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시민의 역할

김성훈 2023. 7. 18. 17:3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 지구적 사고를 통해 기후위기 시대 극복하기

[김성훈 기자]

전국적인 폭우로 인해 인적·재산적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몇몇 기상 전문가들은 더 이상 일기 예측을 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더 이상 '기후'라는 보편성을 가지고 설명하기 어려운 대기 상황이 한반도에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던 장마철의 지속적이고도 균일한 비 소식과는 달리 최근의 장마는 흡사 스콜(열대성 소나기)과도 같이 갑작스러운 비 내림과 갬 현상이 반복되어 이어지고 있다. 최근 제주도에는 아열대성 곤충 노랑알락하늘소가 발견되거나, 빗살아씨놀래기 등 국내 미기록종 아열대성 어류가 나타나는 등 한반도가 점차 아열대성 기후로 접어들고 있음은 이미 기정사실화되었다.

이제 앞으로 장마라는 단어는 한국 기후 상황 안에서 폐기될지도 모르는 것이 우리가 처한 현실이다. 현대 산업 사회가 만들어 낸 온실가스 배출의 대가를 지금 혹독하게 치르고 있는 셈인 것이다. 
 
▲ IPCC 제6차 종합보고서 표지.  한국의 구례 부근에서 촬영된 '제38차 기상기후 사진영상 공모전' 수상작이 사용되어 화제가 되었다.
ⓒ IPCC
 
올 3월에 발표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 6차 종합보고서에는 각국이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상향하지 않고 이후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날 경우,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이 2100년까지 2.8도(2.1~3.4도)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이제 기후변화는 인류가 받아들여야만 하는 무언가가 되었고, 그 변화 가운데 적지 않은 이들이 치명적인 피해를 보게 될 것이다.

물론 오늘을 당장 버겁게 사는 인류가 대다수일 터인데, 몇십 년 후 혹은 몇백 년의 후 미래는 아스라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피해가 고단한 오늘을 살고 있는, 온실가스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나라와 이들에게 시기적으로 가장 빨리, 동시에 무겁게 찾아온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후문제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는 각자 다를 것이다. 사실 이번 IPCC보고서에 '심각한 오류'가 있음을 지적하고, 해당 학자들이 다소 정치적인 이슈로 인해 보고서를 부정적인 측면을 과대하게 증폭했다고 말하는 학계 인사들도 있다. 물론 일정 부분은 그들이 옳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오류가 있건 없건 보고서 이후의 행정적 대응은 미미했던 것이 사실임을 우리는 지금 똑똑히 목도하고 있다. 

기후변화의 문제는 결국 정치의 문제이다

정치는 결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의식의 기저와 같은 것일 텐데, 그렇다면 기후위기는 공공성과사회 정의의 위기와 다름이 아니다. 기후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당장 개별의 친환경 실천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한 사람 한 사람이 명확한 시민의식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이러한 시민의식을 지구적으로 확대하자면 지구촌 일원으로서의 도의적인 책임 혹은 당위적인 책임 영역에 더 가까워 지구라는 공공재는 어떤 국가나 기업, 개인이 사유할 수 없다. 지리적 위치나 거래적 측면이 고려될 수 없는 사항인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나 기업이 과도한 산업 개발과 환경오염 사업을 진행하고자 할 때 공공재로서의 지구에 대한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지구 공동체의 일원인 시민의 역할이다. 더불어 기후 변화에 대해 말하기 전에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가능성으로의 삶'이 얼마큼 '불가능한 구조' 안에 설계되어 있는지 그 시스템 또한 돌아봐야만 한다.

이렇듯 우리의 살림살이가 어떠한 바탕에 자리 잡고 있는지 스스로 물을 수 있는 시민만이 제대로 된 정치적 결정을 할 수 있을 것이고, 정치가 작동을 해야만 시스템이 변화 작동하고, 이윽고 인류에 의해 뜨거워진 엔진은 서서히 멈추기 시작할 것이다.

앞으로 우리는 좋든 싫든 '풍요'를 재정의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기존에 자본이 알려준 대로 풍요의 의미를 배우고 익히면 아주 부유한 소수만이 기후 변화 속에서 살아남게 될 것이다.

'다 같이 살 수 있는 세상'은 요원한 꿈이 아니다.

새로운 기후위기 시대에는 새로운 시민의 양상이 이처럼 절실하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