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추도와 이승만 예찬이 공존하는 한동훈의 모순
[박광홍 기자]
▲ 한동훈 법무부장관(자료 사진) |
ⓒ 남소연 |
이승만 대통령은 11월 17일 계엄령을 선포하고 송요찬을 계엄사령관으로 임명함으로써 제주도에서의 대량학살을 명실공히 승인했다. 계엄령 관련법이 마련되기 이전의 시점이었던 까닭에, 이승만은 그가 그토록 적의를 드러내던 식민통치기 제국 일본의 법제로부터 계엄령의 법적 근거를 찾았다. 요컨대, 이승만은 4.3사건 과정에서의 반인륜적 범죄들을 논함에 있어 가장 큰 책임자 중 한명인 셈이다(관련 기사: <동아>의 갑툭튀 '이승만 예찬', 무슨 역행인가 https://omn.kr/22ro7).
한국사회와 4.3
그런 그의 이름이, 대한민국 국무위원에 의해 제주도에서 예찬되었다. 15일 오전, 제주도 서귀포시의 모 호텔에서 열린 '제46회 대한상의포럼'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산업화 과정에서 이루어진 정부의 결정적 정책'들의 예를 드는 과정에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을 언급했다. 한 장관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농지개혁'이 "북한의 침략에 대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며 이승만 정권의 치적을 추켜세웠다.
전날 한 장관은 4.3 직권재심 청구를 총괄하는 검찰 합동수행단을 찾은 자리에서, 4.3사건 군사재판 수형인에 국한됐던 직권재심을 일반 재판으로 확대하는 등의 노력을 "끝까지 하겠다"고 굳게 다짐한 바 있다. 즉, 4.3 피해자의 명예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한 그 다음날, 4.3 피해자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가해 주체 이승만의 위업을 칭송한 것이다. 그것도 제주도에서 말이다.
이승만이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지도자라면, 이승만 정권 아래 무차별적으로 벌어진 살해, 고문, 방화, 강간, 투옥 등의 만행 역시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에 부합하는 것이 되는가. 이쯤되면 현 정부에서 줄곧 강조되는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이 무엇인지 도통 종잡을 수 없을 지경이다.
4.3 사건의 과오에 대해 부족하게나마 국가차원의 사죄와 배상이 이어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라는 문구가 전면에 내걸리는 순간 4.3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노력들이 모두 물거품으로 돌아가버리는 것만 같다.
제주도에서의 대량학살이 잘못된 국가폭력으로 정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그 범죄의 가해자가 국가에 의해 기념되고 예찬될 수 있는 것일까. 이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한국 사회가 과연 4.3사건의 진상을 올곧게 마주한 적이 있는가 하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도구로 쓰이는 희생자들
제주대학교 사회학과 고성만 교수는 <제주·학살과 추도 - '사자'(死者)의 재편성이라는 관점>(2010)이라는 논문에서 한국이라는 국가에 의해 주도된 과거사 청산 방식 자체에 근원적인 문제가 존재하고 있음을 짚고 있다. 즉, 4.3사건 과정에서 목숨을 잃은 사망자들 중 국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희생자'가 선별되고, 그 선별된 '희생자'들이 다시 국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것이 고성만 교수의 문제의식이다.
4.3사건 당시 봉기한 무장대(논문에서는 '항쟁 그룹'으로 표기)는 '자유민주주의'라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세력으로 간주된다. 따라서 이들은 국가에 의한 희생자 선별로부터 제외된다. 반면, 무장대를 압도적으로 상회하는 규모로 제주도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토벌대 측 '가해자'들은 국가가 선별하는 '희생자'의 범주에 들게 된다(법제처의 2009년도 법령해석에 따르면, 군경은 "본연의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이므로" 제주4 3사건진상규명및희생자명예회복에관한특별법 제2조제2호의 "희생자"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법령해석에서조차 "본연의 직무 수행"이라는 문구로 가해 책임은 지워져있다. 한편, "애국단체원"은 범죄를 저질렀다 할지라도 민간인 신분이기 때문에 "희생자"로 규정된다. -필자 주).
즉, 국가에 의한 희생자 선별과정에서는 사망자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폭도'였는가의 문제가 집요하게 질문될 뿐, 국가폭력 가해자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물음표도 제기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희생자를 선별하는 주체인 국가의 정당성을 흠집내는 일이기 때문이다.
국가에 의해 선별된 희생자의 범주 안에는 일방적 피해자, 가해자, 가해자가 된 피해자, 동조자, 방관자 등 당시의 격동 상황에서 사망한 숱한 유형의 사람들이 들어가게 된다. 바꿔 말하자면, 국가가 4.3사건 사망자들을 '희생자'로 일원화하는 과정에서 위와 같은 모든 맥락들, 가해의 주체와 책임, 가해자에 대한 분노의 감정 등은 소거되고 오직 '슬픔'의 추도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 주도의 '추념식'에서는 지역 사회나 국가의 발전의 구호들이 낭독되는 것으로 희생자는 국가 이데올로기의 도구로 소비되기에 이른다.
▲ 일본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순국' 스티커 "순국"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희생 위에 이루어진 평화, 감사의 기도를 잊지 마"라는 문구가 쓰여있다. '순국' 관념과 '평화' 관념의 결부는 아시아 각국 전쟁희생자들이 의식되지 않은 전몰자 추도 위에서 가능한 것이다. |
ⓒ 야후오쿠 |
근대일본의 정치사상사를 전공한 아카자와 시로(赤澤史朗) 교수는 저서 <야스쿠니신사 - '순국'과 '평화'를 둘러싼 전후사>(2017)에서 '전몰자'들의 죽음에 대한 의미 부여를 둘러싼 일본 사회의 치열한 논쟁 흐름을 정리한다. 가령, 일본 사회에서 자국 전몰자들의 죽음에 '순국'이라는 의미가 부여되고 '순국자들의 희생'으로 가능하게 된 평화와 번영을 지켜야한다는 세계관이 통용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물론 일본 내부적으로도 제국 체제의 폭력성을 비판하며 순국 관념을 부정하는 시각이 있다).
그러나, 일본 사회의 울타리를 넘어 아시아 각국의 전쟁희생자'들과의 관계로부터 전몰자들의 죽음을 바라본다면 '순국' 관념과 '평화' 관념이 양립하는 상태는 형언할 수 없는 모순 그 자체이다.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아들, 아버지, 남편이 처참하게 죽어가면서도 지키고자 했던(혹은 지키도록 강요받았던) 세계는, '아시아 각국의 전쟁희생자'의 입장에서는 폭력과 억압의 주체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순국'을 긍정하면서 평화의 가치를 논하는 것은 언어도단에 지나지 않게 된다. 일본 사회에서 전몰자 추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쟁의 중심에는 바로 이 '의식의 확장'이 있었다.
한국은 어떠한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산화한 호국영령들에게 머리를 숙여 감사를 표하는 것은 국민으로서의 당연한 미덕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자유민주주의의 아버지 국부 이승만을 기념하고 예찬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당시에 무참히 쓰러졌던 십수만의 학살피해자들에게, 자유민주주의를 참칭한 당시의 질서는 폭력과 억압의 주체에 지나지 않았다. 이 타협할 수 없는 모순 상태에 사회 전체가 눈을 감고 외면해왔던 것, 그것이 오늘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외면이 계속되는 한 진정한 의미에서의 희생자 추도는 불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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