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해 대책' 눈감은 정부…"알력 다툼·비용 따지다 참사 키웠다"
기후 변화에 따른 집중호우 피해 대책을 논의해야 한다는 여야의 지적에 정부가 예산 증가와 업무 중첩 등의 이유를 들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치권에선 “부처 간 알력 다툼, 안전보다 비용을 우선시한 행태가 10년 만에 최다 사상사를 낸 수해를 키웠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행정안전부의 반대로 진척을 내지 못하고 있는 ‘도시하천유역 침수피해방지대책법안’(노웅래 의원 대표발의)이다. 이 법은 환경부가 행정기관·공공기관별 도시침수방지대책 정보를 통합해 관리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행안부는 본인들이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에 근거해 재난 관리 업무를 총괄하는 상황에서 환경부가 하천 침수 대응 업무를 가져가면 업무 영역이 중첩될 수 있다는 논리를 굽히지 않고 있다.
국회 및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행안부·환경부·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지난 2월부터 10차례 이상 이 법안을 논의해왔다고 한다. 5월엔 행안부와 환경부 실무급에서 1차 협의안을 마련했고, 6월 국회가 수정안을 추가로 요구했으나 이후 제대로 된 논의가 없는 상태다. 국회 관계자는 18일 “올해 침수 피해 이전에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도, 여당이 행안부 눈치를 보느라 상임위 상정은커녕 전문가 공청회조차 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침수피해방지 대책법은 예방에 초점 맞춰진 제정법이고 재난 기본법은 사후 대책에 집중한 법인데, 행안부 내부에선 업무 영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수해가 예상되는 지방자치단체 관할 하천에 대한 중앙 정부의 관리 책임을 강화하는 근거를 담은 ‘하천법 일부개정법률안’(이광재 의원 대표발의)도 지난해 기획재정부 반대로 무산됐다. 최악의 수해를 입은 오송 지하차도 침수가 발생한 미호강은 현재 국가하천이나, 관리업무는 환경부→충북도→청주시로 위임된 상태다.
이 법을 다룬 지난해 11월 23일·2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소위 속기록을 보면 여야가 한목소리로 지자체 하천관리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남아있다. 당시 김영진 민주당 의원은 “집중 호우가 많은 경우 신속하게 대응할 국가지원 지방하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 한다”며 “지방 하천에 대한 정비가 원활하지 않아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이에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도 “기후 변화로 국지적 호우 고민을 안 할 수 없다”며 공감을 표했다.
이주환 국민의힘 의원은 환경부에 “지방 하천 개수가 많고 길이도 길어 그만큼 예산이 들어가니 기획재정부에서 난색을 보이는 건데, 예방 근거에 대한 기준 설정은 했느냐”고 따져 묻기도 했다. 하지만 재정 분권 취지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기재부가 반대하고, 환경부도 “모든 하천을 직접 관리하는 것 어렵다”고 주장해 결국 논의가 이어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부처 이기주의와 정치권의 책임방기가 안전 공백을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부처는 서로 좋은 권한을 가지려 하고, 국회는 사후약방문식 법안만 발의한 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며 “국회·정부의 소통 부재로 애꿎은 국민만 피해 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와중에 국회에선 ‘지하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7월 17일)’,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 개정안(7월 13일)’ 등 이번 참사를 계기로 새 법안들이 속속 발의되고 있다.
여야는 이날도 ‘책임 떠넘기기’에만 주력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수자원 관리를 국토부가 아닌 환경부가 하는 것이 적절한지에 검토가 필요하다”며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시작된 ‘물 관리 일원화’를 저격했다. 반대로 김민석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윤석열 정부의 부처 간 다툼이 지방하천지원법과 도시침수방지법 등 중요한 법안들의 처리를 막았다고 주장했다.
강보현 기자 kang.bo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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