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인텔·엔비디아, 바이든에 '中 수출통제 반대' 외친 이유

정현진 2023. 7. 1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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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SIA 성명내고 미 기업인과 정부 고위급 만남
미 업체들, 수익 타격·中 자급체제 구축 우려

"양국(미·중) 정부가 더 이상 긴장 고조 상황을 유지할 것이 아니라 이를 완화하고 대화를 통한 해결책을 모색해 달라고 요청합니다."- 미국 반도체산업협회(SIA)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정책에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 미 반도체 제조업체들이 반기를 들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되는 상황에 바이든 행정부가 추가로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준비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익타격이 커진 미국 기업들도 적극적인 문제제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10월 바이든 행정부가 조치를 도입할 당시 SIA가 "국가 안보라는 목표를 이해하고 있다"며 미 정부와 협력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던 것과는 다소 달라진 모습이다.

17일(현지시간) 미국 반도체 기업 99%의 입장을 대변하는 SIA는 이러한 내용의 성명을 냈다. 같은 날 인텔, 퀄컴, 엔비디아 등 미 업체 최고경영자(CEO)는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 정책 총괄자인 지나 러몬도 미 상무부 장관과 제이크 설리번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 토니 블링컨 국무부 장관을 만나 대화를 나눴다.

◆ 왜 이 시점인가?…"추가 반도체 통제 준비 중"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현 시점에서 단체 행동에 나선 주요 이유는 미·중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반도체 산업에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미지출처=AP연합뉴스]

지난해 10월 미국이 대중 반도체 통제 조치를 내놓은 이후 중국이 반발, 지난 5월 미국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을 제재한 데 이어 지난달 반도체용 희귀금속인 갈륨 등에 대한 수출을 통제키로 하는 등 보복 조치를 취했다. 지난달과 이달 블링컨 장관과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이 잇따라 중국을 방문했지만, 국가안보를 위한 조치는 지속하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추가 조치가 나올 가능성이 더욱 커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어 지난달 말 월스트리트저널(WSJ) 등은 소식통을 인용해 바이든 행정부가 대중 추가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를 준비, 다음 달 초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엔비디아의 저사양 인공지능(AI) 반도체와 클라우드 컴퓨팅 등이 조치 대상에 포함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 조치가 나온 지 10개월여 만에 추가 조치가 나온다는 소식이었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자 SIA는 바이든 행정부가 지난해 제정한 반도체지원법의 목적이 ▲산업의 국제 경쟁력 강화 ▲공급망 디리스킹(탈위험)에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지나치게 범위가 넓고 모호하고, 때로는 일방적인 제한을 부과하기 위한 반복적 조치들은 미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약화하고 공급망을 교란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 "이는 상당한 시장 불확실성을 초래하고 중국의 보복 조치 확대를 촉발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최대 시장' 中 포기 못 해…인텔 CEO는 올해만 두 번 중국 찾았다

미·중 갈등이 이처럼 장기화할수록 기업은 수익에 타격을 입는다. 미국 기업에 중국은 국가 안보 이전에 포기할 수 없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SIA가 성명에 "업계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시장인 중국에 대해 지속해서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도 미국 반도체 기업의 수익성을 고려한 표현으로 해석된다.

팻 겔싱어 인텔 CEO [이미지출처=EPA연합뉴스]

중국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고객이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반도체 구매액은 전 세계 수요의 3분의 1인 1800억 달러였다. 미국 기업의 매출을 개별적으로 살펴보면 인텔은 지난해 총 매출 중 27%가 중국에서 나왔다. 중국 전용 AI 반도체를 생산 중인 엔비디아도 연간 기준 홍콩을 포함한 중국 매출이 20%를 넘는다. 화웨이에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납품하도록 유일하게 허가받은 퀄컴은 매출 절반가량을 중국에서 창출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바이든 행정부가 아무리 압박해도 무작정 중국 시장을 떠날 수 없고, 오히려 통제 조치가 확대될수록 수익에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4월과 이달 등 올해에만 두 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중국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4월에는 베이징에서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시장 중 하나이자 인텔의 가장 중요한 시장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3개월 뒤인 이달 초에도 중국을 찾아 인텔의 최신 AI 반도체 최대 판매 지역으로 중국을 꼽았다. 중국을 핵심 시장으로 보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의 통제 조치가 확대되면 판매가 힘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도 마찬가지다. 엔비디아는 미 정부의 요구로 최첨단 AI 반도체를 중국에 납품하지 않고 있다. 대신 중국 시장의 수요를 감안해 사양이 낮은 AI 반도체를 별도로 만들어 이를 중국에 수출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저사양 AI 반도체마저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 엔비디아로서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기술 산업 부문에서 중국은 매우 중요한 시장이다. 최대 시장 중 한 곳에 첨단 반도체 칩을 더 판매할 수 없게 된 것"이라며 반도체 전쟁이 미국 기술 산업에 엄청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바이든 정부의 통제 조치에 직격타를 맞은 미국 반도체 제조 장비 업체들도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중국은 반도체 장비 업계에서도 3년 연속 투자액 1위를 기록한 국가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발표한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장비 투자액을 보면 중국이 283억달러로 대만(268억달러), 한국(215억달러)을 넘어선다. 이는 북미·일본·유럽을 합친 투자액(251억달러)보다도 크다. 미 정부의 규제 조치 여파로 전년 대비 5% 감소했지만, 여전히 장비 시장에서 큰손으로 활동하고 있다.

◆ 美 '빈자리' 中 업체가 채운다…"자급체제 구축할 수도"

미국 반도체 업체들이 더욱 우려하는 부분은 미 정부의 이러한 규제 조치가 장기적으로 확대, 적용돼 중국이 자체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아직 중국 반도체 장비 기술력은 세계 수준에는 비교적 못 미치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투자를 바탕으로 기술력을 키우는 한편 미국의 통제로 중국 반도체 회사들이 자국산 장비를 찾을 것이라는 우려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이 SEMI를 인용해 보고서에 밝힌 바에 따르면 2012~2022년 중국 반도체 장비 시장은 연평균 27%씩 성장했으며, 지난해 중국 반도체 장비 국산화율은 35%로 전년 대비 14%포인트 상승했다.

[이미지출처=로이터연합뉴스]

실제 올해 상반기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들의 매출과 이익이 뛰어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SCMP에 따르면 반도체 식각(에칭) 장비를 만드는 베이팡화창(나우라 테크놀로지)은 지난 15일 공시에서 상반기 이익이 전년 동기보다 121.3%에서 155.8% 증가한 16억7000만위안(약 1300억원)에서 19억3000만위안 사이가 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매출은 전년동기대비 64.4%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또 다른 중국 반도체 장비업체 AMEC도 상반기 순이익은 전년 동기보다 109.5~120.2%, 매출은 28%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AMEC는 이번 호실적이 시장 점유율 증가 덕분이라면서 자사 식각 장비가 더 많은 국내외 고객으로부터 계속 인정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미 이러한 우려는 반도체 업계 수장들로부터 여러 차례 나왔다. 황 CEO는 수출 통제로 인해 "중국이 스스로 그래픽처리장치(GPU)를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 있다. 또 "(중국 시장을 포기한 결과로) 미국 기술 기업들의 생산능력이 이전보다 3분의 1만큼 적어진다면 아무도 미국 공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와 심자외선(DUV) 노광장비의 대중 수출이 사실상 막힌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 업체 ASML의 피터 베닝크 CEO도 중국 반도체 산업 규제가 실수라고 지적한 바 있다. 그는 "중국의 반도체 장비 자급체제 구축은 시간은 걸리겠지만 궁극적으로 현실화할 목표"라면서 "규제가 강화될수록 중국의 노력도 그만큼 힘을 얻고 있다"고 강조했다.

정현진 기자 jhj48@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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