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죽겠냐"던 홍준표의 90도 사과…당내 여론 싸늘한 이유
“수해로 상처입은 국민과 당원 동지 여러분에게 심려를 끼쳐드린 점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수해 골프’ 논란에 휩싸인 홍준표 대구시장이 19일 결국 고개를 숙였다. 그는 이날 대구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전국적으로 수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부적절했다는 지적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국민 정서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점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 뒤 허리를 90도로 굽혀 사과했다. 집중호우로 전국에서 인명 피해가 발생하던 지난 15일 오전 대구에서 골프를 치다 중단한 게 알려진 뒤 나흘 만이다.
이틀 전인 지난 17일에만 해도 홍 시장은 국회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주말에 테니스 치면 되고, 골프 치면 안 된다는 규정이 공직사회에 있느냐”거나 “벌떼처럼 덤빈다고 해서 내가 기죽고 ‘잘못했다’고 할 사람이 아니다”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골프를 이용해 ‘국민 정서법’을 빌려 (나를) 비난하는 것”이란 주장도 폈다.
그랬던 홍 시장이 이틀 만인 이날 입장을 전격 선회한 건 전날 오전 김기현 대표의 진상조사 지시에 이어 전날 오후 당 중앙윤리위원회가 홍 시장 징계에 착수한 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황정근 윤리위원장은 홍 시장에 대한 징계안을 직권 상정해 20일 전체회의에서 논의키로 했다. 국민의힘 윤리강령 제22조(사행 행위·유흥·골프 등의 제한)에는 ‘자연재해나 대형사건·사고 등으로 국민이 슬픔에 잠겨 있거나 국민과 국가가 힘을 모아야 할 경우에는 경위를 막론하고 오락성 행사나 유흥·골프 등 국민 정서에 반하는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징계가 임박하고 전국적인 수해로 비판 여론도 들끓자 홍 시장은 자세를 낮추는 모양새를 취했다. 이날 공개 사과에 앞서 “당 방침이 그렇다면(징계라면) 따르겠다. 내가 을(乙) 아니냐”며 한발 물러나는 모습을 보였고, 홍 시장 측은 소명 자료 제출 등 징계심사 대비에도 들어갔다.
좀처럼 남의 주장을 쉽게 수용하지 않는 홍 시장이 이날 90도 사과 인사를 한 건 “홍 시장이 위기의식을 느꼈기 때문”이란 분석도 나온다. 여론도 안 좋지만 특히 당내 비판이 위험 수위에 달한 까닭이다. 전날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수해로 전 국민적 피해가 속출하는 상황에 골프장을 찾는 건 공직자의 기본자세가 아니다”라고 홍 시장을 공개 비판한 김병민 최고위원은 이날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강한 비판을 이어갔다. 특히, 홍문종 전 의원이 2006년 수해 골프로 제명된 사례 등을 언급하며 “윤리위가 전례를 충분히 감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용남 전 의원도 이날 라디오에서 “홍 시장은 대구시장이라는 중요한 직책을 자신의 커리어상 부가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각종 설화로 ‘당원권 정지 1년’의 중징계를 받고 있는 김재원 최고위원도 라디오에 출연해 “(홍문종 전 의원 사례보다) 훨씬 더 충격적”이라며 “홍준표 시장이 보여주고 있는 여러 가지 반응이 당의 이미지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유상범 수석대변인은 홍 시장이 공개 사과한 뒤 기자들과 만나 “사과했기 때문에 윤리위 판단에 어느 정도 참작은 될 수 있지만, 자연재해가 일어나는 와중에 골프를 친 것에 대해 당이 엄중하게 대응했던 전력이 있다”고 강조했다.
수해 골프 논란으로 “홍 시장의 취약한 당내 기반이 드러났다”는 시선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대선 후보와 대표를 지냈고 현직 광역단체장인데도 홍 시장을 옹호하는 목소리가 전혀 없지 않느냐”며 “이런 점이 홍 시장의 사과를 이끌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또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홍 시장이 지난해 이준석 전 대표 징계 논란 때 ‘정치판에는 표현의 자유도 있지만, 징계의 자유도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일갈한 적이 있다”며 “지금 그 말이 본인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김다영 기자 kim.d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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