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끼리바위·고마루·돈너미… 진귀한 雨요일 풍경

남호철 2023. 7. 19.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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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억5천만년 카르스트 지형’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의 속살
작은 교회와 하트 조형물이 설치된 청옥산 육백마지기의 풍력발전기 뒤로 해가 저물고 있다.


올여름은 유독 비가 많이 내리고 장마 기간이 길 것으로 예보됐다. 비는 산수풍경을 그리는 붓이다. 비 온 뒤 운무는 한 폭의 수묵화를 그려놓는다. 비가 오는 날 가면 금상첨화인 풍경도 많다. ‘후두둑~’ 빗방울 소리가 달뜬 마음을 가라앉히기도 한다. 우중산책(雨中散策)은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여정이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는 비 온 뒤에 볼 수 있는 진귀한 풍경이 많다. 먼저 미탄면 기화리다. 마을 뒷산에 코끼리바위가 있다. 재치산(751m) 바위 봉우리가 거대한 벽처럼 우뚝 솟아 있고, 중턱에 2개의 커다란 동굴 구멍이 나 있는데 코끼리 눈처럼 보인다. 그 가운데로 코끼리 코가 길게 늘어져 있다. 비가 오면 높이 200m의 코 줄기를 따라 물줄기가 흘러내리며 폭포를 이룬다.

비가 내린 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기화리 '코끼리바위'의 코를 따라 작은 물줄기가 흘러내리고 있다.


이 일대는 약 4억5000만년 전 형성된 석회암지대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재치산 남사면 해발 530~750m 산간 마을인 한탄리 고마루 마을에 내린 빗물이 석회암 동굴을 타고 내려와 산 중턱에 있는 굴을 통해 빠져나오면서 폭포처럼 흘러내리는 것이다. 강수량에 따라 폭포의 규모가 시시각각 변하고 비가 오지 않는 날에는 폭포가 아예 형성되지도 않는다. 코끼리바위는 마을 앞 도로에서도 보이지만, 마을 안쪽에 마련 넓은 주차장에서 가깝게 볼 수 있다.

한탄리는 여러 가구가 옹기종기 모여 산촌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산자락과 고개를 넘으면 제법 널찍한 분지가 나타난다. 고마루 마을이다. 이 지역 산촌 중에서도 가장 오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고원분지 마을이다. 높은 곳에 위치해 예부터 ‘고마루’라고 불렸다. 이곳은 카르스트(karst) 지형이다. ‘미탄 카르스트’라는 별칭을 지녔다. 카르스트는 옛날 바다 밑이었던 곳이 융기해 육지가 된 땅이다. 석회암이 녹아서 형성된 지형으로, 산간지방에서 주로 발견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땅이 움푹 팬 돌리네 지형이 대표적이다.

고마루 마을은 석회암 지층이 내려앉는 돌리네 현상에 의해 만들어진 마을이다. 수십 개의 돌리네(원형 또는 타원형으로 움푹 파인 땅)와 우발레(돌리네 침식으로 만들어진 불규칙한 웅덩이)가 분포한다. 화전민이 대부분인 이곳 주민들은 돌리네를 ‘밭구덩’이라고 부른다. 물 빠짐이 좋아 밭농사가 가능하며 분지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일찍이 화전민이 유입돼 밭을 일구며 살아가던 곳이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았지만 지금은 상당수 떠나고 몇 가구만 남아 있을 뿐이다. 아직 떠나지 않은 주민들이 감자, 옥수수 등 밭작물을 경작하고 있다.

재치산 기슭 석회암 지층이 내려앉아 형성된 돌리네 지역에 고마루 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산비탈 밭에 풀이 무성하다. 그 사이에 ‘국가에서 사들인 땅’이라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곳곳에 서 있다. 고마루 일대가 특이한 카르스트 지형이며, 희귀 동식물 보존 구역이란 사실도 알리고 있다. 풀숲 사이로 버려진 폐가도 여럿 보인다.

인근에 비슷한 카르스트 지형으로 율치리 ‘돈너미 마을’도 있다. 마을이 위치한 해발고도 525~700m 지역에 돌리네나 우발레가 형성돼 있다. 돈너미산(768.9m) 주변에 20여 가구의 자연부락이 있었으나 대부분 떠났다.

코끼리바위가 있는 기화리에서 동강 쪽으로 더 가면 평창군 최남단에 자리한 마하리 ‘어름치 마을’이다. 어름치는 천연기념물 제259호인 민물고기다. 산란탑을 쌓는 독특한 산란습성을 갖고 있다. 여울의 윗부분 바닥의 자갈을 파내고 알을 낳은 뒤 파낸 주변의 자갈을 하나씩 입으로 물어와 깊이 5~8㎝, 지름 30~50㎝, 높이 10~20㎝ 정도의 돌무덤 모양으로 쌓는다. 어름치만의 산란행동이다.

미탄면에서 최근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차박 성지’ 청옥산이다. 해발 1200m 정상 부근은 비교적 평탄한 지형으로, ‘육백마지기’로 불린다. 평창군이 버려진 경사면 밭 일부를 2018년 야생화 단지로 복원하면서 최고의 여름 여행지로 변신했다. 산비탈에 탐방로를 정비하고, 작은 교회와 하트 조형물을 설치해 인증샷 명소로 만들었다. 풍력발전기가 늘어선 산 능선을 짙은 안개가 감싸면 몽환적인 풍광이 펼쳐진다. 여름철 별 보기 명소이기도 하다. 고랭지 채소밭과 화훼 단지까지 연결되는 길이 연결돼 있어 정상까지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야생화 단지가 조성된 뒤 청옥산은 차박이나 야영이 금지됐다.

육백마지기 아래 회동리가 있다. 회동(檜洞)이란 마을 이름은 횟돌(석회암)이 많이 난다는 ‘횟골’에서 유래됐다. 마을은 앞골, 산 안쪽을 뜻하는 ‘둠안’이 변한 두만동, 마을 길의 굽이가 많고 심하다고 해서 불리는 자진구비, 장자터 등으로 이뤄져 있다.

마을에 1급수가 흐르는 회동계곡이 있다. ‘용소골’ ‘청옥산 계곡’으로 불린다. 찾는 이가 적어 한적해 오지(奧地) 느낌 그대로다. 한여름에도 햇살이 들어오지 않을 만큼 천연림이 터널을 이룬다.총 8㎞ 길이의 계곡에 크고 작은 소(沼)와 폭포가 어우러져 한여름 더위를 피하기에 그만이다. 1급수 어종인 둑중개가 서식하고 미탄면 사람들의 상수원으로 이용될 정도로 물이 맑다. 물소리를 들으며 포장되지 않은 평탄한 흙길을 거닐다 보면 더위는 저만치 물러나고 몸과 마음에 새로운 기운이 샘솟는다.

여행메모
천연기념물 백룡동굴 탐방
동강 민물매운탕·고소한 송어

어름치 마을 앞 창리천에 놓인 구름다리.

강원도 평창군 고마루 마을과 코끼리바위는 백룡동굴 가는 길에 위치해 있다. 평창읍내에서 정선 방향으로 42번 국도를 타고 가다 백운삼거리에서 우회전해 기화리 방면으로 가면 된다. 가는 도중 한탄3교를 지나자마자 우회전한 뒤 재치길을 따라 임도로 2.3㎞ 이동하면 고마루 카르스트 지대가 나온다.

마하리 도로 끝 문희마을에 천연기념물 제260호인 백룡동굴이 있다. 백룡동굴 탐방은 정해진 관람 시간에만 운영되며 사전예약이 가능하다. 백룡동굴 인근에 펜션 등 숙소들이 있다.

미탄면 일대의 특산 먹거리는 청정 동강에서 잡히는 다양한 물고기를 이용한 민물매운탕과 기화리 지역에서 양식되는 송어회다. 민물매운탕은 잡냄새가 없이 담백하고, 송어회도 지하 용천수로 양식해 육질이 쫄깃하고 고소하다.

평창=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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