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크림대교 테러, 보복"…4시간 뒤 우크라 곡물항에 폭발음
러시아군이 18일(현지시간) 새벽 드론(무인기)과 미사일로 우크라이나의 곡물 수출항인 오데사·미콜라이우 등에 대규모 공습을 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대교 공격에 대한 보복 방침을 밝힌 지 약 4시간 만이다.
로이터통신은 우크라이나 공군을 인용해 이날 새벽 러시아군이 드론과 순항·탄도 미사일을 동원해 남부 오데사·미콜라이우·헤르손·자포리자, 중부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 동부 하르키우·도네츠크 등을 공격했다고 보도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항인 흑해 연안 오데사와 미콜라이우에서 커다른 폭발음이 들리고 화재가 목격됐다고 전했다. 해당 시 당국은 공습을 저지하기 위한 우크라이나군의 방공망이 작동 중이라면서 정확한 공습 피해는 오전 중에 집계될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의 새벽 공습은 전날 발생한 크림대교 폭발 사건에 따른 러시아 측의 보복으로 보인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0월 개전 이후 처음으로 크림대교가 공격당했을 때 사건 이틀 만에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이우 등에 대대적인 미사일 공습을 감행했고, 총 12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푸틴 대통령은 다시 유사한 일이 발생하면 한층 가혹하게 대응하겠다고 경고했다.
전날 오후 푸틴 대통령은 긴급 대책회의에서 "크림대교 공격은 우크라이나의 또 다른 테러 행위"라면서 "크림대교는 이미 오래전부터 군사 수송을 위해 이용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이번 공격은 군사적 의미가 없는 명백한 범죄"라고 말했다. 이어 "당연히 러시아 측의 대응이 있을 것이라고, 국방부가 적합한 제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전날 새벽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잇는 크림대교에서 폭발이 일어나 교량 일부가 파손되고 최소 2명이 숨졌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특수기관이 수중 드론 2대로 공격했다"며 '테러'로 규정했다.
우크라이나 당국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CNN 등 일부 매체는 이번 크림대교 사건의 배후에 우크라이나 보안국(SBU)과 해군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현재 상황에 대해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우크라이나는 자국 영토와 국민, 자유를 방어하기 위한 전쟁 수행 방식을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전쟁연구소(ISW)는 이번 크림대교에 대한 공격이 우크라이나의 대반격이 진행 중인 헤르손·자포리자 등을 방어 중인 러시아군의 군수물자 부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크림대교는 지난 2014년 러시아가 점령한 우크라이나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직접 연결하는 유일한 교량이자, 우크라이나를 침공 중인 러시아군의 핵심 보급로다.
마라트 후스눌린 러시아 부총리에 따르면 현재 크림대교의 차량용 교량 한쪽이 파괴된 상태로, 완전히 복구해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2~3달이 이상이 필요하다. 다만 철도용 교량의 철로 손상은 심하지 않아 열차 운행엔 지장이 없다.
러 흑해곡물협정 거부에 서방 반발
한편 크림대교가 공격받은 직후 러시아는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산 곡물 수출 협정을 연장 거부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전날 자정을 기해 해당 협정이 만료됐다. 다만 러시아는 크림대교 공격과 협정 종료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유엔 등은 실망감을 감추지 않았다. 곡물협정을 중재해 온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러시아의 결정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일격을 가한 것"이라면서 "개발도상국과 그밖에 모든 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에겐 이제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중재자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은 이 협정이 계속되기를 원한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미국 등 서방은 러시아를 비판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러시아의 중단 결정은 위험하고 무책임한 일"이라며 "이는 식량 부족을 악화하고 전 세계 수백만 명의 취약계층을 한층 위험에 빠트린다"고 했다. 유럽연합(EU)·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도 러시아에 곡물 협정 중단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곡물협정을 계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유엔과 튀르키예에 전달했다. 그는 "러시아 없이도 흑해 회랑을 이용할 수 있도록 모든 조처를 해야 한다"면서 "튀르키예가 통과하도록 해준다면 우리는 계속 곡물을 수송할 준비가 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협정 중단된 상태에선 운송 선박이 러시아군의 공격을 받을 수 있어 안전 여부가 불확실하다.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있는 공동조정센터(JCC)에 따르면 우크라이나는 흑해곡물협정을 통해 지난해 8월부터 3600만t 이상의 곡물을 수출했고, 그중 절반 이상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으로부터 구호를 받는 국가를 포함해 개발도상국에 갔다.
박소영 기자 park.soyoung091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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