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한일관계 회복, 경제에 달렸다

2023. 7. 19.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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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한일관계가 나빠진 이유가 단지 정치인 때문만은 아니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국가 간 민감한 문제를 건드린 결과 성장률이 떨어지고 일자리가 줄어든다면 그의 지지도는 추락할 것이다. 그러면 당연히 언행을 삼갈 것이다.

「 공급망 연계성은 한일관계 핵심
일본 중기 기술력 한국 접목하고
미래형 기술의 융합·상용화 통해
첨단제조업 공동체로 발전해야

공급망 연계성이 약화한 것이 한일 갈등의 주된 배경이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한·중·일의 소재·부품·장비 산업에서의 생산 및 무역 파급효과를 분석한 보고서를 2021년에 발간하였다. 이에 따르면 2000년에는 한국의 대일본 파급효과가 중국의 2.5배였지만 2018년에는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또 2018년 일본의 대한국 파급효과도 중국의 절반 정도에 머물렀다. 한일 두 나라가 경제적으로 서로 필요로 하는 정도가 현격히 감소했다는 의미다. 주된 이유는 양국 간 상호보완성을 찾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국은 경제발전 단계의 차이로 한국과 자연스럽게 연결될 수 있었다. 특히 중국의 생산비가 상대적으로 낮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었다. 반면 경제발전 단계가 유사한 한일 간에는 생산비 차이가 작을 뿐 아니라 설계와 생산, 또는 업스트림과 다운스트림과 같은 경제적 분업 구조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한일의 경제연결 강화는 양국 국익에 큰 도움이 된다. 한국은 첨단기술의 핵심인 반도체, 2차전지, 바이오산업 모두에서 대량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자동차, 철강, 조선 등에서도 일류 기업이 존재한다. 이처럼 한국은 광범한 제조업 분야에서 세계 수준의 생산 능력을 보유한 보기 드문 나라다. 한편 일본은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세계적 강자다. 또 뛰어난 기술력을 가진 많은 중소기업이 있다. 한국은 기술 융합과 상용화에 강점을 가졌다면 일본은 기술의 깊이와 원천기술 개발 면에서 탁월하다.

한일 간 산업협력은 일본 중소기업이 보유한 양질의 기술을 한국의 생산 역량과 결합하는 데서 출발할 수 있다. 오사카에 있는 한 중소기업을 방문한 적이 있다. 영하 200도 가까운 초저온부터 고온까지를 견딜 수 있는 공업용 유연 튜브(flexible tube)나 팽창 가능한 조인트 등을 생산하는 이 기업은 주로 대기업이나 대학 실험실로부터 주문을 받아 제작한다. 사장에게 한국과 거래하는지 물어보니 숙련 인력을 구하기 힘들어 국내 수요에 부응하는 것도 벅차다고 말했다. 문제는 뛰어난 기술력을 보유한 일본 중소기업에 관한 정보를 우리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나 재계는 일본의 중소기업에 관한 정보를 취합해 우리 기업에 체계적으로 제공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일본 경제단체나 일본국제협력기구(JICA)와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미래사회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는 일본 기업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토에 본사를 둔 오므론(Omron)은 사회문제를 기술로써 해결한다는 창립 정신에 따라 자동화용(用) 센서나 제어기기, 건강관리제품 등을 생산한다. 1967년에 세계 최초로 지하철역의 자동 개표 및 집표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특히 고(故) 피터 드러커 등 미래학자의 자문으로 미래사회의 모습을 예측하고 이를 기술 개발에 반영해 왔다. 이처럼 일본에는 한국 기업보다 멀리 보며 기술 개발에 힘쓰는 기업이 많다. 미국의 클래리베이트가 발표하는 세계 100대 혁신기업에 등재된 기업 수가 가장 많은 나라는 일본이다. 2023년에는 37개의 일본 기업이 선정돼 세계 최다를 기록했으며 미국은 19개로 2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5개, 중국은 4개 기업이 포함됐다. 한국 기업이 현재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면 일본 기업은 미래를 내다보려는 특징이 있다. 한·중이 중간재·최종재라는 생산과정을 분업했다면 한일관계의 핵심은 미래와 현재의 시간적 분업이다. 미래형 일본 기술을 융합·상용화에 강점을 가진 한국의 역량과 결합해 이를 대량 상품화하는 것이다.

한일관계는 첨단제조업 네트워크(Advanced Manufacturing Network, AMAN)라는 소다자기구로 발전해야 한다. 대격변의 시대에 국력의 핵심은 첨단제조업 역량이다. 여기에는 한일뿐 아니라 독일 등도 포함하는 것이 필요하다. 세계 첨단의 기술개발과 산업발전은 여러 국가가 함께할수록 더 큰 시너지가 발생한다.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 경제안보 클러스터는 최근 공급망 지배력이란 개념을 도입했다. 이는 한 국가가 특정 제품을 생산하는 비중이 세계적으로 높을 뿐 아니라 이 제품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무역상대국이 많음을 뜻한다. 이 클러스터의 연구에 따르면 한·일·독은 12개 첨단산업의 공급망 지배력에 있어 중국과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영향력을 보유한 국가다. AMAN은 첨단기술개발을 통해 전 세계 경제뿐 아니라 바람직한 국제질서 형성에 기여할 수 있다.

한일관계의 회복은 경제에 달렸다. 양국의 경제적 보완성을 극대화하고 첨단제조업 공동체를 만들어 양국관계를 불가역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지정경(地政經) 시대의 거센 도전을 헤쳐갈 비결이 여기에서 시작된다.

김병연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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