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기저귀·폐비닐이 30분 만에 합성원유로 변신
지난 13일(현지시간) 미국 네바다주의 리노시 외곽에 위치한 바이오에너지 기업 펄크럼의 폐기물 선별장(FPF). 버려진 아기 기저귀, 폐비닐, 종이 포장지, 플라스틱 장난감, 음료 캔 등 쓰레기 매립장에서 ‘원료’로 공급받은 생활폐기물들이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흐르고 있었다.
여기서 알루미늄, 철 등 불연성 폐기물은 골라내고, 남은 가연성 폐기물은 3㎝ 이하 작은 조각으로 분쇄한다. 이를 인근 시에라 공장으로 보내는데, 공장 내부에는 분쇄 처리된 뒤 바싹 말린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폐기물 선별장에서 코를 찌르던 악취가 시에라 공장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다.
이 쓰레기에 산소와 스팀을 주입해 분해하면 수소(H2)와 일산화탄소(CO)로 구성된 합성가스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고온·고압 환경에서 촉매와 반응시켜 최종적으로 합성원유를 생산하게 된다. 합성원유는 자연 상태에서 시추해 얻는 원유와 화학적 성분이 유사하기 때문에 기존 석유정제시설을 활용해 휘발유·경유·항공유 등을 뽑아낸다. 처리된 쓰레기에서 합성원유가 나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된다.
합성원유는 시추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기존 원유보다 탄소 배출을 약 80% 줄일 수 있다. 일상에서 매일 버려지는 쓰레기가 미래 에너지 자원으로 재탄생하는 셈이다. 펄크럼의 제임스 스톤사이퍼 엔지니어링 담당 부사장은 “믿기 어렵겠지만 이 냄새 나는 쓰레기들이 비행기를 날게 해주는 항공연료로 거듭난다”고 했다.
SK㈜와 SK이노베이션이 8000만 달러(약 1040억원)를 투자한 펄크럼은 생활폐기물을 가스화해 고순도 합성원유를 제조하는 기술을 가진 에너지 기업이다. 펄크럼은 지난해 12월 합성원유 생산시설 시에라 공장을 세계 최초로 상업 가동했다. 펄크럼이 매년 쓰레기 매립장에서 공급받는 생활폐기물은 약 50만톤. 재처리 과정을 거쳐 생산하는 합성원유는 약 26만 배럴에 이른다. 미국 뉴욕에서 영국 런던을 항공기로 약 180회 왕복할 수 있는 연료량이다.
시에라 공장에서 만든 합성원유는 미 정유사 ‘마라톤’에 전량 공급돼 후처리 과정을 거쳐 ‘지속가능 항공 연료’(SAF·Sustainable Aviation Fuel)로 만들어진다.
항공연료는 장시간·장거리 운항하는 특성상 수소나 전기 등 유류 대체 연료가 마땅치 않은 만큼 항공업계와 정유업계는 친환경 SAF 확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 유나이티드, 일본항공(JAL), 홍콩 캐세이퍼시픽 등 항공사들이 일찌감치 펄크럼 투자에 뛰어든 배경이다. 미국 정부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에 따라 SAF 1갤런(3.78리터) 당 1.25~1.75달러의 보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펄크럼은 12개월 내로 손익분기점을 넘어 수익을 낼 것으로 기대하며 공장 증설도 추진하고 있다. 영국 체셔 등에 10여 개 신규 공장을 건립할 계획이다. 시장조사업체 TMR에 따르면 세계 SAF 시장 규모는 2021년 1억8660만 달러에서 연평균 26.2%씩 증가해 2050년 402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SK이노베이션 강동수 포트폴리오부문장은 “세계적인 탄소감축 기조 속에 SAF 분야 경쟁력 확보를 위해 펄크럼과 협력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폐기물 열분해로 연료를 만드는 시설 건립을 위한 폐기물시설촉진법 시행령이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되는 등 폐기물 자원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다만 합성원유 정제 관련 법적 근거는 미비한 상황이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사업법은 항공유와 같은 석유제품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정유사가 원유를 정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에너지업계 관계자는 “석유대체연료로 바이오가스연료유가 들어있긴 하지만 이를 만들기 위한 합성원유 정제의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리노=김형구 특파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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