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존재 이유 보여준 '순살 자이'
[성지훈 기자]
▲ 2023년 4월 29일 밤 11시 30분경 벌어진 인천 검단신도시 안단테 아파트 붕괴 사건 현장 |
ⓒ 검단 안단테 AA13 1, 2단지 입주예정자협 |
LH와 GS건설이 짓고 있던 인천 검단의 한 아파트 주차장이 무너졌다. 쉬쉬하고 넘기려다 인근 주민의 고발로 세상에 알려졌다. 사건이 알려진 후에는 서로 잘못을 떠넘기려다가 조사 결과가 나오고서야 뒤늦게 사과했다.
GS는 설계를 제대로 따르지도 않은 채 원가를 아끼겠다며 철근도 넣지 않은 기둥을 세웠다(그래서 누리꾼들은 '순살 자이'라 부른다). 그렇게 엉터리로 지은 현장을 LH의 전관들로 가득 찬 업체가 감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무너지지 않으면 더 이상한 총체적 엉터리.
보는 눈이 얼만데
몇 년 전 인터넷 커뮤니티엔 "2020년부터 2021년 사이에 지은 아파트는 부실 공사가 많다"는 요지의 글이 떠돌았다. 당시 철근과 시멘트 등 자재비가 크게 올라 수익성을 우려한 하청업체들이 공사 원가를 줄이기 위해 자재를 설계보다 적게 사용했고 뻔한 사정을 뻔히 아는 감리도 이를 모른 척하는 일이 많았다는 이야기였다. 당시엔 허황된 음모론으로 여겨지며 우스갯소리의 소재로 사용됐지만 이번 붕괴 사고 이후 다시금 회자하고 있다.
당시 저 말을 들었을 때는 '현장에 보는 눈이 얼마인데'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현장에 멀쩡히 눈뜬 사람이야 많았겠지만 그중 철근을 넣지 말고 기둥을 세우라는 지시에 그렇게 하면 안 된다며 작업이라도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현장에 있었을까. 부실한 시공을 감리에게, 그게 아니면 언론에라도 알릴 수 있는 사람이 현장에 있었을까.
설계대로 시공할 만큼 충분한 철근이 현장에 오지 않았다고, 시멘트 상태가 영 안 좋아 강도가 부족할 것 같다고, 이렇게 건물을 지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직원이 하청에 재하청까지 겨우 받아 원가 절감이라도 안 하면 한 푼 남는 게 없는 하청업체 사장에게 어떻게 보일까.
길게는 수십 년간 현장에서 '노가다밥' 먹은 현장의 노동자들이 이렇게 지으면 아파트 무너진다는 것을 몰랐으랴. 그저 입 다물고 있을 수밖에.
언론 보도에서 건설 노동자들은 "콘크리트 품질이 안 좋아 강도가 제대로 발현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공정이 며칠씩 늦어졌다"고 전했다. 이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공사 현장은 다단계 하청 구조로 현장 소통이 막혀 있고, 이주 노동자들을 싼값에 부리며 현장의 안전을 도외시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전했다. 이런 구조는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골조 공사 분야에 더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실 이번에 가장 위험했던 건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 노동자들이다. 그들은 일하다 갑자기 기둥이 무너지는 끔찍한 일을 겪을 수도 있었다. '저 기둥에 철근이 없다'는 것을 아는 건설 현장의 노동자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안전하고 원칙적인 시공을 요구한다. 애초에 건설노조가 출범한 주요 이유가 현장의 안전이다.
만약 현장에 노동조합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건설노조가 줄곧 말하는 것처럼 건설 현장 모든 문제의 근원인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단계, 단계를 밟을수록 줄어드는 공사비를 아끼려고 자재를 아끼고 비숙련 인력을 사용하고 저품질 원자재를 사용하는 일이 발생했을까.
지난 2021년 6월 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4 재개발 구역에서 현대산업개발이 철거하던 5층 건물이 무너지면서 도로 위 버스를 덮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에서도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다단계 하도급 문제임이 드러났다. 당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당초 책정되었던 해체 공사비는 1평(3.3㎡)당 28만 원이었으나, 하도급에서 불법 재하도급의 단계를 거치며 16%인 1평당 4만 원까지 공사비가 줄었다. 다단계를 거치며 사라진 84%의 공사비는 고스란히 안전의 위협으로 다가왔다. 현장에서는 시민 9명이 죽었다. 현장에 노동조합이 있고, 노동조합이 안전하지 않은 작업을 거부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2003년 태풍 '매미'가 몰아쳤을 때, 전국 각지에서 건설 현장의 타워크레인 52대가 무너졌다. 타워크레인을 적게 세워 공사비를 아끼려고 건설사들은 지형과 기후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공사장 한가운데 타워크레인을 세우고 와이어로 고정했다. 태풍이 몰아치자 타워크레인을 지지하던 와이어가 끊어지면서 크레인이 무너졌고 현장의 건설 노동자뿐 아니라 인근의 시민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건설노조 소속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은 이후 10년을 투쟁해 타워크레인을 와이어 고정 방식이 아닌 벽체 고정 지지 방식으로 바꾸었다. 덕분에 매미보다 강력하다는 2022년의 태풍 '힌남노'에도 타워크레인은 넘어지지 않았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인천 검단 아파트 주차장 붕괴 사고 현장을 찾아 "진상을 철저히 파헤치고 무거운 책임을 지우겠다"고 말했다. 과연 그 진상이 무엇일까. 불법 다단계 구조를 놔둔 채 건설 대기업과 공기업들을 문책하고 물갈이 인사하면 진상이 밝혀질까.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면서 물러났다. 그러나 1년도 되지 않아 재판에서 "사고 원인인 지지대 해체는 하청업체가 한 일"이라며 책임을 떠넘겼고, 감리는 "해체는 작업자들이 했다"면서 다시 노동자들에게 책임을 떠넘겼다. 책임조차 불법 다단계 하도급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
원희룡 장관은 "안전하지 않은 건설 현장에서 작업을 거부할 권리"를 주장하는 타워크레인 노동자들에게 '자격 정지'를 운운했다. 원 장관뿐 아니라 이 정부는 '노동조합'을 때려잡는 것을 시대적 소명이라고 여기는 듯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 화물연대의 안전운임제 요구를 묵살했고, 안전한 일터와 정당한 임금을 요구하는 건설노조를 '폭력배'라고 매도했다. 공통적인 것은 노동자들이 요구한 것은 '안전'이었고 저들이 내민 탄압의 도구는 '비용'이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고쳐야 할 것을 알았으면 그때라도 고쳐야 한다. 이번 사고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것은 '안전'을 '비용'이라고 여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안전을 팔아 비용을 아끼는 이들을 현장에서부터 감시하고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힘은 '노동조합'에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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