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시작된 테니스계 세대교체, 그 승자는?
[김형욱 기자]
▲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시리즈 <브레이크 포인트 파트 2> 포스터. |
ⓒ 넷플릭스 |
2022년 9월 테니스계는 역사상 최고의 남녀 테니스 전설을 떠나보냈다. 2022 US오픈을 마지막으로 세리나 윌리엄스가 은퇴했고 2022 레이버컵을 마지막으로 로저 페더러가 은퇴했다. 둘 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는 역대 최고의 레전드, 2000년대 초중반을 완벽하게 지배했고 2010년대까지도 꾸준히 최상위권 성적을 냈다.
윌리엄스의 경우 15년여 동안 꾸준히 메이저 대회 단복식을 재패해 딱히 적수라고 할 만한 대상이 없었는데, 페더러의 경우 라파엘 나달과 노박 조코비치라는 역대 최고의 레전드들이 오랫동안 어깨를 나란히 하며 이른바 'BIG 3'를 형성해 테니스 중흥기를 이끌었다. 나달도 큰 부상으로 재기를 위해 수술에 들어갔으니, 조코비치가 남았다.
테니스계로선 BIG 3를 확실히 이을 월드 스타 물색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데, 조코비치가 여전히 월등한 실력으로 경기장을 휘젓고 있다. 와중에 스포츠 다큐멘터리의 명가로 떠오른 넷플릭스가 나서서 테니스 차기 스타를 물색하고자 했으니, 올해 초에 나온 <브레이크 포인트>다. 호주 오픈과 프랑스 오픈을 위시로 2022년 상반기를 다룬 파트 1이었고, 윔블던과 US 오픈을 위시로 2022년 하반기를 다룬 파트 2가 공개되었다.
이미 시작된 윔블던의 세대교체
얼마 전 2023 윔블던 챔피언십이 막을 내렸다. 남자부에선 카를로스 알카라스가 우승했고 여자부에선 마케타 본드루소바가 우승을 차지했다. 알카라스의 우승은 BIG 3 시대의 종지부를 찍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혔다는 평가를 받았고, 본드루소바의 우승은 윔블던 역사상 첫 논시드 챔피언으로서 충격적이고 기적적이며 이례적인 사례로 평가받았다.
윔블던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테니스 토너먼트로, 세계 4대 테니스 대회 일명 '테니스 그랜드 슬램' 중에서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한다. 호주 출신의 악동 닉 키리오스가 3회전에서 우승 후보 중 하나이자 닉과 완전히 반대되는 성향의 그리스 출신 스테파노스 치치파스를 만난다.
경기 내내 계속되는 닉의 도발에 돌부처 같은 치치파스도 무너지고 만다. 난장판에 가까웠기에 명경기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근래 보기 드문 재밌는 경기였다. 결국 닉의 승리, 그는 이후 상대 선수들을 격파하며 커리어 최초로 그랜드 슬램 4강에 진출한다. 하지만 4강 상대는 리빙 레전드 라파엘 나달, 그런 나달이 갈비뼈 부상으로 기권하니 닉이 결승에 직행한다. 결승 상대는 또 다른 리빙 레전드 노박 조코비치. 1-3으로 역전패하며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한편 2022 마드리드 오픈에서 1위를 차지하며 아프리카 및 아랍 선수 최초로 1000 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기염을 토한 튀니지의 온스 자베르. 그녀는 윔블던에서 파죽지세로 결승에 오른다. 하지만 카자흐스탄의 다크호스 엘레나 리바키나에게 1-2로 역전패를 당하며 준우승에 머물렀다. 물론 아프리카 및 아랍 선수 최초의 성과였다. 윔블던 또한 세대교체가 서서히 시작되고 있다. 2023년 이후를 기대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 넷플릭스 <브레이크 포인트>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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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미국 뉴욕에서 개최하는 US 오픈, 세계적인 유명인들이 대거 찾아와 선수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대회인지 축제인지 헷갈릴 정도의 인파와 분위기 때문이다. 와중에 2022 US 오픈 최고의 화제는 리빙 레전드 세리나 윌리엄스의 은퇴 선언이다. 그녀는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40대 나이에도 녹슬지 않은 실력과 투혼을 발휘하며 1, 2회전을 돌파하고 3회전에서 크로아티아의 아일라 톰리아노비치를 만나 탈락하고 만다. 아일라는 세리나를 향한 홈팬들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승리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한편 미국의 프랜시스 티아포가 US 오픈에서 성적이 좋지 않은 미국 선수로서, 또 흑인 선수로서 어깨에 짐을 한가득 실은 채 출전한다. 그동안의 그랜드 슬램 최고 성적은 2019 호주 오픈의 8강. 올해는 다르다는 걸 입증하듯 파죽지세로 8강에 입성한다. 하지만 상대는 나달, 모든 미국인의 기대를 받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결국 중압감을 이겨내고 나달을 격파한다. 16년 만의 미국인 선수의 US 오픈 4강 진출. 하지만 스페인의 카를로스 알카라스에게 석패한다.
여자부에서도 눈에 띄는 이가 있다. 폴란드의 이가 시비옹테크, 2020 프랑스 오픈 제패 후 거의 모든 그랜드 슬램 대회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냈다. 2022년에도 프랑스 오픈 우승을 차지한 그녀다. 또한 2022년에 수많은 대회에서 우스와며 압도적 세계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2022 US 오픈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하지만 모두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기에 부담감이 크다. 잘 이겨낼 수 있을까? 결과는 우승. 이쯤 되면 '어차피 우승은 이가 시비옹테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아닌가 싶다.
2022년의 피날레를 장식하며
남자 테니스를 관장하는 ATP(프로 테니스 협회)와 여자 테니스를 관장하는 WTA(여자 테니스 협회)는 1년 내내 투어 대회를 연다. 크고 작은 대회들과 그랜드 슬램 대회 성적을 합산해 매주마다 랭킹을 새로 매긴다. 연말에는 '파이널스'라고 이름 붙인 대회에 탑랭커 8명을 초청해 경기를 가진다. 이벤트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상금도 많이 주고 포인트도 두둑이 준다. 2022년에도 어김없이 파이널스가 시작했다.
남자부에선 랭킹 1위의 알카라스가 부상으로 불참하며 미국의 테일러 프리츠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자국에서 열린 인디언웰스 오픈에서 우승했지만 US 오픈에서 1회전 참패로 롤러코스터를 탄 2022년, 그래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내며 파이널스에 진출했다. 우연히 찾아온 기회, 4강에 진출해 조코비치와 대결했지만 석패했다. 아쉬웠던 US 오픈의 기억을 뒤로하고 유종의 미를 거두며 다음 해를 기약할 수 있었다.
여자부에선 벨라루스의 아리나 사발렌카가 돋보였다. 조국의 전쟁 이슈 때문에 스포츠 선수로 피해를 받고 있는 와중에 다혈질 성격이 불에 기름을 부어, 스스로를 컨트롤하기 힘들었다. 은퇴까지 고려했지만 다시 일어섰고 꾸준히 좋은 성적을 기록해 파이널스에 진출했다. 당시 세계 랭킹 1, 2, 3위를 격파하며 결승에 진출했지만 패하고 말았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였지만 잘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다.
테니스는 남녀부를 불문하고 새로운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남자부에서 노박 조코비치가 여전히 맹위를 떨치고 라파엘 나달이 재기를 벼르고 있지만, 젊고 패기 있고 실력 있고 스타성까지 갖춘 넥스트 제네레이션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 중이다. <브레이크 포인트>가 그 시기를 완벽하게 포착해 과정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2020년대 이후의 테니스계는 춘추전국시대일 것인가 삼국지 또는 오국지일 것인가. 또는 누군가가 천하통일을 이룩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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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singenv.tistory.com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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