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더미에서 30분도 안돼 SAF 원료 ‘합성원유’ 추출
선별장 안에서 처음 마주한 건 폐기물 매립장에서 흔히 보던 거대한 쓰레기 더미였다. 철 조각이나 알루미늄 캔부터 비닐, 페트병, 플라스틱 부품, 종이 박스, 과일껍질까지 온갖 종류의 생활폐기물이 한데 뒤섞여 거대한 쓰레기언덕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 컨베이어벨트로 연결된 여러 대의 폐기물 처리 장비가 쉴 틈 없이 돌아갔다. ‘돈 되는’ 재활용 폐기물을 수작업으로 재분류하는 선별 노동자는 보이지 않았고, 기계 소음만 가득했다.
지난 13일(현지시간) 찾은 ‘펄크럼’사의 미국 네바다주 리노 선별장은 폐기물 자원 순환의 밑바닥으로 불리는 한국 선별장 모습과 여러모로 달랐다.
선별장은 리노 중심가에서 동쪽으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록우드 매립지’ 근처에 있었다. 황량한 언덕 위 공장에서 기자를 맞이한 짐 스톤사이퍼 펄크럼 엔지니어링 부사장은 “우리는 이 냄새 나는 쓰레기를 ‘마법’처럼 항공유로 바꾼다”고 말했다.
폐기물 가스화 전문기업인 펄크럼은 땅에 묻거나 태워야 했던 쓰레기를 원료로 합성원유를 뽑아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펄크럼은 폐기물 선별장을 ‘공급 원료 처리시설’(FPF)이라 부른다. 에릭 프라이어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매립 폐기물을 더 깨끗한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미개척 자원 중 하나라 본다”고 말했다.
쓰레기가 친환경 에너지 원료가 되는 과정은 단순해 보였다. 선별장으로 들어온 쓰레기는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육안·무게·자력 선별을 거쳤고, 가연성 폐기물만 걸러졌다. 가연성 폐기물은 분쇄작업을 거쳐 다시 3㎝ 이하의 작은 더미로 바뀌었다. 펄크럼은 이를 ‘색종이 조각’이라 불렀다. 알루미늄이나 철 등 불연성 폐기물은 따로 재활용돼 최종 매립되는 쓰레기는 들여온 양의 약 10~15% 수준이라고 한다.
펄크럼 측은 폐기물 업체 3곳과 제휴를 맺어 쓰레기를 무료로 공급받고 있다. 폐기물 업체는 매립비용을 아끼고, 펄크럼은 안정적으로 ‘쓰레기 원료’를 공급받을 수 있어 윈윈이 되고 있다고 업체 측은 설명했다.
선별 작업이 끝난 쓰레기 조각은 2.5㎞ 정도 떨어진 바이오 정유시설(bio-refinery) ‘시에라 공장’으로 이동했다. 공장 입구에는 건조된 작은 쓰레기 더미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맨손으로 만져보니 거친 골판지 느낌이 들었다. 쓰레기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악취는 없었다.
펄크럼은 쓰레기 더미에 산소와 스팀을 주입해 수소와 일산화탄소로 구성된 합성가스(syngas)를 뽑아냈고, 이후 촉매 반응과정인 피셔트롭쉬(FT) 공정을 통해 ‘액체 탄화수소’를 만들었다. 스톤사이퍼 부사장은 “쓰레기더미에서 최종 제품을 만들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액체 탄화수소는 화학적 구성이 원유와 유사해 합성원유라 불린다. 시에라공장 자체도 일반적인 정제시설과 유사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시추 과정이 필요 없어 기존 원유로 항공유를 생산할 때보다 탄소배출을 80%까지 줄였다고 한다. 프라이어 CEO는 “펄크럼은 한 해 50만t의 쓰레기를 26만 배럴의 합성원유로 만들고 있다”며 “우리 공장에서 만든 합성원유는 가스화기에서 불순물을 완전히 제거하기 때문에 기존 원유보다 더 깨끗하다”고 설명했다. 26만 배럴은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을 비행기로 180회 왕복할 수 있는 양이다.
생활 폐기물을 통한 합성원유 생산은 사업성도 높아지고 있다. 쓰레기 매립지 확보나 탄소 배출을 줄이는 친환경 에너지 확보에 대한 각국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현재 시에라공장에서 생산된 합성원유는 미국 정유사 ‘마라톤’이 전량 사들여 ‘지속가능 항공유’(SAF)를 만드는 데 사용하고 있다.
SAF는 주요국들이 항공분야 탄소감축을 추진하면서 주목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부터 급유 시 SAF 등 바이오 항공유를 기존 항공유에 최소 2%를 섞도록 의무화한 ‘리퓨얼 EU’ 법안을 지난 4월 통과시켰다. EU는 이 비중을 2030년 6%, 2035년 20%, 2050년 70%로 늘리도록 했다. 때문에 이미 미국 유나이티드 항공, 일본항공(JAL), 홍콩 케세이퍼시픽 등 항공사들이 펄크럼에 투자했다. 미국은 지난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SAF 1갤런당 1.25~1.75 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키로 했다. 시에라공장은 지난해부터 가동을 시작했는데, 1년 이내에 손익분기점에 도달할 것으로 업체측은 전망했다.
프라이어 CEO는 “우리는 군 기준에 부합한 제트기 연료를 생산할 수 있다”며 “국방부로부터 공장 건립을 위한 보조금도 받았다”고 했다. 이어 “이 공장은 엄청난 (친환경 에너지) 시장 수요를 충족하고, 매우 중요한 환경 문제를 해결한다” 며 “에너지산업 분야의 중대한 분기점이자 신산업의 시작”이라고 했다.
한국에서도 열분해로 연료를 만드는 시설 건립을 위한 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이 올해 시행된다. SK와 SK이노베이션은 폐기물 가스화 기술력 확보 등을 위해 지난해부터 8000만 달러(약 1040억 원)를 펄크럼에 투자했다. 김양섭 SK이노베이션 재무부문장(CFO)은 지난달 증권사 컨퍼런스콜에서 폐기물을 활용한 SAF 생산에 2244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한국은 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은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하도록 해 합성 원유 정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SK 측은 설명했다.
리노=글·사진 전웅빈 특파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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