년부터 서울권역에 묶였다. 서울 및 수도권 일부 지역 병원과 함께 심사를 받게 되면서 애당초 경쟁에서 밀릴 것을 예단해 지금까지 단 한 차례도 지정 심사를 신청하지 않았다.

상급종합병원은 난이도가 높은 중증질환 관련 의료행위를 전문적으로 하는 최상위 의료기관이다. 전국에 45곳이 지정돼있다. 보건복지부가 3년마다 병상, 시설, 의료인력, 환자 구성 상태, 의료서비스 수준 등을 평가해 권역별로 지정한다. 제주는 세종시를 제외하고 전국 17개 시도 중 유일하게 상급종합병원이 없는 지역이다.

제주지역 인구가 가파르게 늘고, 진료권에 대한 도민 요구가 확대되면서 상급종합병원 지정은 더 두고 볼 수 없는 문제가 됐다. 제주도가 제8기 제주도 지역보건의료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지난해 도민 10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공공보건의료 인식조사에선 36.8%가 도내 의료서비스 수준이 ‘미흡하다’고 답했다. ‘우수하다’는 응답은 17.1%에 그쳤다. 의료서비스가 취약한 이유로 ‘의료진 실력 부족’을 1위로 꼽았다. 도외 병원을 왜 이용하는지 묻는 질문에서도 ‘의료진 실력이 더 우수해서’란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 같은 여론은 정치권 공약에 반영됐다. 지난해 출범한 윤석열 정부와 민선 8기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제주도는 최근 상급종합병원 지정 준비를 위한 전담조직을 구성, 지난 13일 첫 회의를 개최했다. 평가항목에 대해 3년간 준비해 2026년에 상급종합병원 지정을 신청할 계획이다.

지정까지의 과제는 산적해 있다. 우선 권역 분리가 가장 시급하다. 서울시 및 경기도 8개 지역 대형 병원들과 경쟁해야 하는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 지난 2월과 6월 보건복지부를 찾아 심사권역 분리를 공식 요청했다. 지리적으로 동떨어진 제주의 특수한 상황과 암환자 사망비율(6위), 비만율(1위), 고위험 음주율(2위) 등 건강 지표의 악화, 진료·교통비 증가 등을 강조하면서 권역 분리를 계속 설득해 나갈 예정이다.

상급종합병원 지정·평가 기준 중 절대평가 항목인 전문진료질병군 비율 확보도 큰 난관이다. 전문진료질병군은 희귀성 질병, 합병증 발생의 가능성이 높은 질병, 치사율이 높은 질병, 진단 난이도가 높은 질병, 진단을 위한 연구가 필요한 질병 등으로 지정신청일 이전 2년 6개월 동안 신청 병원 입원 환자의 30% 이상이어야 한다. 제주의 경우 지정 추진이 유력한 2개 종합병원의 전문진료질병군 비율이 지난 2018~2019년 기준 12.96%였다.

강동원 제주도 도민안전건강실장은 “제주도민들이 가장 불편해하는 의료 서비스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양질의 병원 서비스 제공과 상급종합병원 지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며 “보건복지부가 진료권역 분리 타당성 용역을 발주하기로 한 만큼 결과를 기대하면서 동시에 도내 종합병원의 진료역량 강화 방안을 찾아 도내 종합병원과 협의하는데 행정력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제주=글·사진 문정임 기자 moon1125@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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