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안하나 못하나…14명 숨진 오송참사 강제수사 주저 왜
14명이 숨진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참사를 수사하는 충북경찰청이 수사 착수 이틀이 지난 19일까지 관계기관에 대한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나서지 않으면서 증거인멸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 사이 충북도청·청주시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이하 행복청)·금강홍수통제소 등은 참사 당일 상황에 대해 서로 다른 입장과 자료를 내놓으며 진상규명에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
충북경찰청은 지난 17일 수사관 88명 규모의 전담 수사본부(본부장 송영호 수사부장)를 꾸렸다. 수사본부는 이날까지 구조된 생존자, 인근 마을 주민 등 목격자 15명을 참고인 신분으로 조사했다. 침수됐던 차량 17대의 블랙박스 영상을 임의제출 형식으로 확보하는 한편, 지하차도 수색 중 발견된 휴대전화 3대에 대한 디지털포렌식도 진행하고 있다.
수사본부는 20일 오전 10시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궁평2지하차도에 대한 합동 감식을 벌일 계획이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배수펌프와 배수로가 제대로 작동됐는지를 살펴보고, 지하차도 내 구조물 형태를 설계도면과 비교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7일 1차로 감식했던 미호강 제방에 대해서도 3차원 스캔 등 당시 현장 재구성을 위한 2차 합동 감식을 실시한다.
그러나 참사 규모나 관계기관들의 책임 회피 움직임에 비추어 지나치게 한가한 접근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난 관련 수사 경험이 있는 한 경찰의 중간 간부는 “처벌을 예감하는 관계자들이 흔적을 지우고 입을 맞출 시간이 길어질 수록 진상규명은 난항에 빠지기 마련”이라며 “이미 보도된 것 만으로 여러 기관에 대한 압수수색 사유는 충분한데도 왜 움직임이 없는지 의아할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지적에 대해 수사본부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제방·도로 등을 관리하는 기관도 다르고, 신고 이후 적절한 조처가 이뤄지지 않는 등 살펴봐야 할 게 방대해 하루 이틀만에 강제수사에 돌입할 수 없는 여건”이라며 “영장 신청에 필요한 범죄사실을 구성하기 위해 중요 참고인들의 영상 자료를 분석하고 진술을 확보하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여기에 경찰 초동 대응 등도 도마 위에 오르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는 이날 충북청과 의견 조율 끝에 김병찬 광역수사단장으로 수사본부장을 교체하고 강력범죄수사대·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 소속 수사관 40여명을 파견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도 수사대상이 될 수 있는 만큼 수사의 중립성을 갖추기 위한 조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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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도·청주시 ‘핑퐁’…행복청 “불법 없다”
경찰이 머뭇거리는 사이 각 기관들의 네 탓 공방은 점입가경이다. 충북도는 지난 18일 ‘오송 지하차도 사고 관련 충북 시간대별 상황 및 조치사항’을 공개했다. 여기엔 사고 당일인 지난 15일 오전 8시 3분 임시제방이 무너져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이 소방당국을 거쳐 청주시 당직실에 전파됐으나, 충북도는 아무런 통보를 받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겼다. 청주시는 사고 현장인 궁평2지하차도는 지방도라서 충북도가 관리 주체라, 시는 주민대피 방송과 재난문자 발송 외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번 참사의 주 원인으로 꼽히는 임시제방은 행복청이 발주한 미호천교(오송~청주) 신축 공사 현장에 조성됐다가 무너졌다. 그러나 행복청은 지난 15일 새벽부터 충북도·청주시 등에 제방 붕괴로 미호강이 범람할 위험이 있다는 사실을 6차례 알렸고, 지자체에선 별다른 조처가 없었다는 입장만 내놓았다. 참사 현장 인근 주민들이 공사 주체가 자연제방을 허가 없이 철거했다거나 임시제방을 부실 축조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해선 “기존 자연제방 일부 철거, 임시제방 축조 등 공사의 전(全)과정에서 어떠한 불법행위도 없었다. 허위보도가 계속될 경우 엄정 대응하겠다”(지난 18일 보도자료)고 으름장을 놨다.
일각에선 국무조정실의 발빠른 감찰 착수가 수사에 장애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국무조정실은 지난 17일 “교통 통제 미시행 등 관련 지자체 및 경찰·소방의 안전 조치 내역을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감찰과 수사가 동시에 이뤄지면 진상 규명에 혼선을 빚을 수 있어 중복은 피하는 게 좋다”면서 “증거가 사라지면 책임자 처벌이 어려워지는 만큼 수사가 앞서는 게 맞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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