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구호만 요란한 ‘기후 재난’ 대책

2023. 7. 19.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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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올해도 여지없이 물난리 재난이 터졌다. 중부 지방을 중심으로 전국에 400~500㎜가 넘는 폭우가 쏟아지면서 막대한 인명과 재산 피해가 났다. 경북에서 대규모 산사태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충북 청주시 오송 궁평2 지하차도에서 발생한 침수로 14명이 희생돼 참으로 안타깝다. 일상생활 속 국토 공간이 언제 어떻게 생명을 위협하는 공간으로 돌변할지 모른다는 사실이 국민을 불안하게 한다.

이번 여름만이 아니다. 지난해에는 태풍 힌남노가 강타한 경북 포항 냉천 옆 아파트 단지 지하 주차장에서 주민 9명이 7시간 동안 342㎜의 폭우가 쏟아지는 바람에 급작스럽게 유입된 물에 익사했다. 서울에서도 역대 최고급 집중 호우로 강남구 아파트 단지들과 도로가 침수돼 도시 기능이 일시 마비됐다. 서울 관악구와 동작구의 다가구·다세대 밀집 지역은 반지하가 침수돼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 집중호우에 재난 인프라 무력
빗물 담는 지하저류조 늘리고
하천·제방 등 안전기준 높여야

김지윤 기자

이런 집중 호우에 따른 피해가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데 대책은 겉돈다. 7~8월 집중 호우로 큰 피해가 발생해도 내년도 예산 편성이 마무리되는 10월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잊히기 쉽다. 이 때문에 매년 비 피해를 보지만, 이듬해에 뭔가 달라진 대책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해 신문을 지역만 바꿔서 그대로 읽어도 될 정도로 비 피해가 반복된다.

물론 대비책은 있다. 흔히 30년 빈도, 100년 빈도 같이 일정 기간을 기준으로 발생할 수 있는 강수량을 기준으로 도시 공간이나 방재 등 인프라 시설을 만든다. 그렇지만 이제 기존의 강우 빈도 기준은 의미가 없어졌다. 극히 짧은 시간에 집중 호우가 강타하기 때문에 충분히 용량을 고려해서 도시 인프라를 만들었다고 해도 기존 기준으로는 홍수 피해를 막기에 한계가 있다. 기후변화의 영향이 이미 현실로 닥쳤기 때문이다.

기후 재앙이 눈앞에서 벌어지는데 지금도 진행되는 도시 건설 양상을 보면 여전히 대책이 한가하고 부족하다. 대규모 아파트 재건축과 재개발 현장을 보면 외양은 화려하고 멋지다. 땅을 파서 지하에 대규모 주차장을 만들면서 집중 호우에 대비한 배수 처리와 빗물을 머금을 수 있는 지하 공간은 극히 미흡하다. 이렇다 보니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강남 고급 아파트가 물바다로 돌변했다.

침수 피해를 막으려면 지하에 저류조를 만들고 우수 관로를 넓혀야 한다. 그런데 이에 따른 부담은 공공의 부담이다. 다행히 최근 서울시 재건축 계획에서 공공 기여의 일종으로 저류조를 설치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은 공공과 민간의 ‘윈윈’ 사례라 평가할만하다.

또한 아파트 단지를 새로 만들 때 예외 없이 수십 년 된 아름드리 나무를 싹둑 잘라내고 우수를 빨아들일 용량이 떨어지는 값싼 어린나무를 심는다. 겉으로는 멋들어진 금송을 심는 경우도 많지만 보기는 좋을지 몰라도 이런 집중호우에는 취약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첫째, 구호만 요란한 기후변화 정책이 아니라 실제 피해를 볼 수 있는 국민의 삶을 안전하게 만들 수 있는 실질적 기후변화 대책이 필요하다. 최근의 강우 패턴은 단시간에 수백㎜를 쏟아내는 극한호우 양상을 보인다. 따라서 기존의 안전 기준을 총점검해야 한다. 도로·하천·제방 등 국토 공간과 인프라 시설의 성능을 대폭 향상할 수 있는 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새로 만드는 시설은 비용이 더 들더라도 향상된 안전 기준과 성능을 충족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겉만 화려한 도시 공간이 아니라 안전한 기준에 따라 내실 있는 도시를 건설해야 한다. 일반인은 공학적 내용을 잘 모르니 당장 겉보기에 좋은 것에 현혹되기 쉽다. 안전 문제 등을 지적하며 바른말 하는 전문가를 거추장스러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라면 당장 욕먹더라도 안전을 우선하는 신념을 지켜야 한다.

재난이 터지면 안타까워하고 후회하지만, 재난을 사전에 막기 위한 예산과 정책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잘 대비해 사고가 안 나면 뉴스에 안 나오니 티가 나지 않는다. 안전보다 생색낼 곳에 예산을 투입하는 바람에 지금까지 버려진 예산이 얼마나 많았나. 티 안 나는 걸 잘해야 진짜 선진국이다. 티 나지 않더라도 묵묵히 국민 안전과 행복을 지켜주는 국토 정책과 예산 계획을 만들기 바란다.

※ 외부 필진 기고는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권영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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