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지 않는 대답, 남편은 왜 대화를 거부하는가
[이준목 기자]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경제적 갈등과 소통 부재 속에 서로를 향한 감정도 메말라버린 부부의 사연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7월 17일 방송된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에는 '돈도 소통도 메말라버린 사막 부부'편이 그려졌다.
결혼 7년 차 이두연–배지연 부부는 남편 동생의 소개로 만나 김제-용인간 200km 장거리 연애와 11살의 나이차이를 극복하고 결혼에 이르렀다고. 아내는 자신을 위해서는 씀씀이를 아끼지 않는 남편의 모습에, 남편은 반대로 아낄 줄 아는 아내의 서로 다른 모습에 매력을 느꼈다고.
하지만 결혼 이후 돈은 부부의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 됐다. 또한 남편은 역대 출연자 중 손에 꼽을 만큼 대화를 걸어도 말이 없는 '무응답'으로 일관하며 제작진까지 당황하게 했다. 사연을 신청한 아내는 남편에게 거부하면 이혼까지 불사하겠다고 선언하며 겨우 출연을 성사시켰다고.
아내는 "남편과 대화하면 벽 보고 이야기하는 기분이다. 갓 돌이 된 아이보다 대화가 안 통한다"며 답답함을 소호했다. 남편은 부부간의 갈등에 대하여 "경제적인 문제도 있지만, 제가 욱하는 성격이 있다"고 자신의 문제점을 솔직히 고백했다.
부부의 일상이 공개됐다. 남편은 아침부터 휴대폰을 붙들고 대출상담 문제로 심각한 통화를 이어갔다. 남편은 신혼초에 다니던 회사에서 장기간 임금체불을 당했고, 국민연금 미납과 대출빚 등이 겹치며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남편은 주택담보대출과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한 빌린 대출빚이 총 9200만 원에 이른다고 고백했다.
이미 빚이 있는 상황에서 또다시 대출을 알아보는 이유에 대하여 남편은 "받은 대출이 이자가 너무 세서 저금리로 돌리려고 한다. 한 군데에서 대출하면 이자가 덜 나간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아내는 "나랑 상의 안 하고 또 대출을 받으려고 하는구나 싶었다"며 매번 아내에게는 계획을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남편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아내는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동물원 나들이를 제안했다. 하지만 남편은 가타부타 대답이 없었다. 남편은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간다고 대답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부부는 함께 아이들을 데리고 외출했다. 지켜보던 오은영은 남편이 "말로는 표현을 안 해도 행동으로는 적극적이다"라고 평했다.
부부는 저녁에 가계부를 작성했다. 남편은 16년 차 베테랑 용접공임에도 월급은 260만 원에 불과한 반면 매달 고정지출만 250만 원이 넘어서 가계감당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편은 최소금액 결제와 리볼빙서비스(신용카드 결제금액 일부를 다음 달로 넘겨 납부하는 것)로 근근이 버텨내고 있었다. 빚을 전액 납부할 돈이 없어서 매달 최소금액으로 상환하느라 빚은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었다.
아내는 "월급이 오르기만 바라지 말고 자신의 커리어를 올리라"고 요구했다. 말처럼 쉽지 않은 현실에 남편은 그저 헛웃음만 지었다. 아내는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고 가족이 떨어져 지내더라도 빚을 먼저 갚는 게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아내는 남편의 노력이 부족하다고 비판했고, 여기에 남편이 욱하고 반박하면서 순식간에 살벌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남편은 대화를 중단하고 분노를 삭이기 위하여 집밖으로 나가버렸다. 잠시 후 집으로 귀가한 남편은 조용히 휴대폰을 통하여 채용정보를 검색하며 다른 일자리를 알아볼만큼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오은영은 "그래도 조금은 걱정이 줄었다. 빚에는 주택담보대출이 포함된 만큼 고이율의 신용대출로 인한 빚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라며 희망을 드러냈다. 이어 오은영은 "대출을 할 때 부부가 의논을 했는지" 질문했다. 아내는 "안 했다. 남편이 의논을 잘 안 한다. 서로 의견이 다르면 싸우기 전에 대화를 차단한다"고 밝혔다. 남편은 그저 "잘 모르겠다"며 답변을 회피하여 지켜보는 이들의 답답함을 자아냈다.
남편의 입장은 "대출한도 조회가 나온 이후 아내와 상의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제가 생각하는 상의란, 한도조회부터다"라고 지적하며 "결과가 나온 이후 이야기하는 건 통보"라고 반박했다. 패널들은 "처음부터 함께 상의를 해서 아내의 의견이 반영됐다면, 나중에 힘든 일이 생겨도 함께 헤쳐나갈 책임감이 생겼을 것"이라며 아내의 입장에 공감했다.
이에 남편은 "부담을 주기 싫었다.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는 속내를 밝혔다. 오은영은 "이해도 상황도 알겠으나 경제적인 상황 해결을 위하여 합리적인 의논을 안 한다"라고 지적했다.
아내는 생계에 보탬이 되기 위하여 요양보호사에 마트 근무 병행을 시도했고, 남편에게도 대리운전 등 투잡을 권유했다. 아내는 '혼자가 아닌 둘'이서 함께 해결하는 방안을 계속해서 제시했지만 남편에게 돌아온 대답은 항상 "난 못해"였다고.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 MBC |
부부는 현재 남편과 아내가 각자 그때그때 생활비를 지출하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각자 본인이 쓴 돈만 기억하게 되고 다툼의 가능성이 높아진다. 남편은 마음껏 생활비나 용돈을 주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아내는 아내 대로 경제적 상황을 제대로 말을 해주지 않는 남편에게 답답함을 느끼는 상황의 반복되면서 서로 오해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오은영은 "이렇게 되면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존감 저하, 대인관계 단절 같은 다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아내는 본래 경찰을 지망했고 대학도 경찰행정학과까지 입학했으나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자퇴하고 본인의 꿈을 포기해야 했던 아픔이 있었다. 아내는 삼남매 중 둘째였고 정작 언니와 동생은 모두 원하던 대학의 꿈을 이뤘다고. 학비에서 용돈까지 항상 혼자만 위아래로 희생을 강요 당하며 부모님의 차별대우를 받았던 설움을 떠올린 아내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오은영은 "돈이 아내에게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돈이 없으면 인생의 중요한 부분들은 빼앗긴다고 생각한다. 돈으로 날 힘들게 하는 사람은 날 존중하지 않고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된다"라고 분석했다.
그리고 이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이어지며 돈 문제로 인한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나한테 자상하고 소소한 사랑을 전해주지 않는 것 같다"고 느끼게 되는 것. 한편으로 오은영은 "경제적인 문제에서 아내 스스로의 문제도 있음을 인지하면 경제적인 상황 회복은 물론 남편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심리검사에서 아내는 애정을 갈구하고 정서적 감수성이 높은 성향이었다. 하지만 남편을 따라 낯선 동네로 이사하면서 우울감과 외로움을 많이 느꼈고, 남편의 통제로 자유가 없고 새장 안에 갇힌 듯한 무력감을 느끼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오은영은 아내가 연애시절 남편으로부터 프리지어 꽃을 받았을 때 크게 감동했다는 대목에 주목했다. 오은영은 "아내는 돈과 관련된 상황에서 뒤로 밀려나있던 경험이 많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은 소중한 대상이 아니라는 경험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마음 안에 '꿈이라는 횃불'처럼, 사람은 쉽지 않고 버겁지만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다. 그게 아내에게는 프리지어 꽃이었던 것"이라고 평가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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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남편의 또다른 문제는 아이들에게 강압적인 아빠라는 점이었다. 남편은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강했지만 표현 방식이 무뚝뚝했고 때로는 매를 들기도 한다고. 남편은 아버지가 했던 행동을 그대로 반복하고 있다고 고백하며 "훈육 방식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는 있는데 그게 잘 안된다"면서도 "아이들을 좋아한다. 내 자식이니까"라며 애틋한 부정을 드러냈다.
부부는 저녁에 대화를 하다가 또다시 언쟁을 벌였다. 남편은 평소에 아내의 외출을 못마땅해하고 통제하려는 경향이 강했다. 또한 아내는 남편이 방송 촬영 때문에 평소에 보여주던 모습과 다르게 행동한다고 꼬집었다. 아내는 촬영기간 동안 남편이 아이들에게 잘해주는 것이나, 화를 잘 내지 않은 것도 모두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남편도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이를 어느 정도 인정했다.
또한 아내가 남편에게 계속 불만을 토로하고 대화를 시도해도 남편은 듣기만 할 뿐, 정작 대답은 없었다. 아내는 "대화는 사람과 사람이 이야기하는 건데 남편은 대화할 준비가 안 되어 있다. 들어주는 척만 하고 있는 거다. 이러면 방송에 나간다고 우리가 뭐가 달라지겠냐"며 불만을 토로했다.
한참 아무 대답이 없던 남편은 "끝내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고"라고 선언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제작진과의 인터뷰에서 남편은 "대화를 하다보면 '싫다, 귀찮다'라는 생각이 들고 외면하게 된다"고 밝히며 대화가 힘든 이유를 밝혔다.
오은영은 남편이 대화를 기피하는 이유를 분석하다가 남편이 초등학교 시절부터 말을 할 때마다 '발음'이 샌다는 이유 때문에 자주 지적을 받고 위축되었던 경험이 있었음을 알아냈다. 또한 어린 시절에 강압적인 아버지 때문에 별다른 이유없이 매를 자주 맞았던 기억도 많았다. 이러한 남편의 어린 시절 마음속 상처는 예상보다 크고 깊었다.
오은영은 "어린 시절의 경험은 이후로도 많은 영향을 준다"고 이야기하며 "아버지에게 혼이 날 때 무슨 의견을 낼 수 있겠나. 본인이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해도 더 심한 매질로 돌아오니까 '말을 해봤자 안 받아주는구나. 결국 말을 안 하는 게 최고야'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입을 닫아버리면서 생기는 문제는 그만큼 공격적인 감정이 행동으로 표출된다는 것, 오은영은 "사람은 언어와 대화로 생각도 표현하지만 공격적인 감정도 배출한다. 남편은 대화가 서투니까, 마치 말 못 하는 맹수처럼 공격적인 감정을 행동으로 드러내게 된다. 그런 남편이 너무 가엾다"며 안타까워했다.
▲ MBC <오은영 리포트-결혼 지옥>의 한 장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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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영은 "남편은 반응이 없다. 언어적이거나 비언어적인 소통을 통한 반응도 없다. 그래서 상대가 날 무시하는가라는 오해를 받게 한다. 아이들에게도 주로 부정적인 언어로 소통한다"라고 남편의 소통 방식의 문제점을 꼬집었다.
부부를 위한 힐링리포트를 내리면서 오은영은 먼저 "대출 빚은 부부가 함께 구체적으로 계획을 세우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부부에게 현재 경제적 문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지출의 우선순위를 잡고 실질적인 해결방안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두 번째로 오은영은 아내에게 "남편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의견이 수용된 경험이 부족하다. 그래서 아내와 대화할 때도 혼나는 느낌을 받았을 수 있다. 아내는 남편과의 대화 이후에 '아내는 내 말을 들어주네. 아내와 이야기하니 마음이 편안하다'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따뜻한 대화를 배우고 연습해보시라"고 조언했다.
또한 남편에게는 "사람은 눈을 보며 마음과 감정을 교류하는 게 중요하다. 남편은 사람의 눈을 쳐다보지 않는다. 부부간 하루에 1분이라고 서로의 눈을 마주 보는 연습을 해보시라"는 솔루션을 전했다.
어색해하던 남편은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아내의 눈을 마주보며 "앞으로 노력해볼게, 사랑해"라는 진심이 담긴 약속을 전했다. 아내도 눈물을 왈칵 쏟으며 함께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모처럼 미소를 되찾은 부부는 가족의 새로운 출발을 기약하고 훈훈하게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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