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북 미군 알고보니… 한국서 폭행 혐의 호송 중 도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견학하다 월북한 미국인은 한국에서 폭행 사건으로 구금된 전력이 있는 주한미군 트래비스 킹(23) 이등병인 것으로 확인됐다. 킹은 추가 조치를 위해 본국으로 호송되던 중 인천국제공항에서 도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킹은 북한에 억류된 상태이며 미 국방부는 사건 해결을 위해 북한 측과 대화를 시작했다.
CBS 뉴스는 18일(현지시간) “문제의 병사는 킹 이등병으로 한국에서 구금됐다가 풀려나 징계 사유로 출국하던 중이었다”며 “공항 보안 검색대를 통과한 뒤 다시 돌아와 JSA 관광 그룹에 합류했다”고 복수의 미 관리를 인용해 보도했다.
ABC 뉴스는 “킹은 현지인과 다툰 뒤 구금 시설에서 47일간 복역하고 풀려났다”며 “이후 일주일간 감시 하에 주한미군 기지에서 머물렀다”고 복수의 군 당국자를 인용해 보도했다.
당국자들에 따르면 킹은 미군 부대에서 퇴소 절차를 마쳤고, 전날 본국 호송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떠났다. 동행했던 미군 호송자는 항공권이 없어서 보안검색대를 통과하지 못했고, 킹 혼자서 터미널로 들어갔다고 한다. 킹은 텍사스주 포트블리스로 복귀해 추가 조치를 받을 예정이었지만, 비행기를 타지 않고 공항을 나와 JSA 견학 투어에 합류했다. 미 당국자들에 따르면 킹은 2021년 1월부터 육군 기병대 정찰병으로 근무했다.
한 관계자는 “킹은 미국에서 해외 유죄 판결에 따른 행정 분리 조치를 받을 예정이었다”고 말했다. 킹은 이미 복역을 마쳤기 때문에 더 구금되지 않았고, 비행기를 타지 않을 것으로 의심할 이유도 없었다고 ABC 뉴스는 전했다.
앞서 로이드 오스틴 장관도 이날 우크라이나 국방연락그룹 화상회의 뒤 국방부에서 개최한 기자회견에서 “우리 군인 중 한 명이 (공동경비구역을) 견학하던 중 고의로 허가 없이 군사분계선을 넘었다”고 공식 확인했다.
오스틴 장관은 “우리는 북한이 그의 신병을 확보했다고 믿고 있다. 가까운 친척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다”며 “상황을 긴밀히 주시하고 조사하면서 사건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확한 도주 경위나 경로 등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그와 함께 견학 프로그램에 다녀왔던 한 목격자는 “판문점의 한 건물을 견학했을 때 이 남성이 갑자기 크게 ‘하하하’ 웃더니 건물 사이로 뛰어갔다”며 스스로 월북했음을 확인했다. 이 목격자는 “처음에는 고약한 장난인 줄 알았는데, 돌아오지 않자 장난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킹의 월북은 북미 대화가 단절된 상황에서 이뤄진 것이다. 이 때문에 킹이 미국행을 원하면 이를 계기로 한 북미 관여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미군이 북한으로 넘어간 뒤 미 국방부가 북한에 있는 외교관들과 접촉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은 한국 정부와 정기적이고 지속적인 접촉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현재 미 국방부가 북한 카운터파트와 이 문제에 대해 대화 중”이라며 “백악관, 국방부, 국무부, 유엔이 협력해 더 많은 정보를 확인하고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조 바이든 대통령은 상황을 보고받았으며, 면밀히 주시하고 있는 사안 가운데 하나”라고 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과 북한 간 외교가 이뤄지지 않고 양국이 군사력을 과시하는 상황”이라며 “김정은 위원장과의 석방 협상은 북미 관계의 긴장된 순간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2018년 북한에 억류된 미국 시민 3명의 석방 협상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고,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석방 결정에 대해 “선의의 긍정적 제스처”라고 평가했다. 이후 트럼프 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에서 처음으로 만나 본격적인 대화를 시작했다.
오스틴 장관은 월북이 안보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느냐는 질문에 “난 전적으로 우리 장병의 안녕을 가장 걱정하고 있다”며 “이 사건에 집중하면서 향후 며칠간 사건의 전개를 알려드리겠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북한에 있는 미군에 대해 걱정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북한은 킹 일병이 자의로 월북했다는 사실을 내부 체제 선전용 도구로 활용할 여지도 크다. WSJ은 “김정은은 북한의 가장 큰 적인 미국에 대한 (내부) 선전으로 활용하려 할 수 있다”며 “식량 부족과 제재, 코로나19 팬데믹로 경제에 타격을 입은 북한 주민 사기 진작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월북은 2018년 미국 국적의 브루스 바이런 로렌스가 중국에서 국경을 넘어 북한에 들어갔다 억류된 이후 처음으로 확인된 월북 사례라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주한미군 군인이 월북한 건 1965년 1월 고(故) 찰스 로버트 젱킨스 병장이 비무장지대(DMZ) 야간 순찰 중 철책을 통해 월북한 이후 58년 만이다. 미국은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의 사망 이후 북한을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하고 있다.
워싱턴=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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