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만나며 美항모 불렀다, 이 외교로 8% 성장 챙긴 나라
베트남의 권력 서열 3위 팜 민 찐 베트남 총리는 지난달 27일 베이징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을 만났다. 취임 2년 만에 처음으로 중국을 공식 방문한 찐 총리는 시 주석에게 “양국 간 전통적 우의와 관계 발전은 귀중한 공동 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같은 날 베트남 남부 다낭의 해군 기지에는 미국 항공모함 USS 로널드 레이건호가 기항 중이었다. 찐 총리가 화기애애하게 시 주석을 포함한 중국 고위급과 교류하는 동안, 미국의 주력 항모를 중국의 코앞에 들이민 셈이다. 중국의 심기가 내심 불편하리란 걸 베트남이 모를 리 없었다.
미·중 간 경쟁이 심화하는 가운데 G2를 상대로 이렇게 냉온 전략을 구사하는 베트남의 ‘대나무 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최근 미국의소리(VOA)는 베트남이 대외 전략에 따라 절묘한 균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과 서방 동맹국들은 첨단 산업의 탈(脫)공급망, 중국 우회 전략에 따라 베트남으로 몰린다. 중국은 “사회주의 친구”란 점을 앞세워 베트남에 손짓한다. 미·중 양국의 러브콜을 받는 모양새다.
시진핑 만나며 美항모 부르고 대표단 파견
그러나 양 측이 회담 직후 각각 배포한 보도자료를 비교해보면 두 나라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이 읽힌다. 중국 외교부는 시 주석이 “전 세계의 탈동조화, 공급망 단절을 반대한다”고 했고, 찐 총리는 “어떤 세력도 두 나라 사이를 소원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베트남 측 공식 자료엔 이런 내용이 거의 안 담겼다. 베트남 측은 찐 총리가 시 주석에게 “베트남의 독립적, 자주적 외교 노선”을 강조했다고만 했다.
베트남의 냉온 전략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찐 총리의 방중 기간 베트남 공산당의 레 화이 쭝 대외관계 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안보보좌관과 앤서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 등을 만났다. 중국과 우호를 다지면서도 대미 관계를 챙겼다. 블링컨 장관은 쭝 위원장을 만나 “베트남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핵심 파트너”라고 강조했고, 쭝 위원장은 “베트남은 미국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긴다”고 화답했다. 앞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지난 3월 서열 1위인 쫑 당서기장과 전화 통화하면서 “탄력 있고 독립적인 베트남에 대한 미국의 공약”을 강조하면서 “안보 상황 악화와 같은 지역 도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협력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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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으면서 유연” 대나무 외교 추구
베트남은 미·중과 모두 전쟁을 치렀다. 물론 미·베 전쟁(1964~1975년)이 널리 알려졌지만, 1979년 치른 중·월전쟁 등 중국과의 무력충돌도 이어졌다. 특히 중국이 가상의 경계(일명 구단선, 九段線)를 그어 자국 영해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 분쟁은 베트남 국민의 반중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베트남은 1988년 남중국해 스프래틀리(난사) 군도에서 중국 함대의 공격으로 자국 병사 64명이 수장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2014년엔 파라셀(시사) 군도에서 중국이 일방적으로 석유 시추 작업을 하다가 베트남 경비정들과 충돌했다. 베트남 어선 한 척을 중국 어선 40척이 에워싸고 침몰시키는 사건도 일어났다. 그해 5월 호찌민·하노이 등에서 유례없는 반중 시위가 한 달 내내 벌어졌다.
베트남 문화체육관광부가 구단선이 관련하는 상영물·공연을 즉각 차단하는 건 이런 배경에서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 ‘바비’를 상영금지 처분한 데 이어 한국 걸그룹 블랙핑크의 월드투어 주최사에 대해서도 구단선 표기 위반 관련 조사에 돌입했다. 최근 구단선이 등장하는 중국 유명 드라마의 넷플릭스 방영을 금지히기도 했다.
중국의 막강한 국방력을 체감한 베트남은 미국의 국방·외교력을 활용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구상이다. 동시에 베트남은 중국의 ‘차이나 머니’도 그것대로 활용하자는 입장이다. 이게 지난한 피의 역사를 한 수 접어둔 채 베트남이 미·중 양쪽과 ‘적과 동침’을 계속하는 이유다.
날개 단 베트남 경제…올해도 6% 예상
배경엔 미국의 아시아 맹방인 한국과 일본, 대만 자본이 베트남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지난해 신규 외국인 직접 투자(FDI)는 13.5% 증가한 224억 달러(약 28조 9700억원)를 달성했다. 지난해 베트남에 새로 들어간 FDI 1위는 일본으로, 총 33억 8800만 달러(약 4조 3700억원)에 달한다. 중국 13억 5600만 달러(1조 7500억원)의 두 배가 넘는 금액을 투자했다. 한국은 11억 1800만 달러(1조 4400억원), 대만도 5억여 달러(6600억원)를 투자했다. 지금까지 누적 FDI 규모로 보자면 싱가포르가 1위, 한국이 2위다.
베트남은 한국의 3대 교역국이다. 정재완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다만 “중국을 단기간에 대체하기엔 베트남의 인프라는 부족하다”면서 “인건비 상승, 숙련 노동자 부족과 기술 축적 미비 등은 여전히 한계로 남아있다”고 지적했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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