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탄 아내, 벼랑서 밀어 살해한 80대 "40년 간병에 지쳤다"
아픈 아내를 40년간 홀로 간병해 온 80대 일본 남성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았다.
NHK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요코하마(横浜) 지방법원 오다와라(小田原) 지부는 19일 후지와라 히로시(藤原宏·82) 피고에게 징역 3년(검찰 구형 7년)의 실형 판결을 내렸다. 지난해 11월 2일 가나가와(神奈川)현 오이소마치(大磯町)의 항구에서 휠체어를 탄 아내 데루코(照子·당시 79)를 바다로 밀어 넣어 살해한 혐의다.
보도에 따르면 사건 당시 후지와라는 "장남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며 아내를 휠체어에 태우고 항구로 나와 절벽에서 바다로 밀었다. 당시 항구에 있던 낚시꾼들이 물에 떠오른 피해자를 발견해 해경에 신고했고, 데루코는 구조됐으나 병원으로 실려간 후 사망이 확인됐다. 이후 장남이 "아버지가 어머니를 바다에 빠뜨렸다고 한다"고 신고했고, 후지와라는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뇌경색으로 쓰러진 아내 40년간병
사망한 아내 데루코는 지난 1982년 뇌경색으로 쓰러져 몸의 왼쪽이 마비됐다. 당시 슈퍼 직원으로 일하던 남편 후지와라는 출장으로 집을 비운 상태였고, 자신이 없는 사이 아내가 쓰러졌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껴 "내 몸이 견디는 한 혼자 간호를 하겠다"는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몇 년 후에는 아내 간병을 이유로 직장을 그만두고 편의점을 운영했다. 낮에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아내를 돌보는 생활을 계속했지만 경영 악화로 가게를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는 자신의 연금과 아내의 장애인 연금으로 생계를 꾸려왔다.
아내를 살해하겠다고 생각한 건 지난 해 6월 아내의 몸이 급격히 나빠지면서였다, 혼자 휠체어에 타고 내릴 수 없을 정도가 되면서 간병이 어려워졌고 자신의 건강도 좋지 않아 '아들들을 위해선 둘이 함께 죽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한다.
작년 10월에는 아내의 목을 수초간 조르기도 했다. 이런 사태를 알게 된 아들은 자신이 비용을 부담해 어머니를 요양시설에 보내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후지와라는 "시설에 입소하게 되면 비용이 많이 들어 아들에게 폐를 끼치게 된다"며 이때부터 구체적인 살해 계획을 세웠다.
40년에 걸쳐 가사와 아내 간병을 혼자 맡아 온 후지와라는 법정에서 "나는 완고한 사람이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듣지 않는 성격"이라며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했다"고 말했다.
떨어지는 순간 아내는 "싫어"라고 외쳤다
재판 중 후지와라의 변호인 측은 "피고가 오랜 간병으로 심신이 모두 피폐해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없었다"며 집행유예를 주장했으나 법원은 실형을 선고했다.
기야마 노부로(木山暢郞) 재판장은 판결문에서 "주위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음에도 일방적으로 상황을 비관해 범행을 저질렀다"며 "헌신적으로 간병을 해 온 점은 고려되어야 하지만 범행 양상이 악질적이며 전형적인 간병 스트레스로 인한 살인과 동일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아내는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신뢰하는 남편이 자신을 죽이려고 했을 때 느꼈을 절망감, 원통함은 다 헤아릴 수 없다"고 덧붙였다.
재판에서 후지와라는 아내가 죽기 직전까지 "아들은 아직 안 왔냐"고 반복해서 물었고, 바다로 떨어지는 순간엔 "싫어"라고 큰소리로 외쳤다고 진술했다. 자신도 같이 죽을 생각이었지만 "유서도 쓰지 않은 상태에서 죽으면 아들들에게 폐가 된다고 생각해 같이 뛰어들지 못했다"고 말했다.
초고령사회 일본, '노노개호 살인'도 증가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전체의 29.1%에 달하는 초고령사회 일본에선 비극적인 '노노개호(老老介護) 살인 사건'이 이어지고 있다. '노노개호'는 간호가 필요한 노인을 노인이 돌보는 것을 말한다.
지난 2021년에는 히로시마(広島)현에서 자신도 암 투병을 하며 아픈 아내를 돌보던 70대 남성이 머플러로 아내의 목을 졸라 살해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남편은 살해 당시 수십년간 누워만 있던 아내에게 "오늘 죽을까"라고 물었고, 아내는 "그래"라고 답했다고 법정에서 진술했다. 2019년 나라(奈良)현에서는 70대의 며느리가 10년간 간병해 온 90대 시부모와 몸이 아파 누워있는 남편까지 3명을 한꺼번에 살해하는 사건이 있었다.
도쿄=이영희 특파원 misqui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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