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공작부인' 방 356개인 성 받고도 팟캐스트 하게된 사연
세상에 힘들지 않은 밥벌이는 없지만, 공작부인도 쉬운 직업은 아니다. 적어도 엠마 매너스(59) 러틀랜드 공작부인의 경우는 그렇다. 뉴욕타임스(NYT)가 최근 인터뷰한 매너스 공작부인은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어쩌다 귀족'이다. 그가 펴낸 자서전 제목 역시 '우연히 공작부인(The Accidental Duchess)'. NYT의 표현에 따르면 그의 삶은 2001년 전까지는 평범 그 자체였다. 영국 웨일스 주의 카디프에서 태어난 그는 농부의 딸이었고 보통의 남편을 만나 아이들을 기르며 살았다. 방만 356개인 거대한 성(城)은 영화에서나 보는 줄 알았다. 남편이 갑자기 영국 중부 레스터셔의 러틀랜드 공작 작위를 물려받기 까지는.
현실은 신데렐라 이야기와는 달랐다. 작위와 함께 물려 받은 영지와 비버(Belvoir) 성은 보기엔 꿈과 같았으나 상속세만 1200만 파운드(약 198억 원)이었다고 한다. NYT에 따르면 매년 관리비만 약 100만 파운드(약 16억 원)라고 한다. 매너스 공작부인은 그냥 앉아있을 처지가 못됐다.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그는 자신의 성의 일부를 관광지와 숙박시설로 바꿨고, 팟캐스트를 시작했으며, 책을 썼다. 그는 NYT에 "성에서 사는 대신 프라이버시는 아예 포기했다"며 "성과 영지만 물려받은 게 아니라, 쥐 한 군단과, (평민 출신인) 나를 탐탁치 않아 하는 집사와 일꾼도 함께 받았다"고 말했다.
포기한 건 또 있다. 남편과의 행복한 가정생활이다. 아들딸 다섯을 둔 다복한 부모이지만 정작 둘의 생활은 애정과는 거리가 멀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기 때문이라고 NYT는 전했다. 둘은 2012년 별거를 시작했다. 그는 NYT에 "이혼 변호사가 300만 파운드(약 49억 원)를 위자료로 받을 수 있다고 했지만, 공작부인으로서 삶은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대신 비버 성의 절반을 나눠 부부가 각각 얼굴을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했다. 그 둘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건 반려견 뿐이다.
잃은 것도 있지만 얻은 것도 많다. 경영자로서의 그의 재능이다. 알고 보니 그는 비버 성이 딱 필요로 했던 수완 좋은 경영자였다. 매너스 공작부인의 지휘 하에 성과 영지는 인기 드라마 '더 크라운'과 영화 '다빈치 코드' 등의 촬영장이 됐고, 인기 관광지로 거듭났다. 그는 자신의 인스타그램 계정에 '비버 성 최고경영자(CEO)'라고 자기 소개를 해놓았다.
팟캐스트 아이디어는 장녀인 바이올렛이 냈다. 바이올렛은 NYT에 "공작부인들인 어머니와 친구들이 저녁식사 후 커튼은 어디에서 맞추고, 내려앉는 천장은 누가 수리를 잘하는지 등의 대화를 나누는 걸 들으며 나만 듣기 아깝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21세기에도 영국의 전통을 계승하느라 고생스러운 현실 공작부인들의 스토리를 허심탄회하게 나누는 이 팟캐스트는 꽤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그는 "공작부인을 포함한 대다수 귀족 가문의 2023년 현재 배우자들은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라며 "영국 귀족 가문이 전통만 고수하지 않고 현대와 타협한 결과이며, 그 덕에 영국 귀족은 다른 나라들과 달리 명맥을 이어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팟캐스트를 듣고 비버 성에 관광을 오는 미국인들도 상당수다. 매너스 공작부인은 NYT에 "영국 귀족 중에선 내가 생활비며 관리비 얘기 등을 팟캐스트에서 하는 걸 싫어하는 이들도 상당수"라며 "사람들은 나를 좋아할 수도, 싫어할 수도 있고 그건 그들의 자유이지만 거기에 얽매이지 않는 건 나의 자유"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나는 돈을 신으로 섬기지 않는다"며 "내가 이 성을 가꾸는 이유는 수천년간 역사를 이어온 이 곳이 한 세대 때문에 망가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을 내가 왜 하는 지,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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