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부 조각... 국정 혁신 나서

김삼웅 2023. 7. 18.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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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균은 우정국에서 거사의 횃불을 켠 직후 서재필이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에게 경운궁을 철저히 경호하라 이르고 안으로 들어왔다.

신정부의 구성을 잘 검토해 보면, 국가 최고기관인 의정부에 좌의정으로 홍영식이 있고, 군사, 사법, 경찰, 외교, 통상, 인사, 재정 등 국가의 중추적인 부분에는 김옥균을 비롯한, 박영효, 서광범, 신기선, 윤웅열, 서재필, 박영교, 변수, 윤치호 등이 배치되어 신정부의 혁신적 성격을 규정하는 중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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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 17] 민씨 척족은 철저히 배제하였다

[김삼웅 기자]

▲ 갑신정변 전에 찍은 개화파 사진 앞줄 오른쪽에서 두 번째가 서광범, 세 번째가 민영익이다. 네 번째 어린이는 박용화다. 앞줄 왼쪽에서 첫 번째가 홍영식이다. 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유길준이다. 한 자리에 모여 사진을 찍었지만 급진 개화파는 갑신정변을 통해 민영익을 비롯한 민씨 정권에 칼끝을 겨눴다.
ⓒ 국사편찬위원회
 
김옥균은 우정국에서 거사의 횃불을 켠 직후 서재필이 거느리고 있는 병사들에게 경운궁을 철저히 경호하라 이르고 안으로 들어왔다. 당시의 정황이다.

경운궁 뜰에 이르자 박영효 군과 다케조에가 병사를 거느리고 왔다. 이에 내 마음이 비로소 안정되었다. 대가(大駕)와 모든 비빈(妃嬪)들이 정전(正殿)에 편히 좌정한 후 일본 공사와 우리들은 좌우에 시위(侍衛)하고 일본 병사는 대문 안팎을 경호하며 사람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서재필은 사관생도인 정란교·박응학·정해징·임은명·신중모·윤영관·이규완·하응선·이동호·신응희·이건영·정종진·백낙운 등 13인을 거느리고 정전 위에 시립하였다. 

이조연과 한규직이 입시하면서 다만 나를 향해 말하고자 하므로 나 역시 박영효 군이 한 말(변란의 책임 추궁)로써 대하였다. 그랬더니 이조연이 목소리를 높여 부르짖기를 "내가 주상께 입대(入對)하고자 하니 나를 문안으로 들여보내 주시오"한다. 서재필이 칼로 앞을 가로막으며 꾸짖기를 "내가 전문(殿門) 호위의 명을 받았으니 명이 없으면 들어가게 할 수 없소"하였다. 또 장사들이 분연히 일어날 형세를 보이자 이조연(李祖淵)·한(圭稷)은 후문을 나갔다. 거기에서 한능택·윤경순·이규완·고영석이 하수(下手)하였다. (주석 14)

개화파는 12월 4일 신정부 인사를 발표했다. 개화파가 중심이지만 왕족과 대원군 측근들도 포함되었다. 고종과 대원군의 지지를 받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조처였을 것이다. 그 대신 민씨 척족은 철저히 배제하였다. 개화파에게 그들은 사대수구세력의 상징이고, 이번 거사 와중에 여러 명이 참변을 당했다. 

신정부 조각 명단

 영의정 이재완(국왕 종형)
 좌의정 홍영식
 전후영 겸 좌포장 박영효
 좌후영 겸 포장 겸 외무독판대리 서광범
 좌찬성 겸 좌우참찬 이재면(대원군 서자)
 이조참판 겸 홍문제학 신기선
 예조판서 김윤식
 병조판서 이재원(이재완의 아우)
 형조판서 윤웅열
 공조판서 홍순형(대비의 조카)
 한성판윤 김홍집
 판의금   조경하(대왕대비의 조카)
 예문제학 이건창
 호조참판 김옥균
 병조참판 겸 정령관 서재필
 도승지   박영교
 동부승지 조동면(대왕대비 종손)
 동의금   민긍식
 병조참의 김문현(화순궁의 아우)
 수원유수 이희선
 평안감사 이재순(대원군의 지친)
 설    서 조한국
 세    마 이준용(대원군의 손, 이재면의 아들) (주석 15)

신정부의 구성을 잘 검토해 보면, 국가 최고기관인 의정부에 좌의정으로 홍영식이 있고, 군사, 사법, 경찰, 외교, 통상, 인사, 재정 등 국가의 중추적인 부분에는 김옥균을 비롯한, 박영효, 서광범, 신기선, 윤웅열, 서재필, 박영교, 변수, 윤치호 등이 배치되어 신정부의 혁신적 성격을 규정하는 중핵이 되었다. 이외에 정변에는 중립적 입장을 취했던 김윤식, 김홍집도 등용되었다. (주석 16)

그런데 개화파의 중심 인물이며, 정변의 지도자인 김옥균이 호조참판(차관급)으로 비교적 낮은 지위에 머물렀지만 호조판서가 공석이므로, 사실상 재정의 전책임을 맡은 셈이다.

"우리 파의 중심인물이며, 총리격인 김옥균을 호조차판에 임명한 것은 조금 이상하지만, 이것은 실권을 장악하기 위한 것이었다. 신정권이 아무리 신정령(新政令)을 발표한다 할지라도, 정무의 실현은 재정의 조달에 달려 있으므로, 김옥균에게 신정 개조의 정비(政費) 조달에 대한 책임을 맡긴 것이다." (주석 17)

주석
14> <갑신일록>, 12월 4일 조.
15> 앞과 같음.
16> 강제언, 앞의 책, 105쪽.
17> <서재필박사 자서전>, 1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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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김삼웅의 인물열전 - 혁명가인가 풍운아인가, 김옥균 평전]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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