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석운 칼럼] 우크라이나 전쟁에 관심 가져야 할 이유
비슷한 언어 겹치는 역사 보유
수백만 명 숨진 홀로도모르
뿌리 깊은 반러 감정으로 작용
90년 전 고립 속 대기근 달리
국제적 지원 속 러에 맞서는
우크라, 세계 패권 바꿀 수도
종전은 내년 미 대선이 변수
트럼프는 ‘24시간 내’ 장담
전쟁 결과는 한국에도 큰 영향
인도적 지원과 재건 참여로
우크라에 깊은 관심 가져야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는 슬픈 표정으로 밀이삭을 움켜쥔 소녀상이 있다. 90여년 전 대기근으로 숨진 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만들어진 동상이다. 유럽의 곡창지대라 불리는 우크라이나에서 대기근이 발생한 건 스탈린 치하에서 가혹한 곡물 수탈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1932~1933년에만 250만~350만명이 굶어 죽었다. 수도 한복판 거리에 앙상한 시신들이 굴러다닐 정도였다. 영양실조로 인한 저출산 등 대기근 여파로 우크라이나 인구 감소 효과가 1100만~1500만명에 달했다는 분석도 있다. 우크라이나인들이 이 기근을 홀로도모르(Holodomor·기아로 인한 대량학살)라 부르는 까닭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매년 11월 넷째 토요일을 추모일로 정하고 희생자들을 기리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같은 동슬라브족으로 언어가 비슷하고, 역사와 문화가 겹치는 부분이 많다. 우크라이나에는 러시아어 방송도 여럿 있다. 그러나 홀로도모르의 기억은 러시아에 대한 우크라이나인들의 강한 반감으로 작용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러시아 침공을 위해 우크라이나로 진주한 독일 나치군을 해방군으로 환영할 정도였다.
우크라이나의 슬픈 역사는 길다. ‘변경’이라는 뜻의 나라 이름이 시사하듯 고대로부터 여러 이민족의 침략과 지배를 받았다. 훈족과 게르만족, 몽골족, 튀르크계 타타르인들이 짓밟은 이 땅에 독립 왕정이 들어선 시기는 짧았다. 제1차 세계대전 도중 독립 시도가 있었지만 1922년 출범한 소비에트 연방의 일원으로 편입됐다.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건 소련이 해체된 1991년이다.
소련 공산당 시절 모스크바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세계 최대 규모의 중공업 단지를 건설하고 핵미사일 기지를 설치할 정도로 이곳의 지정학적 가치를 높이 샀다. 우크라이나 출신 소련 공산당 서기장 후르시초프는 1954년 당시 러시아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우정의 선물’이라며 뚝 떼서 우크라이나에 양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60년이 지난 2014년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강제병합을 시도하는 빌미가 됐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전면전을 치르면서 90년 만에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다. 달라진 건 당시에는 아무 저항을 못 했지만 지금은 국제적 관심과 지원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홀로도모르 참상을 보도한 영국 기자가 의문사를 당할 정도로 비극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고 우크라이나는 고립됐다. 그러나 90년 후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나토정상회의 등에 참석해 러시아를 규탄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언제 끝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은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결제망에서 러시아 은행들을 퇴출시키고 러시아산 석유 수입을 제한하는 제재를 가하고 있지만 러시아는 중국과 인도, 이란, 북한과의 교역을 늘리며 제재를 회피하고 있다. 올 상반기 중국과 러시아 간 교역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40% 증가한 1145억40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인도는 원유 수입량의 45%를 러시아산으로 대체했다. 가격상한제를 역이용해 러시아산 원유를 싸게 사서 정제한 뒤 비싸게 파는 실리를 챙긴 것이다. 러시아는 북한으로부터 무기를 공급받는 대가로 정제유와 식량을 공급하고 있다. 이란으로부터는 드론과 함께 전력 공급을 받기로 했다. 전쟁을 끌고 갈 경제적 여력이 아직 남아 있다는 것이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로마교황청이 움직이고 여러 나라가 중재안을 냈지만,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아직은 거부하고 있다. 한국처럼 비무장지대를 설치하고 휴전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지만 큰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변수는 미국 대선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년에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다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상당한 부담을 안게 될 것이다. 트럼프는 자신이 다시 대통령이 되면 ‘24시간 안에’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낼 것이라고 장담했다.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과 종전 방식은 세계 패권의 향배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그 변화는 한국의 안보와 경제에도 작지 않은 파장을 미칠 것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일극 체제가 공고해질지, 중·러 연대가 강화되면서 북한과 이란이 호응하는 다극 체제가 들어설지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달렸다. 한국이 우크라이나에 파병하거나 무기 지원은 하지 않았지만, 인도적 지원과 재건 참여로 주의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전석운 논설위원 swch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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