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차도 119 첫 신고자 "화재차만 왔다" 소방 "선착대였다"

하준호, 김민정, 이찬규 2023. 7. 18.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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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 당시 급류에 휩쓸렸다가 극적으로 목숨 구한 생존자 A씨(26)는 갑자기 불어난 물에 오도가도 못하게 된 오전 8시 37분 119에 전화를 걸었다. 소방 관계자는 약 1분간의 통화에서 A씨에게 차량 위로 올라가 대피하라고 안내했다. A씨는 차량 창문을 열고 빠져나와 차체 위로 올라갔고, 곧이어 소방 관계자는 A씨에 전화를 걸어 정확한 위치를 물었다. 초행길이었던 A씨는 “청주역을 지나 오송 방향으로 가는 지하차도”라는 취지로 답했다.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침수 사고 생존자인 A씨가 지난 15일 사고 발생 직후 119에 신고한 통화기록. 김민정 기자

최초 신고 4분이 지난 뒤인 오전 8시 41분, 지하차도 물이 점점 차오르자 A씨는 재차 119에 전화를 걸어 “물이 다 찼다. 빨리 와 달라. 나가기 힘들 것 같다”고 호소했다. 그 직후 지하차도로 흘러든 물이 차 지붕 위로 차올랐고 주변 차량 지붕에 있던 이들이 하나 둘 물에 휩쓸려 가기 시작했다. A씨도 간신히 물 밖으로 머리만 내민 상태에서 오송에서 청주 방향 진출입구 쪽으로 떠내려 가기 시작했다. 이 모든 일이 불과 5분 만에 벌어졌다고 A씨는 기억했다.

A씨는 옆 차량 지붕에 있다 먼저 떠밀려 간 다른 생존자로부터 “땅에 발이 닿는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헤엄을 치거나 도로 난간을 잡고 걸으면서 필사적으로 탈출에 성공했다. 그러나 그 무렵 막 도착한 소방관에겐 로프(밧줄) 외에 구조 장비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A씨는 물 안에 차량 동승자를 포함해 사람이 있다고 거듭 얘기했지만, 구조 작업이 바로 이뤄질 수 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A씨는 “소방관에게 ‘장비도 없이 어떻게 구조하려고 하느냐’고 따졌더니, ‘타고 온 차량이 화재차량이어서 그런 장비는 없다’고 하더라. ‘(전날 밤) 기차 탈선 사고에 인원이 투입돼 이쪽으로 많이 오지 못했다’고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내가 다른 생존자 2명과 함께 물 밖으로 나온 이후로 더 걸어 나오는 사람은 없었고, 직접 들어가서 탐색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수중에 있으면 골든타임이 중요한데, 그게 지나면 구조가 아니라 수습밖에 안 되는 것 아니냐”고 안타까워 했다.

소방당국은 사고 발생 약 50분 전인 지난 15일 오전 7시 51분쯤 “미호강 제방이 유실될 것 같다”는 신고를 접수했을 때부터 위험 신호를 인지하고 있었다. 출동한 소방관이 오전 8시 3분쯤 현장에 도착해 현장을 살핀 뒤 “제방이 무너져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했고, 이 내용은 소방당국 상황실을 거쳐 청주시에도 전달됐다.

많은 비가 내린 지난 15일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 차량이 침수됐다는 신고가 접수돼 소방 당국과 경찰이 수색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북소방본부 관계자는 “신속하게 출동하다보니 사고 현장에 관할 119안전센터 대원들이 선착대로 도착했다. 전문 구조대원을 포함한 구조대는 일선 소방서에만 있기 때문에 진압대와 구급대만 있는 119안전센터 출동 대원을 보고 부족해 보였을 순 있다”면서도 “후착대로는 구조대가 급파돼 구조 활동에 나섰다”고 말했다.

법원도 장비 부족 등 상황에 구조 소홀 책임을 묻긴 어렵다고 판단한 적이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도 해경 헬기 등이 이미 선체 바깥으로 탈출한 승객만 구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법원은 2021년 2월 “구조시간·장비 부족으로 효율적 임무수행이 가능했을지 단정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제진주 전 서울시립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사전에 위험을 인지했더라도 소방당국이 할 수 있는 건 관할 지자체에 관련 상황을 전파하는 것뿐”이라며 “정책 입안자들이 좀 더 국민 안전에 관심을 갖고 기습적인 수난에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전문 구조 인력과 장비를 상시 갖출 수 있게 예산을 수립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청주=하준호·김민정·이찬규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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