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반 풍자하던 민중의 정서, 놀이노래에 담겨있었네
[강등학 기자]
▲ 병설유치원 만 3세∼5세 아이들이 추석 전 전통놀이 강강술래를 하는 모습(자료사진). |
ⓒ 심규상 |
전국적으로 향유되었던 전통적 실내놀이로 다리뽑기가 있다. 예전에 추워서 밖에 나가 놀기 어려웠던 겨울철에 특히 성행했다. 놀이 내용은 이러하다. 몇몇이 다리를 펴고 마주 앉아 다리를 상대와 엇갈리게 뻗는다. 뻗은 다리를 짚어가며 노래하다가 노래가 끝날 때 짚은 다리는 오므려 대열에서 빼낸다. 이렇게 거듭 반복하는 동안 다리를 끝까지 빼지 못한 사람은 벌칙을 받는다.
다리뽑기노래는 여럿이지만, 그 중 전국적으로 가장 널리 불린 것은 아마 '이걸이저걸이 갓걸이'일 것이다. 이 노래가 다리뽑기노래로 전국을 제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노래는 주변 대부분이 알고 있다고 할 만큼 인지도가 높다. 지금도 이 노래는 유아와 초등 저학년의 교육을 통해 그 맥이 이어지고 있다. 어른도 알고 아이도 아는 노래가 아닐 수 없다.
주문 같이 들리는 이 노래
그런가하면, '이걸이저걸이 갓걸이'는 사실 다들 잘 모르는 노래이기도 하다. 노래 가사가 대부분 무의미한 소리들이 연쇄적으로 이어진 모양을 하고 있어서 무슨 뜻인지 그 내용을 알기 어려운 것이다. 그래서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암호를 대하거나 주문을 외는 듯한 느낌이 들기도 한다. 독자들도 자신들의 경험을 떠올려보면 실감할 수 있을 터이다.
'이걸이저걸이 갓걸이'의 가사는 문장이 아니라 어휘조합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다리를 짚을 때마다 낱말 하나를 말하며 부르기에 취하게 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노래가 처음부터 지금처럼 뜻 모를 낱말을 늘어놓았겠는가 하는 점이다. 현재 이 노래 가사는 구전 과정에서 뜻을 잃고 소리만 남아 표류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 노래의 어휘조합도 원래는 무언가 지향하는 바에 따라 선택된 의도적 구성이었을 개연성이 크다. 그 실마리는 '이걸이저걸이 갓걸이'에 이어지는 망건, 휘양, 줌치, 장도칼 등의 단어들이 쥐고 있다. 아마 이 단어들은 독자들의 기억에 만두, 오양간, 짐치, 장독간, 또는 이와 유사한 소리값으로 다양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온 낱말과 뜻을 풀어두면 다음과 같다.
망건 : 상투를 튼 사람이 머리에 두르는 그물처럼 생긴 물건
휘양 : 추울 때 머리에 쓰던 모자
줌치 : 돈이나 소지품 따위를 넣도록 만든 주머니
장도칼 : 주머니 속에 넣거나 옷고름에 늘 차고 다니는 칼집이 있는 작은 칼
노래에 '갓걸이'로 묘사된 양반
▲ 조선 양반의 상징과도 같았던 '갓'. 넷플릭스 드라마 <킹덤> 스틸 컷. |
ⓒ Netflix |
이렇게 보면 이제 '이걸이저걸이 갓걸이'의 어휘들은 단순집합이 아니라 양반 풍자라는 개념을 가진 조합으로 보아야 한다. 그간 '이거리저거리 각거리'로 기재했던 노래명도 '이걸이저걸이 갓걸이'로 표기할 필요가 있다. 오래전에 조사된 자료 중 이 노래의 지향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가사 한 편을 택해 상황을 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이걸이저걸이 갓걸이)
청사맹건 도맹건(청사망건 도망건?)
도리줌치 장독간(둥그런줌치 장도칼)
서울양반 두양반(서울양반 두냥반)
진주댁이 열석냥(진주댁은 열석냥)
까마구 까우(까마귀 까악)
양지버리 노랭이조지 빵(양지받이 노루 겨눠 빵)
- 김소운, <조선구전민요집>. 1933, 부산 동래구
양반을 갓걸이로 풍자해 차림치레를 했다. 그리고는 서울양반은 두 냥 반이지만, 진주댁은 열 석 냥이라고 했다. 차림치레의 맥을 이으며 서울양반을 진주댁보다도 값없는 존재로 비아냥거린 것이다. 그런가하면 노래는 까마귀 울음을 전조로 양지에서 해바라기하던 노루를 포수가 총으로 쏘는 상황을 덧붙였다. 문장만 놓고 보면 다소 뜬금없는 연결이기도 하다.
이에 대한 필자의 생각은 이러하다. 양반에 대한 저항의 심리가 비아냥거림으로 표현되고, 동시에 양반의 현실적 위력감이 포수와 노루로 빗대어 표현된 것으로 본다. 양반에 대한 거부감과 또한 양반의 현실적 입지를 의식하는 민중의 이중적 정서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이거리 저거리 각거리(이걸이저걸이 갓걸이)
진주맹건 또맹건(진주망건 도망건?)
짝발에 휘양근(똑바른 휘양)
도로매줌치 장두칼(둥그런줌치 장도칼)
머구밭에 덕석이(머위밭에 덕서리)
칠팔월에 무서리(칠팔월에 무서리)
동지섣달 대서리(동지삳달 된서리)
- 김사엽 외, <조선민요집성>. 1947, 경남 하동군
'이걸이저걸이 갓걸이'의 또 다른 가사다. 양반을 풍자하는 차림치레에 '덕서리', '무서리', '된서리'의 상황을 덧보탰다. 초봄부터 동지섣달에 이르는 서리를 나열한 것이다. 여기서 나열된 서리는 앞부분의 양반 풍자 맥락에 이어 읽을 때 의미화된다. 서리는 땅 위의 것들을 차갑게 위축시킨다. 이것은 양반의 위세가 민중의 삶을 위축시키는 계급적 상황과 다르지 않다. 양반에 대한 민중의 사회의식이 표현된 것이다.
해석은 보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걸이저걸이 갓걸이'의 가사가 개념을 지닌 의도된 어휘조합이라는 점이다. 그 저변에는 양반에 대한 민중적 정서가 놓여 있다. 그러나 지금은 오랜 전승 과정에서 개념을 잃고 표류하며 우리 기억에 암호처럼만 남아 있다.
혹 놀이기회가 있을 때, 이 노래의 개념을 한 번쯤 떠올려보면 어떨까? 우리 기억 속의 '이걸이저걸이 갓걸이'에 새롭게 의미를 입혀보면 어떨까? 살다가 갑과 을에 의해 유발되는 정서적 부담이 있을 때 이 노래를 떠올리며 잠시 동요의 세계에 머물러보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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