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걱정하게 만드는 세상 [박소영의 나라교육]
진보성향 교육단체들 그렇게 바라던 일인데 침묵
교육 문제 정쟁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교육 걱정하게 만들어
대통령이 쏘아 올린 사교육 문제! 모든 국민이 공감하는 문제임은 분명하다.
그런데 왜 이리 시끄러운 걸까.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는 대선공약을 내걸었던 야당 대표도 킬러 문항 방지법을 발의했던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박수를 치기는커녕 연일 비판하기 바쁘다. 그뿐 만 아니라 국회 교육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유기홍 의원은 팩트 체크를 하겠다며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에도 없고, 야당 의원들은 언급도 한 적이 없던 수능 킬러 문항을 왜 수능 얼마 안 남은 지금 이 시점에 거론하느냐’며 마치 학부모 학생을 무척이나 염려하는 것처럼 문제 삼았다. 지난 문재인 정권 동안 수능 절대평가를 반대하며 차라리 정시가 더 공정하다고 아스팔트에서 외쳤던 학부모들을 걱정해준 적이 없던 사람들의 비판이라 왠지 낯설다.
킬러 문항을 없애겠다는 정부의 발표를 환영했어야 할 집단은 또 있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그 밖의 진보성향의 교육단체들이다. 진작 환영 논평이나 환영 기자회견이라도 했어야 마땅한데 조용하다. 왜 그럴까.
사실 그들은 킬러 문항이 사라지든 그대로 있든 관심이 없다. 그저 교육 문제를 정쟁의 도구로 삼을 뿐 자기들과 주장이 다른 학부모와 학생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역대 어느 정부도 사교육비 경감 문제에 관심이 없던 정부는 없었다. 사교육을 걱정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겠다던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하 사걱세)이 출범한 지 올해로 15년이 된 지금도 사교육비는 역대 최고를 갱신했다.
어떤 사람들은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사교육을 걱정하게 만든다고 원망한다.
2008년 사걱세가 만들어졌을 때 초등학교 엄마였던 나도 그들을 응원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 학원 저 학원을 다녀야 하는 아이들이 딱해 보여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응원했던 사걱세는 내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 엄마들에게 불편한 존재가 된다. 현실을 모르는 소리 한다고 비판하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이다.
그렇게 출범 당시 많은 학부모의 마음을 얻었던 사걱세는 ‘과도한 사교육은 아이들을 망친다’라는 말로 학부모들을 죄책감에 몰아넣었던 사걱세 이사이자 유명 소아청소년정신과 의사였던 서모 씨의 내로남불로 원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본인은 “사교육 받지 말자고 한 적 없다”라고 해명했지만 그의 아이가 시간당 6만원, 월 80여만원의 대치동 사교육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고, 그 뒤로 과학고에 들어갔기 때문에 사걱세를 믿고 따랐던 많은 학부모가 배신감을 느끼는 건 어쩌면 너무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사실상 그의 자녀가 사교육을 받든 과학고를 들어가고 의대에 가든 무슨 문제가 되겠냐고 하겠지만 세상은 그렇지 않다.
사걱세가 학부모들을 실망하게 한 것은 그 일뿐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권에서는 ‘청와대 위에 사걱세가 있다’라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기세등등했던 사걱세. 그들은 수능을 절대평가로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학부모들에게 맹비난을 받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오후 10시 이후 학원 금지’ 정책을 제안하였고, 박근혜 정부에서는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선행학습을 금지하자는 정책을 제안해 법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이들의 이런 제안 때문에 오히려 사교육을 더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당시 10시 이후 학원 수업을 못 하게 된 고등학생들에게 야간 자율학습은 뒷전이 됐고, 학교에서 선행학습을 못 하게 된 학생들은 학원에 가서 선행을 하는 일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사걱세의 주장대로라면 초등학생이 미적분을 하는 작금의 상황은 일어나지 말았어야 한다.
그뿐인가 사걱세는 논란이 많았던 2015 개정 교육과정에도 참여하여 굳이 고등학생이 배울 필요가 없는 분야는 빼야 한다며 수학, 과학 등의 교과목을 쪼개서 실질적으로는 필수 내용을 누락시키고 고등학교 수학을 축소했다. 킬러 문제의 등장이 이러한 출제 범위 축소 때문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좁은 범위 내에서 문제를 내다보니 결과적으로 더 고난도 문제를 출제해서 변별력을 갖고자 했다는 것이다.
사걱세가 지지해온 학생부종합전형과 같은 수시 제도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이 주장해온 수시 제도가 80%에 육박하는 시점에도 사교육비는 전혀 줄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고교학점제를 앞세워 현재 204학점에서 192학점으로 낮춘 학점을 180학점까지 더 낮춰서 고등학교 수업 시간을 대폭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2025년 전면 시행을 앞둔 고교학점제는 성공 여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남아 있고, 현장의 혼란 가능성 또한 언제 활활 타오를지 모르는 불씨로 남아 있어서 그들의 내신 절대평가, 수능 절대평가 주장이 조국 일가의 입시 비리로 상처받은 수험생과 학부모들에게 얼마나 많은 공감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걱세는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수험생과 학부모 등이 ‘불수능’으로 인해 피해를 봤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그 소송에서 사걱세는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패소했다. 그 정도로 킬러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왔던 사걱세가 이번 윤 대통령의 킬러 문항 배제 지시에는 왜 두 손 들고 환영하지 않는지 의문이다. 오히려 지난 7월 5일, 대통령의 발언을 정쟁으로 끌어들이기 바쁜 더불어민주당과 ‘수능 사태’라는 주제로 국회 토론회를 공동 주관했으니, 이들의 이런 모습이 내 눈에만 이상하게 보이는 걸까.
얼마 전 사걱세를 만들었던 두 공동대표는 젊은 두 학부모에게 대표직을 물려주고 ‘교육의 봄’이라는 재단을 만들었다. 참으로 대단한 열정이다. 채용이 바뀌면 교육이 달라진다고 외치며 학벌 없는 시대를 만들겠다고 한다. 많은 사람이 학벌을 중시하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 한 더 좋은 대학에 가겠다고 경쟁하는 풍토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들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 보이는 이유이다. 그러나 노력의 차이, 실력의 차이를 차별이라 여기며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오히려 역차별 받는 세상이 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사교육비 경감 효과가 가장 큰 정책이 어떤 정책인지 살펴본 결과 2011년에는 EBS 강의와 방과 후 학교 운영, 2021년에는 EBS 수능 연계라고 답한 비율이 대체로 높게 나왔다. 즉 일반 국민은 수능처럼 대입전형을 간소화해줄 때 사교육 의존도가 낮아진다고 볼 수 있다.
2009년 이명박 정부에서 실시한 사교육 경감 정책 중에서 단위 학교가 참여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사교육 없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경기도 성남시 분당의 모 초등학교는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 교장, 교사, 학부모 모두가 힘을 모았다. 학교가 어떻게 해주면 아이들을 학원에 안 보낼 것인지 학부모들의 니즈를 파악하고, 학원 버금가는 ‘방과후학교’를 만들었다. 공교육 최초로 온라인 영어독서프로그램과 미국의 르네상스 러닝 프로그램까지 도입하고 1만권이 넘는 영어 도서를 갖추는 등 방과 후에 각종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개설하였다. 또한 수학과 영어는 학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수준별 수업을 개설해 학교 수업을 보완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인근의 타학교 학부모에게는 부러움을 샀고, 심지어 해외에서 귀국하는 사람들에게는 선호 학교로 거론되기도 했다.
사교육비는 공교육에서 이러한 변화가 일어날 때 줄어드는 것이지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을 외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글/ 박소영 국가교육위원회 위원(교육바로세우기운동본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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