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원전·우크라, 새 시장 열리는데…정책금융 한도가 발목 잡을라
방산·원전·우크라이나 재건 등 수조원 규모의 국가 프로젝트 시장이 속속 열리면서, 한국 기업의 수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하지만 정책금융기관이 한도 문제에 발목이 잡히면서, 이들 수출기업을 제때 지원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출 지원 급한데 한도 꽉 찬 수은
수은 자본금 한도는 2014년 법 개정을 통해 한 차례 늘어난(8조→15조원) 이후 9년째 제자리다. 그동안은 한도 내에서도 자금을 충분히 공급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지난 2020년에 정성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수은 자본금 한도를 15조→25조로 늘리는 법안을 제출했었지만, 심사 과정에서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수출액이 다시 크게 늘면서, 한도 상향 필요성이 커지게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이후 수출이 다시 회복세를 탔고, 유가 및 물가 상승으로 수출 단가가 오르기 시작했다. 여기에 원화 가치 하락으로 인한 수출액 증가 효과까지 겹쳤다. 이 영향에 최근 수은의 법정 자본금 한도 소진율(법정 자본금 대비 납입 자본금의 비율)은 98.5%까지 치솟았다. 한도가 사실상 다 차서 증액 없이는 추가 자금 공급이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한도 문제를 겪는 정책금융기관은 수은뿐 아니다. 역시 수출 기업을 지원하는 무역보험공사(무보)의 무역보험 인수실적도 매년 빠르게 증가해 지난해(238조원)는 사상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다. 법상 정해진 무역보험계약 체결 한도(230조원)까지 초과 달성했다. 이 때문에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체결 한도를 7년 만에 230조→260조원으로 올렸다.
방산·원전·우크라 재건에 “금융지원 늘려야”
실제 지난해 한국이 폴란드와 맺은 방산 수출 1차 계약 금액은 약 17조원으로 수은의 현행 자본금 한도를 뛰어넘는다. 2차 계약 금액도 이에 준하는 수준으로 예상되는데, 폴란드는 한국 정책금융기관의 금융지원을 함께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현행 수은 자본금 한도에서는 금융지원이 사실상 어렵다.
방산뿐 아니다. 대규모 자금이 들어가는 원전과 또 향후 시장이 본격적으로 열릴 수 있는 우크라이나 재건 등 인프라 사업도 적게는 수조원에서 많게는 수십조원의 자금이 투입된다. 제2의 ‘마셜 플랜’으로 불리는 우크라이나 재건 사업은 규모가 2000조원이 넘을 수 있다는 관측까지 나온다. 세계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의 미래형 친환경 도시 조성 사업인 ‘네옴시티’도 약 1300조원의 자금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방만 경영 우려는 숙제 “전략적 판단 해야”
이 때문에 기획재정부도 하반기경제정책방향에서 수은 자본금 상향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무보의 무역보험계약 체결 한도와 관련해서도 산업부 관계자는 “올해 인수실적이 아직 다 집계되진 않았지만, 한도가 또 부족하다면 상향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이 뒤늦게 수출 기업 금융지원 확충에 나서고 있지만, 법 통과 시점이 언제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자본금 한도를 법 개정을 통해 늘린다고 해도, 실제 자본금을 납입할 때는 정부 예산 등이 투입될 수 있어 이 역시 시간이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수출 지원 시점을 놓칠 수도 있다. 정책무역기관의 자금 공급이 늘면 방만 경영을 조장할 수 있다는 비판도 풀어야 할 숙제다. 실제 수은은 과거 이명박 정부 시절 해외자원개발 등에 투자했다가 손실을 보면서 비판을 받은 바 있다.
전문가들은 국가 단위의 대규모 사업에는 정책금융의 역할이 필요하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좀 더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수십조원에 달하는 국책 사업은 대부분의 국가가 사업자금까지 지원받기 원하기 때문에, 정책금융기관의 금융지원 없이는 수주하기가 불가능하다”면서 “방만 경영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과거와 달리 사업 규모가 커지는 만큼 전략적인 판단을 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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