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 프리즘] 부산 비콘 그라운드, 속 빈 컨테이너?
지난 7일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 수영고가도로 아래. 고가도로 밑으로 형형색색의 철제 건물이 보였다. 부산시가 2020년 11월 도시재생 사업의 하나로 지은 컨테이너형 복합 생활문화시설 ‘비콘 그라운드’다.
비콘 그라운드는 부산의 영문 앞머리 ‘B’와 담다란 뜻의 단어(Contain)의 ‘Con’을 합친 말로 사실상 부산의 감성과 문화를 컨테이너에 담는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 이날 처음 본 비콘 그라운드는 남다른 발상의 결과물처럼 비쳤다. 소음과 공해 문제로 방치돼 온 고가도로 아래 공간에 도시재생 사업을 벌여 주민에게는 즐길 거리, 관광객에게는 볼거리를 제공해 지역경제 활성화를 꾀하려는 취지가 색달라서다.
비콘 그라운드는 수영터널 입·출구부터 F1963(공장을 문화공간으로 꾸민 곳) 인근까지 1㎞ 구간에 지상 2층 규모(전체 면적 1979㎡)다. 블록 형태로 여섯 군데에 식당가·소매점·청년벤처기업·웹툰창작공간 등이 있다.
이 공간을 만드는 데 국비와 시비 등 90억원이 들었고, 지난해까지 운영비로 22억원이 들어갔다. 올해도 운영비로 7억원이 더 들어간다.
하지만 이날 비콘 그라운드는 찾아온 관광객은 없었고, 점포도 개점휴업 상태였다. 3년째 이곳에서 영업 중인 문모(35)씨는 “건물 자체는 색다르긴 한데 접근성도 떨어지고, 건물 내부에 볼거리도 없어 평일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며 “상대적으로 싼 임대료를 보고 들어온 식당이나 업체들도 더 버티지 못하고 하나둘 문을 닫은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 측은 “지난달 말 기준 51개 점포 중 16곳이 비어 있다”라며 “관리위탁기관이 부산시 도시재생지원센터에서 부산시설공단으로 바뀌면서 대부분 점포는 이곳에 알맞은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비워 놓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실제 이날 3시간 정도 비콘 그라운드에 머물며 둘러본 결과 관광객은 찾아보기 힘들었고, 점포 10곳 중 2~3곳만 문을 열거나 불을 켜고 있었지만 이마저 드나드는 이가 거의 없어 실제 운영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다.
게다가 고가도로 아래에 있어 트럭 등 대형차가 지나갈 때마다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고, 주차난도 심각했다. 부산시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포토존 신설, 야간 경관 및 체험공간 조성 등 대안을 모색 중이지만 예산 확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
무엇보다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곳을 인근 주민들은 ‘벽’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지역민에게도 사랑을 받지 못할 정도로 공간의 특성이나 장소의 역사성을 살리지 못하는 곳에 외지 관광객을 끌어들일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고민을 시작하지 않으면 비콘 그라운드가 ‘속 빈 컨테이너’를 쌓아둔 흉물로 전락하는 건 시간문제다.
위성욱 부산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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