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제분쟁 대상 아니다"…'엘리엇 판정' 취소소송 제기

허정원 2023. 7. 18.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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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는 18일 우리 정부가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에 약 1300억원을 배상하라는 국제투자분쟁(ISDS) 판정에 대해 취소소송을 제기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계획 발표 후 삼성물산 지분 7.12%를 취득한 엘리엇은 합병 비율(1:0.35)이 삼성물산에 지나치게 불리하고, 국민연금이 정부의 압력으로 합병에 찬성표를 던져 7억7000만달러(약 9700억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2018년 7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에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 “엘리엇 손해, 국제분쟁 대상 아냐”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18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 조치 관련 내용을 발표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법무부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브리핑에서 이 사건이 ISDS 대상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규정상 ISDS 사건 대상으로 인정되기 위해선 ▶국민연금의 찬성 표결이 엘리엇의 투자와 관련성이 있을 것(관련성 요건) ▶국민연금의 찬성 표결이 정부가 채택 혹은 유지한 조치일 것(당국의 조치 요건) ▶표결 책임이 국가에 귀속될 것(귀속 요건)이라는 3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하는데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앞서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가 외국인인 엘리엇 측에 공정·공평한 대우와 충분한 보호 및 안전을 포함한 국제관습법상의 대우(최소기준대우)를 하지 않았다면서 한·미FTA 내용을 거론했다. 이에 정부도 한·미FTA를 근거로 ISDS 대상 요건을 파고드는 논리를 편 것이다.


①“국민연금, 의결권 행사했을 뿐 엘리엇과 무관”


서울 시내 한 국민연금공단 건물. 뉴시스.

한 장관은 “소수 주주는 자신의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 주주에게 어떤 책임도 부담하지 않는다는 것이 세계적으로 공인된 상법상의 대원칙이자 상식”이라며 “삼성물산 소수 주주의 하나에 불과한 국민연금이 자신의 상업적 의결권 행사를 이유로 다른 소수 주주인 엘리엇에 대해서 손해배상 책임을 부담하는 것은 이 원칙에 반한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주어진 의결권을 행사했을 뿐 엘리엇의 투자나 손해를 겨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ISDS 대상이 되는 관련성 요건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중재판정부는 국민연금의 찬성 표결과 엘리엇의 손실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하면서 “국민연금이 사실상 본건 합병에 관하여 ‘캐스팅 보트’를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한 장관은 이에 대해 “싱가포르·사우디·아부다비 국부펀드와 같은 해외 대규모 기관 투자자도 찬성 의결권을 행사했고, 삼성물산 발행 주식의 24.43%를 차지하는 소액 주주 중 88% 역시 합병에 찬성했다”고 말했다.


②“국민연금, 국가기관 아니어서 정부 책임 없어”


한동훈 법무부장관이 1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엘리엇 국제투자분쟁(ISDS) 사건 판정 후속조치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앞서 중재판정부가 국민연금을 사실상 ‘국가기관’으로 보고, 의결권 행사가 정부 책임으로 귀속된다고 본 데 대해선 “한·미FTA가 예정하고 있지 않은 개념을 중재판정부가 인위적으로 도입해 한국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말했다.

지난달 중재판정부는 국민연금을 사실상 정부로 인정하면서 “한국법상 국가기관은 아니지만 국가에 귀속되는 국민연금기금을 관리·운용한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는데, 한 장관은 이 개념이 자의적이고, 준거법인 한·미FTA 규정에도 없기 때문에 ISDS 대상이 될 ‘당국의 조치’나 ‘귀속 요건’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③“의결권 행사, 과정 위법과 별개…동기 안 따져”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하도록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지난해 4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 6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맨 왼쪽)이 2018년 5월 15일 구속 취소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연금 찬성 표결 과정에서 보건복지부 등 정부 인사의 외압이 작용했기 때문에 사실상 우리 정부의 조치라는 시각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지난해 4월 대법원은 국민연금 의사결정에 부당하게 개입한 혐의(직권남용 및 국회증언감정법 위반)로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징역 2년 6개월을, 합병 찬성을 유도해 국민연금의 손해 위험을 야기한 혐의(업무상배임)로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에게 2년6개월을 선고했다. 중재판정부는 이 부분을 국가 책임의 주요 근거로 본 것이다.

한 장관은 의사결정상 위법이 있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상업적 지분권 행사는 동기를 따지지도 않고, 그 동기가 다른 주주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것도 당연히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표결 과정이나 동기와 상관없이 주주는 찬성·반대 어느 쪽의 의결권도 행사할 수 있고, 국민연금이 다른 주주의 피해까지 고려해 의결권을 행사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외압과 관련해 관련자들이 이미 형사처벌을 받았고, 이와 의결권 행사는 양립 가능하며 무관하다는 논리도 폈다.

이밖에 2017년 10월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합병과 관련해 국가 상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을 때 법원이 “전 복지부 장관의 직권남용 등 위법행위가 있더라도 국민연금은 결과적으로 독립된 의결권 행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한 것도 근거로 인용됐다. 한 장관은 “지분권 행사를 국제적 소송에서 마음껏 재단할 수 있는 영역으로 인정해버리면, 앞으로 국민연금의 모든 지분권 행사에 대해서도 전례에 맞춰 받아들여야 하는 상황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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