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라의 '금토'는 느낌이 참 다르네 [가자, 서쪽으로]

김찬호 2023. 7. 19.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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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조용한 안식일의 거리

[김찬호 기자]

예루살렘 여행을 마치고, 텔 아비브에서 이틀을 더 묵었습니다. 금요일과 토요일이었죠. 겨우 이틀이었는데, 두 날의 분위기가 아주 달랐습니다.

우리는 일주일 중 일요일을 휴일로 보내는 경우가 많죠. 하지만 전 세계가 일요일을 휴일로 삼는 것은 아닙니다. 이슬람교에서는 금요일을 휴일로 칩니다. 몇몇 이슬람 국가는 국제 기준에 맞춰 일요일을 휴일로 바꾸었지만, 여전히 금요일에 쉬는 국가도 많습니다.

반면 유대교의 휴일은 토요일입니다. 정확히는 금요일 해 진 뒤부터 토요일 해 질 때까지가 안식일입니다. 덕분에 금요일과 토요일, 텔 아비브의 거리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토요일 텔 아비브의 거리
ⓒ Widerstand
토요일이 휴일이니, 토요일의 거리가 더 북적일 것이라 생각하셨다면 오산입니다. 안식일은 말 그대로 안식일입니다. 이 날에는 어떠한 노동도 하지 않습니다. 요리나 운전은 물론 하지 않습니다. 아주 원리주의적으로 지킨다면 엘리베이터 버튼조차 누를 수 없습니다. 때문에 안식일에는 아무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모든 층에 서는 '안식일 엘리베이터'가 운영되는 곳이 있다고 할 정도죠. 
물론 이스라엘의 모든 유대인이 이렇게까지 엄격하게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는 것은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주로 집에서 휴일을 보내죠. 시내버스도 운행하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매장이 문을 닫은 쇼핑몰
ⓒ Widerstand
토요일 텔 아비브의 거리는 적막했습니다. 어제까지 많은 차가 오가던 거리는 텅 비어 조용합니다. 분명 번화가인데 걸어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아, 약간 무서운 느낌도 들었습니다. 
신호등만이 때에 맞춰 불빛의 색을 바꿀 뿐입니다. 하지만 신호등을 보지 않고 걸어도 될 정도였습니다. 차도 사람도 없었으니까요. 더 중심가로 나가니 그제야 차와 사람이 보입니다. 하루만에 완전히 다른 도시가 되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 신기했습니다.

언급했듯 유대인 인구 모두가 안식일을 엄격하게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거주하는 유대인 모두가 원리주의적인 유대교 신자는 아니니까요. 사실 오히려 반대에 가깝습니다. 이스라엘은 세속주의 국가입니다. 특히 건국 초기에는 유대교 원리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였죠.

이스라엘의 국부로 불리는 초대 총리 벤 구리온은 청년 시절 무신론자였습니다. 이후에도 종교적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죠. 이스라엘 초기 정국을 주도한 노동당 소속 인사들은 대부분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대교보다는 사회주의에 더 큰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었죠. 현재도 이스라엘의 진보 진영은 세속주의적 가치를 분명하게 앞세우고 있습니다.
 
 텔 아비브의 해변
ⓒ Widerstand
이스라엘에 모인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와 반유대주의를 피해 약속된 땅에 온 것 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약속'이란 물론 신과의 약속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벨푸어 선언에 따라 영국이 제공하기로 약속한 땅이었죠. 
하지만 영국은 이미 아랍인에게도 맥마흔 선언을 통해 같은 약속을 했습니다.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두 개의 약속을 한 셈입니다. 영국이 책임지지 않는 사이 이 땅에는 분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제사회의 개입은 성공하지 못했고,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부터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1948년 1차 중동 전쟁을 시작으로, 1973년까지 네 차례나 중동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모두 이스라엘이 중요한 역할을 차지했죠.
 
 이스라엘 국기
ⓒ 김찬호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는 분쟁과 전쟁의 역사였습니다. 주변국과는 끊임없이 갈등했고, 주권국가로 살아남기는 쉽지 않았죠. 이스라엘에게는 강력한 국가적 정체성이 필요했습니다. 스스로 국제법과 합의를 어겨가며 영토를 확장하는 데 대한 정당화가 필요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매우 현대적인 국가입니다. 현대에 들어와 새로 창조된 국가라는 의미입니다. 유대인의 땅을 되찾겠다고 했지만,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은 이미 너무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여러 나라로 퍼져 있던 유대인이 한 곳에 모였다고 해서 단일한 집단이 될 리 없습니다.

당장 언어가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히브리어를 국어로 사용하죠. 하지만 히브리어는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경전이나 종교 의례에서만 사용되는 언어였습니다. 중동부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은 독일어와 유사한 '이디쉬어'를 사용했습니다. 남부 유럽에 있던 유대인들은 스페인어와 유사한 '라디노어'를 사용했죠.

이렇게 지역별로 다른 여러 언어를 사용하는 유대인의 언어를 통합하기 위해 19세기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언어가 현대의 히브리어입니다. 고대 히브리어는 사어가 된지 오래된 언어였기 때문에, 물론 완벽하게 복원해낼 수는 없었죠. 아랍어에서 단어를 빌려 오거나, 새로 단어를 만드는 등의 노력을 거쳐 현대의 히브리어가 창조된 것입니다.
 
 히브리어 표지판
ⓒ Widerstand
이렇게 서로 다른 유대인을 통합하기 위해, 이스라엘은 유대교를 중심으로 한 유대인의 정체성을 강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유대인에게 유대교는 그저 전통과 생활 양식에 불과했죠. 극단적인 유대교 원리주의를 실천하는 '하레디' 집단은 이스라엘 건국 초기에는 400여 명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현재 하레디 신학생의 숫자는 5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이스라엘 정부는 28세까지 신학 공부를 이어가는 신학생에게는 병역을 면제하고 수당을 지급합니다. 하레디 인구의 대부분은 별도의 수익 활동을 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로서는 하레디가 골칫거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물러설 수조차 없겠죠. 주변국이나 국제사회와 끝없이 분쟁을 이어온 결과, 유대교라는 원리주의적 신앙을 제외하고 국가의 정체성을 찾기는 어려워졌습니다. 그리고 그 끝은 팔레스타인과 아랍인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었습니다.
 
 하레디가 살고 있던 예루살렘의 골목
ⓒ Widerstand
국제 사회는 여러 차례 협정을 통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해결점을 찾고자 노력했습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를 국가로 인정하는 '오슬로 협정' 같은 합의도 있었죠. 하지만 이스라엘은 지금도 팔레스타인 영토에 불법적인 정착촌을 건설하며 영토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습을 재개했습니다.
이스라엘 정치에서 우파 세력의 입지는 점차 강해졌습니다. 네타냐후 총리의 리쿠드 당이 집권을 장기간 이어오고 있죠. 제1야당의 자리도 이제는 자유주의 정당인 예쉬 아티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시장
ⓒ Widerstand
막다른 길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공격과 유대교 원리주의를 기반으로 한 국가 정체성이 만들어졌습니다. 국제사회의 규탄과 주변국과의 갈등 속에서 이스라엘이 선택할 수 있는 뻔한 선택지였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스라엘은 더 고립될 수밖에 없겠죠.
또 그럴수록 세계 각지의 자유주의적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을 외면할 것입니다. '유대인의 국가'라는 이스라엘의 정체성도 약해질 것입니다. 보수적 정치세력은 그럴수록 이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려 할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대규모 군사작전을 감행하고 있는 것처럼요. 악순환의 시작입니다.

이스라엘은 자국의 수도를 예루살렘이라고 주장하지만, 대부분의 국가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지배가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이스라엘의 수도를 텔 아비브로 보고 있죠.

자국의 수도조차 인정받지 못하는, 현대 이스라엘의 현주소입니다. 이스라엘의 공항에서는 타국의 제재를 받을까 여권에 입국 도장조차 찍지 못합니다. 세속주의와 원리주의 사이에서 갈등하다 헌법조차 만들지 못한 것이 이스라엘의 현실입니다.
 
 텔아비브의 산책로
ⓒ Widerstand
안식일 저녁, 어제까지만 해도 사람으로 가득했던 쇼핑몰은 모두가 떠난 듯 조용했습니다. 맥도날드 하나만 문을 열고 있더군요. 물론 일하고 있는 직원은 모두 아랍인입니다. 유대인의 빈 자리를 아랍인이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아랍인의 휴일인 금요일에는 유대인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겠죠. 
서로의 빈 자리를 채워나가며 공존하는 것. 맥도날드에서는 이루어지고 있는 일이, 어째서 이 나라에서는 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일까요. 이 막다른 길에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다만 허상 뿐인 '정체성 만들기'에서 벗어나는 것만이, 이 악순환을 벗어날 수 있는 첫 번째 단추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의 위태로운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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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개인 블로그, <기록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기억, 채널 비더슈탄트(CHwiderstand.com)>에 동시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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