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5년 경력 베테랑인데… 임금 체불이라니요”
기블리 소속 당시 상습적으로 급여·상금 정산 못 받아
조정웅 대표, 팀 해체 소식도 알리지 않아
‘배틀그라운드(펍지)’ 프로씬에서 ‘애더(adder)’라는 닉네임은 무척 유명하다. 이 닉네임을 쓰는 정지훈은 5년여 동안 프로 활동을 하며 T1, 젠지 등 유명 게임단에서 숱하게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1세대 프로게이머다. 그런 그가 최근 체불 문제로 곤혹스러운 일을 당했다. 1년 6개월간 몸담은 게임단 ‘기블리’에서 비일비재하게 급여가 밀리고 상금도 제대로 정산받지 못해 생활고에 시달렸다고 한다. 급여는 팀을 옮긴 뒤에야 정산받았는데 상금은 지금까지도 완납받지 못했다. 불공정 계약서가 발목을 잡은 까닭이다. 우여곡절 끝에 이상헌 의원실에서 나서 공론화한 뒤에야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프로게이머 정지훈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었다.
※대회 주최사인 크래프톤은 18일 국민일보에 “이번 이슈로 인해 전·현 기블리 선수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종목사로서 책임을 갖고 다양한 구제책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앞으로 유사한 사례가 재발하지 않도록 면밀한 검토와 감독을 강화할 것”이라고 전해왔다. 크래프톤은 현 기블리 소속 선수들의 타팀 이적 지원, 자체 팀 구성 시 잔여 대회 시드권 및 PGC 포인트 유지 등의 구체적인 구제안을 논의 중이라고 설명했다. 팀의 급작스러운 해체로 선수들이 직접적인 피해를 볼 것으로 예상되는만큼, 선수들의 의사(희망 사항)를 최우선으로 고려할 예정이라고 한다. 각 선수와의 면담을 통해 구제책이 확정되는 대로 해당 내용은 세간에 발표된다.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
“대회에 참가하면서 바쁜 나날을 보냈다. 동료들과 따로 아마추어 팀(펜타그램)을 만들어서 활동하다가 최근 아즈라라는 스폰서를 받게 되어 다시금 열심히 하고 있다.”
-임금·상금을 정산받지 못한 문제가 최근 논란이 됐다. 사건의 경위를 설명한다면.
“기블리를 2022년 5월에 나왔다. 1년 반 정도 팀에서 활동했는데, 2021년 4월에 치렀던 대회 상금을 아직도 완납 받지 못했다. 기블리에 연락해도 ‘회사 사정이 어렵다, 기다려 달라’고만 하고 이후 연락을 무시했다. 크래프톤에도 문의했으나 계약서상 지급이 어려울 수 있다고 전달받았다. 그래서 사건 공론화를 결심하게 됐다. 급여도 자주 밀렸다. 팀에 있을 당시 늘 몇 개월씩 밀려 급여를 받았다. 팀에서 나간 뒤에도 급여를 못 받았는데 다른 팀에 가서야 정산됐다.”
-SNS와 대회 인터뷰 등을 통해 임금 체납 사실을 알리고, 이후 의원실에서도 관심을 가졌는데.
“먼저 제 개인 SNS를 통해 상황을 알렸는데 문제가 해결되는 데에는 부족함이 있었다. 다른 종목에도 저와 비슷하게 불공정 계약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관련된 곳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긍정적인 회신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이상헌 의원실에서 게임, e스포츠 쪽 활동을 활발히 한다는 얘길 듣고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움을 요청했는데, 감사하게도 흔쾌히 도와주시겠다고 했다. 그때부터 문제 해결 속도가 빨라졌다. 혼자였으면 아직도 그대로였을 거 같고 상황이 정체되었을 거 같은데 이 자리를 빌려 도움을 주신 이상헌 의원실에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
-대회 주최 측인 크래프톤에서 원만한 합의를 시도했으나 게임단 측의 거부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거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처음 크래프톤에 사실을 알린 뒤 게임사가 직접 기블리에 연락하고, 저에게 내용을 전해주면서 중재를 시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전혀 이야기가 통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지속하면서 공론화가 됐고 크래프톤이 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게임단을 해체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래서 지난 5월 31일 각서를 쓰면서 상금 일부를 지급했다. 나머지를 6월 30일까지 지급하겠다고 약속했는데 당일이 되고 나서야 어렵다는 통보를 크래프톤에 했다. 이후 한 차례 더 시간을 줬으나 끝내 기일을 지키지 못했다.”
-얘기를 들어보면 임금 체납이 오랜 시간 반복적으로 발생한 거 같다.
“기블리에서 젠지로 팀을 옮긴 후 급여나 상금을 받지 못한 문제에 대해 크래프톤에 얘기했다. 2022년 8~9월 얘기다. 당시에는 급여도 못 받은 상황이라 크래프톤에 문제를 제기하고 급여는 정산받았다. 하지만 상금 같은 경우에 계약서상 문제가 없다는 게임단 측 주장이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이 문제에 대해 기블리에 직접 대화를 시도했다. 기블리 조정웅 대표에게 개인적으로 연락이 와서 상금을 주겠다는 답변 받았다. 그런데 조 대표가 크래프톤엔 ‘우린 지급할 의무가 없다’고 말했다더라. 욱하는 심정에 공론화를 결심했다.”
-당시 함께 활동한 팀원들도 상금을 못 받은 건지.
“금액이 각각 다르다. 제가 중간 정도다. 지금까지도 팀에 소속되어 못 받은 선수도 있다. 그 친구는 상금, 월급 모두 못 받은 상황이라 금액이 훨씬 크다. 제가 나간 후의 상금과 월급이 많이 밀려있는 거로 알고 있다.”
-정산해주지 않는 이유에 대해 들은 바가 있는지.
“상금을 운영비로 썼다고 들었는데 선수들 월급도 안 챙겨주고 그 돈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제가 있었던 1년 반 동안 상금만 2억 정도 되는 거로 안다. 그리고 크래프톤에서 받는 지원금도 있을 텐데 이해가 선뜻 되지 않는다.”
-계약서상 지급 의무가 없다고 하는 근거가 무엇인지.
“게임단 계약서엔 대부분 선수에게 상금을 지급해야 할 의무가 적혀있다. 자세하게는 게임단과 선수가 몇 대 몇으로 나눈다든지 하는 퍼센티지가 구체적으로 쓰여 있다. 기블리에 있을 당시 계약서에도 퍼센티지가 쓰여 있었는데 그 위 1항에 ‘상금은 전액 회사에 귀속된다. 하지만 회사 재량으로 선수에게 상금을 지급할 수 있다’고 적어놓았다. 그걸 구실로 상금을 안 준 상황이다.”
-불공정 계약 아닌가.
“계약서에 상금 분배 비율이 나와 있다. 과거 대표가 계약서를 같이 보면서 ‘선수단이 코치, 감독, 선수니깐, 6명에게 각각 약 10%가 들어갈 거다’라는 자세한 설명까지 해줬다. 한참 뒤에 크래프톤과 관련해 얘기를 나누면서 계약서 내용을 보여줬더니 ‘1항에 재량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그게 우선시 되다 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이런 불공정 계약이 e스포츠 업계에 비일비재한 거로 알려져 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왜 그런지에 대해 생각해봤을 것 같은데.
“제가 5년간 프로 생활을 했는데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에 엄청나게 많은 선수가 불공정 문제를 겪었다. 종목을 불문하고 과거에 겪었던 선수도 있고 지금도 겪고 있는 선수가 꽤 있는 거로 안다. 당장 제가 당해서 마음이 쓰리기도 하지만 주변 신인 선수나 빛을 보지 못한 선수들도 이 문제에 노출되어 있다. 안쓰럽고 안타까운 심정이다.
법적인 해석을 제대로 못 살핀 선수의 잘못이 있다고 할 수도 있지만 프로게이머 선수들은 대부분 어리고, 사회생활을 안 해본 초년생들이다. 계약서를 써본 적이 없다. 그래서 법률적인 부분을 잘 모르고 사인을 하다가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법적인 안내를 받을 창구가 마련되고 혹은 주최 측에서 관련 제재를 강화하는 게 필요할 거 같다.
e스포츠 업계엔 표준계약서가 있는데 그 틀에서 벗어나지 않게 계약을 하도록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고 본다. (※e스포츠 표준계약서는 권고사항이다.) 국내에서도 인기 종목과 비인기 종목이 나뉜다. 인기종목은 표준계약서를 강제해서 불공정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다. 비인기 종목은 제도적으로 미흡하므로 문제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오랜 시간 프로게이머로 활동한 입장에서 더 마음이 복잡할 것 같다.
“제가 배틀그라운드 프로게이머 5년을 했다. 나름 베테랑이라고 할 수 있는 오래된 선수인데 이런 문제에 노출됐다는 게 정말 아쉽다. 저같이 오래 일한 사람도 당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좀 더 민감하게 법적으로 대비해야 하고 게임사에서도 비책을 만들어 줬으면 한다. 이런 문제가 없어진다면 저뿐만 아니라 함께 프로 활동하는 동료들, 앞으로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는 프로 지망생들이 더 행복하게, 더 열심히 게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블리에 수차례 기회를 줬음에도 끝내 기일을 지키지 못했다. 결국 팀 해체를 발표했는데 어떤 조치를 할 건지.
“기블리가 공식적으로 팀 해체를 발표했지만 지금까지 저희한테는 그 어떤 연락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동료 선수들과 함께 여러 대응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제가 한때 몸담았던 팀이고, 펍지 e스포츠에 애정이 있는 선수로서 원만하게 합의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블리 측과 지속해서 연락하기 위해 노력했고, 합의를 이끌어내려 했었는데 일이 이렇게 된 것에 대해 아쉬울 따름이다.”
※기블리는 17일 SNS를 통해 “더 이상 팀을 운영하지 않기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면서 팀 해체를 선언했다. 기블리 측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최근까지도 많은 논의가 되고 노력을 하고 있었으나 시일이 걸리는 부분을 더 이상 감당하기 힘들기에 이와 같은 결론을 내리게 됐다”면서 “기존 소속 선수들은 계약 해지 절차를 거친 후 이후 방향에 대해서는 종목사 측과 긴밀히 협의하여 피해를 최소화 할 것을 약속 드린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는지.
“이번 임금 체납 사건에 대해 많은 분이 관심 가져주고 도와주셔서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e스포츠 업계엔 불공정 사건으로 대회에 집중하지 못하고 고생 중인 선수가 정말 많다. 한국 e스포츠 발전을 위해서라도 불공정 사건은 없어져야 한다. 게임사도 꼼꼼하게 점검해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선수들이 더욱 대회에 집중해서 국제대회나 국가대표로 대회에 나가서 좋은 성적을 내고, 한국에 기여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한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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