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돼서 갑자기 발현해 10년이면 急死(급사)… '극희귀질환 hATTR(가족아밀로이드신경병)' 아십니까

이슬비 헬스조선 기자 2023. 7. 19.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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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의가 알려주는 질환_
오지영 건국대병원 신경과 교수
100만명 중 1명에게 나타나는 유전성 질환
손목 저림·기립성 저혈압 등 증상 보이다
10년 안팎이면 전신마비·심부전까지 유발
원인은 신경 세포에 쌓이는 단백질 찌꺼기
아밀로이드 축적 막는 약으로 치료 가능해
문제는 비용, 건보 적용 조건 매우 까다로워
환자에겐 마지막 희망… 지원 대책 절실
건국대병원 신경과 오지영 교수가 아밀로이드라는 단백질 찌꺼기가 체내 쌓이며 생길 수 있는 다양한 증상을 설명하고 있다. / 김지아 헬스조선 객원기자

50대 남성 A씨는 양쪽 손발이 저리고, 일어설 때마다 어지럼증이 반복되는 등 일상에 무리가 가는 증상이 지속해서 나타나 몇 번이고 병원을 찾았다. 그러나 일반적인 증상인 데다, 큰 이상은 없어 A씨는 많은 의사에게 '괜찮을 거다'라는 말만 들었다. 그러다 건국대병원 신경과 오지영 교수를 만났다. 2011년이었다. 오 교수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러 검사를 했고, 심장이 크게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 오 교수는 교과서에서만 봤던 극희귀질환 가족아밀로이드신경병(hATTR)을 떠올렸고,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201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말초신경병증 환자에서 유전자 검사로 hATTR이 확진된 사례였다.

hATTR은 매우 흔하고 다양한 증상으로 시작해 10년 안팎 단기간 내에 전신마비, 심부전 등으로 급사하는 무서운 병이다. 그러나 전 세계인 100만명 중 1명에게 나타나는 극희귀질환인데다, 다른 유전성 희귀질환과 다르게 성인이 돼서야 증상이 나타나 지금까지 주목받지 못했다. 오지영 교수는 "대부분 유전성 희귀질환이 소아에서 나타나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야 증상이 시작되는 병은 뚜렷한 가족력이 없으면 의사도 의심하기 어렵다"며 "hATTR은 그래도 다행히 효과 좋은 치료제가 개발돼, 빠르게 진단만 된다면 충분히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체내 아밀로이드 쌓여 20~50대에 증상 유발돼

hATTR은 유전자 돌연변이로 몸속 신경 세포에 단백질 찌꺼기(아밀로이드)가 쌓이며 생기는 질환이다. 우리 간에선 트랜스티레틴(TTR)이라는 호르몬 수송 단백질을 만든다. hATTR 질환이 있으면 이 단백질을 합성하는 유전자에 변이가 생겨 비정상적인 TTR을 만들게 되는데, 이 TTR은 구조가 불안정해 쉽게 작은 조각으로 깨진다. 조각들이 엉키면서 실 같은 아밀로이드를 만드는데, 아밀로이드가 그대로 혈관을 따라 쌓여 말초신경, 심장, 눈 등 장기 기능을 점차 떨어뜨린다. 쌓이는 위치에 따라 증상이 달라지는데, 우리나라에선 말초 신경과 심장을 침범하는 경우가 많다. 오 교수는 "보통 양손발 저림, 양 손목굴증후군을 많이 호소하고 기립어지럼증, 원인 모를 설사나 변비 등을 보이기도 한다"며 "신경에서 증상을 보이다가도 결국은 심장 문제로 사망에 이르는 환자가 많은데, 심장에 아밀로이드가 쌓이면 심부전, 비후성심근병증 등으로 급사할 수 있다"고 했다. hATTR 환자는 태어났을 때부터 체내에 아밀로이드가 조금씩 쌓인다. 20~50년 동안 축적되다, 장기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후엔 병의 진행 속도가 매우 빠르다. 특히 50대엔 각종 성인병 유병률이 높아 당뇨병성신경병증, 면역매개신경병증 등 다른 질환과 혼동돼 진단이 늦어지곤 한다.

◇핵심은 조기 진단, 가족력 있다면 검사 받아야

hATTR은 빠르게 치료할수록 예후가 훨씬 좋다. 오지영 교수는 "hATTR에 걸리면 심장질환 발병 위험이 일반인보다 4배 이상 커진다"며 "아밀로이드가 심장에 축적되면 펌프질하는 능력이 떨어져 심부전 발병으로 사망 위험이 커진다"고 했다. 제때 진료를 받으려면 가족력으로 접근해야 한다. 직계 부모나 형제 중에 환자가 있다면 특별한 증상이 없어도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가족과 발병 연령대가 비슷하기 때문에 가족 발병 연령대에서 약 10년 전부터 1년에 한 번 상담과 진찰을 받으면, 적절한 치료 시점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오지영 교수는 "2018년 전국 hATTR 환자를 모아 논문으로 발표했을 때만 해도 더 이상 환자는 많지 않으리라 생각했지만 지금까지 꾸준히 환자가 발견되고 있다"며 "심근병증, 위장관 아밀로이드증 등으로 먼저 진단될 때도 있어 다학제 진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드물지만, 가족력 없이 본인 몸에서 돌연변이가 생겨 이 질환이 유발되는 경우도 있다. 이땐 특별한 이유 없이 양쪽 손목굴증후군으로 진단받았거나 앞서 언급한 증상과 함께 심장과 관련된 증상이 나타난다면 신경과를 찾아 유전자 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경구 치료제로 진행 늦출 수 있어

hATTR은 희귀병이지만, 난치병은 아니다. 발병했더라도 증상이 진행되는 것을 늦추는 치료제가 있다. 지난 2012년 변이 TTR이 깨지지 않게 안정적으로 잡아주는 타파미디스(제품명 빈다켈)가 출시했다. 이미 침착된 아밀로이드를 제거할 순 없지만 더 이상 축적되지 않게 방지한다. 2018년부터 국내에서 처방과 함께 보험 적용이 가능해졌다. hATTR 환자 중 ▲말초신경병증으로 진단받고 ▲조직검사에서 아밀로이드 침착이 확인되고 ▲혼자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장애가 심하지 않은 환자는 보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다만, 질환이 더 진행되면 약물 투약을 중단해야 한다. 오지영 교수는 "120여 개가 있는 TTR 변이 중 침범한 장기에 따라 대표적으로 말초신경병증형과 심근병증형으로 나뉘는데,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말초신경과 심장을 동시에 침범하는 변이가 많아 두 아형을 구분하는 게 큰 의미가 없다"며 "그런데 심근병증형 약제는 아직 보험 인정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심근병증형은 같은 성분의 용량만 더 높은 약제를 투약하면 된다. 오지영 교수는 "말초신경병증으로 시작된 후 심근병증이 심해지거나, 말초신경병증이 아닌 심근병증으로 먼저 시작한 환자는 치료제가 있는데도 처방이 어려운 모순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극희귀질환이지만 치료제 개발은 매우 활발해서 2018년 정맥주사 유전자치료제인 온파트로(제품명 파티시란)라는 약물도 나왔다. 간에서 TTR 유전자 생성을 억제 해 아밀로이드 축적을 막는다. 오 교수는 "국제 임상시험에 참여하고 있는데 매우 효과적"이라면서도 "비용이 천문학적이라서 우리나라에서 사용하기까진 아직 많은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이 외에도 온파트로를 피하주사로 변형해 투약 편의성을 높인 약제나 단일클론항체와 같은 신약이 연구·출시되고 있다. 오 교수는 "진단하고도 치료하지 못할 때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한정된 건강보험 재정 안에서 지원책을 찾는 게 물론 어렵지만, 이제는 초고가약제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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