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널목 죽은 여인 미스터리…日소설 거장이 파헤친 61년전 이 사건
1962년 도쿄 미카와시마역에서 열차가 탈선했다. 사고 7분 후 우에노로 향하던 다른 열차가 사고 현장으로 진입해 탈선한 열차를 들이받았다. 이 다중추돌 사고로 160명이 사망했다. 사망자 중 한 명의 신원은 여태껏 밝혀지지 않았다.
일본 추리 소설의 거장 다카노 가즈아키(59)가『건널목의 유령』(황금가지)으로 돌아왔다. 전작 『제노사이드』가 나온 지 11년 만이다. 『건널목의 유령』은 전직 일간지 기자가 철도 건널목에서 사망한 여성을 둘러싼 미스터리를 파헤치는 이야기다. 61년 전 도쿄에서 발생한 미카와시마역 사고의 '이름 없는 죽음'이 소설의 단서가 됐다.
다카노 가즈아키는 '사회파 추리 작가'로 불린다. 일본에서 100만 부, 한국에서 5만 부가 팔린 『13계단』은 사형 제도를, 제65회 일본 추리작가협회상 수상작『제노사이드』는 이민족 간 학살 문제를 다뤘다. 2001년 도쿄에서 지하철 선로에 떨어진 취객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고(故)이수현 씨를 모델로 한 의인 캐릭터가『제노사이드』에 등장하며 국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회파'라는 꼬리표 답게 신작에서도 그는 형사·기자·정치인·철도 기관사 등 여러 직업인의 일상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철도 기관사들이 운행 루트의 시야 사각지대에 관해 이야기하는 도입부의 디테일이 특히 인상적이다. 서면 인터뷰로 만난 다카노는 "캐릭터를 사실적으로 그리기 위해 10권의 철도 관련 서적을 통해 예비 조사를 하고 철도 전문가, 전직 형사, 기자를 인터뷰했다"고 했다.
그의 소설은 흡입력이 강하다. 쉴 새 없이 사건이 터지는 가운데 이야기는 급물살을 탄 듯 빠르게 직진한다. "쓸데없는 것을 쓰지 않는다. 이야기에 필요한 것 만을 쓴다"는 게 그의 원칙이다. 다카노는 "모든 장면에서 이야기가 진전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한 장면을 오직 인물을 소개하는 데만 쓴다면 이야기가 앞으로 나가지 않는다. 이런 전개는 지양한다"고 덧붙였다.
『건널목의 유령』은 1990년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90년대 일본에서는 버블 경제가 무너지면서 역설적으로 공포심이나 위기감을 자극하는 이야기에 대한 욕구가 치솟았다"고 그는 말했다. 이어 "1995년 이후는 디지털화가 급속히 진행돼 심령 사진을 위조하는 일이 쉬워졌기 때문에 이야기의 배경으로 적합하지 않아 아날로그 시대를 배경으로 했다"고 덧붙였다.
소설 속 주인공은 한때 전국 일간지 사회부 기자로 이름을 날렸지만 지금은 계약직으로 여성 월간지에서 일하는 중년 남성이다. 그는 철도역 건널목에서 찍힌 심령 사진을 제보 받고 계약을 연장하고 싶으면 '심령 특집'을 흥행시키라는 상사의 지시에 따라 취재를 시작한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이 오로지 현장을 뛰며 '맨땅에 헤딩'하는 기자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땀내를 풍긴다. "유령을 다루는 만큼 그 외의 부분에서는 최대한 현실성을 끌어올리려 했다"는 그의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사회파'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지만,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했다. "사회적 메시지나 주제 의식을 먼저 생각하면서 글을 쓰지 않는다"면서다.
"누구도 만든 적 없는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싶습니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할 수 있는 한 재미있게 이야기한다'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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